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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Dec 28. 2023

영락원

바람을 맞이하고 즐거움을 느끼며 무한한 영생을 즐기는 곳

잠에서 깼다. 

왜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을까. 어머니한테 가봐야겠다. 무작정 집을 나서는데 날이 좋기도 하다. 대전 추모공원 쪽으로는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환승해야 한다. 다른 날 같으면 벌써 갈아탔을 차들이 오지 않는다. 정류장 벤치는 따가운 햇살이 차지하고 나는 그늘로 밀려났다. 초조하게 느껴질 즈음에 21번 버스를 탔다. 20 단위 버스가 여러 대였던 게 한 대로 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길도 차편도 좋지 않았던 때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괜히 걱정이 되었다.


시원스레 달리는 차창밖에는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무성했던 초록빛이 연노랑으로 물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시골 냄새가 풍겨온다. 고향에 가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마산서 왔다는 여인은 버스를 다섯 번이나 탔단다. 나처럼 바뀐 노선에 혼란스러워했다면서. 길섶에 강아지풀과 코스모스 꽃들이 바람결에 부드럽게 흔들린다. 논에는 벼들이 누른빛으로 익어간다. 차량들도 걸어가는 추모객들도 자주 마주친다. 나처럼 복잡한 명절을 피해 미리 찾는 것이리라.


여느 때는 한적하기만 하던 영락원 마당에 차들이 가득하다. 오늘 들어오는 망자도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던 때가 생각난다. 추운 1월이었다. 손자가 103세 할머니 영정을 안고 앞장섰다. 어머니 앞에 아들이 먼저 간 때문이었다. 꽃 속에 묻힌 사진 속 어머니는 올 때마다 웃고 계셨다. 늦게 왔다고 화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왜 인자 오냐." 

집에 하루 종일 혼자 계시던 어머니는 딸이 늦는 날이면 하던 말이었다. 그 소리가 듣고 싶은데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어머니는 늘 이 딸 바라지에 손주들 거두는 게 일과였다. 그걸 낙으로 삼으시려 하셨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많이 죄송하다. 가게를 운영할 때였다. 아이들의 도시락은 어머니가 챙겨 줄 정도로 가사를 도맡으셨다. 그런 내게 동사무소에서는 어버이날에 나를 효녀 상을 추천을 했다. 오래오래 어머니하고 산 것 밖에는 없는데. 부려먹기만 한 셈인데. 얼토당토않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은근히 바라셨던 모양이었다. 너하고 살면서 행복했다는 말씀을 스스럼없이 하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신 어머니의 건강은 아마도 일찍 혼자된 딸을 돕기 위한 것 같았다.


손주들까지 다 키워내시고 소임이 끝났다 싶을 즈음에 딴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 힘겨웠던 과거를 잊게 하기 위한 신의 선물이었을까. 선물치고는 너무도 가혹했다. 딸이 엄마가 되고 어머니는 아기가 되었다. 딸의 등에 업히어 엄마를 불러댔다. 차라리 신께 감사했다. 긴긴 세월 고생만 안겨드린 어머니를 난생처음 업어보았다. 이렇게 나를 업어 키우셨던 어머니는 무척 가벼웠다. 종종 업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편안히 계셔야지. 아버지도 오빠도 만나서 잘 있다고 말해주는 것 만 같다.


나도 이제는 죽음에 대해서 골똘해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 이왕이면 병마와 시달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특히 딴 세상 사람으로 돌아가는 일 만큼은 없었으면 한다. 생뚱맞은 생각 같지만 그래야만 한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훔치던 때와는 달리 오늘은 남의 어머니를 보러 온 사람 같다. 나이가 먹은 것인가. 밖에는 분봉 묘들이 깨끗하게 단장되었다. 고요하게 잠든 망자들이 가을 햇살을 받고 있다. 이곳은 납골당과 분봉묘 외에도 다양하다. 수목장 화초장 잔디장 등등. 이 중 어떤 장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내게는 해당이 없을 것 같다. 이미 사후 시신기증을 모 대학교에 등록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죽어서까지 자식들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군데군데 단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는 모습들을 본다. 살아생전에 잘해야지 다 부질없는 짓이라 여겼다. 어머니한테 못 해 드린 자괴감일까. 터벅터벅 추모공원을 걸어 나오는데 생대추 마른 대추를 한 아름씩 놓고 판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닭백숙이 생각났다. 살아계시면 대추 듬뿍 넣고 푹 고와 드릴 테지만, 이제는 하고 싶어도 소용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니 

"보셔! 째까는거는 오천 원 쪼매 큰 거는 만원잉게 사셔." 

적은 팩 큰 팩을 그렇게 표현하니 웃음이 나왔다. 허리에 복대를 둘러맨 아주머니가 잡사보고 사라며 생대추 한 줌을 손에 쥐여준다. 허리가 많이 아픈데도 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머니가 겹쳐 보였다. 맛은 뒷전이고 사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식구가 없으니 작은 팩을 집어 들었다. 대추 값을 받으시는데 어찌나 고마워하시던지 내 어머니도 저러지 않았나 싶었다. 감사하는 농부의 순박함이었다. 잠시 잠깐 울적했던 마음이 가을 햇살만큼이나 밝아졌다. 맘 같아선 몽땅 팔아드리고 싶었다.


영락원이 멀어져 간다. 나도 모르게 뒤돌아 봐 졌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어머니의 숨처럼 느껴졌다. 어젯밤 꿈에 말없이 나타나 미처 쉬지 못한 숨이었나.

"언제까지 올 수 있을지 몰라요."

웅얼대며 종종걸음만 내 디뎠다. 하늘은 여전히 청명하다.



더는 꿰맬 수 없네

지은이: 양순례

세상에 없는 책 커버 맨들었을 때

-엄니 내 솜씨여, 워뗘 

작품 먼저 보려나

늙어버린 딸부터 보려나 

감감무소식 

-무신 놈의 여행이 그리도 길다요

등잔 불빛 아래 바느질하던 모습

실 꿰어놓으라는 목소리

긴긴 겨울밤 퍽 그리웁네 

사리마다 검정고무줄 끼우고

목화솜 넣어 바지저고리 맨들고 

쪽 찐 머리에 싸악싹 문대서

체한 딸 손가락도 따 주던 엄니

내음 맡고 싶으네 

골무 낀 거친 손 

-엄니, 시방 워디에 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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