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순례 Jan 28. 2024

마음의 눈 뜨기

반복된 실수로 위축된 생각

“이걸 어쩐다냐!”

장애자의 손에서 바나나 단지 우유가 툭 떨어지면서 바닥에 주르륵 쏟아졌다. 연신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학병원 매점에서다. 카운터 쪽 눈치를 살핀다. 두리번거리며 밀걸레를 찾았다. 사람들은 쳐다보고 점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냥 가란다. 탐탁잖은 꼴을 또 보이고 말았다. 점원과 우리는 한 달 만에 보지만 서로를 잘 기억한다.

지난달에도 진료받고 오늘과 같이 바나나 단지 우유를 샀다. 빨대를 꽂아주려 비닐을 벗겨 물건 담는 바구니에 무심코 던졌다.

"거긴 쓰레기통 아니에요, 똑바로 버려주세요."

날카롭고 당돌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점원이다. 순간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똑바로’란 단어가 틀린 말은 아닌데 폐부를 찌르는 소리로 느껴졌다. 어린 학생한테 훈계를 듣는 것 같아 마음에 싱크 홀이 만들어졌다. 만약에 다른 노인한테 그랬다면, 공손하지 못한 말투에 한마디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자존심은 좀 상했으나 어른답지 못한 내 행동에는 부끄러웠다. 다시 집어 든 빨대 비닐을 휴지통에 넣으며 그 학생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똑똑하게 생긴 학생이기는 하다만 좀 더 부드러운 말씨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돈 버는 아르바이트도 소중하지만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더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가 뭐 나무라듯 과자 껍데기 아무 데나 버린다고 정신 지체자인 그를 나무라던 나였다. ‘노인 되기는 쉬워도 어른 되기는 어렵다’ 더니 내가 그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의 광경이 떠올랐다. 입성 허름한 노인이 담배 피우고 꽁초를 아무렇잖게 버린다. 뒤따라오던 젊은이가 주우라고 한다. 뒤돌아보는 노인을 향해 재차 “주우라고~ 요오“ 날카로운 눈매가 얕잡아보는 태도였다. 노인은 허리 굽혀 줍는가 싶더니 젊은이가 지나가자 냅다 멀리 내던져 버린다. 새파란 젊은이한테 싫은 소리 들은 것에 마음이 상한 표정이었다. 꽁초 인생이다.

싫은 소리에 자존심 상하지 않으려면 어른답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운다. 길에다 꽁초 버린 노인이 젊은이한테 지적당한 것처럼 그날 나도 그런 셈이었다. 손녀딸 같은 아이한테 혼난 것이다. 아니 배웠다고 해야 옳다. 반성해야 할 문제다. 나이 먹을수록 사소한 것에도 큰일처럼 신중해야 한다. 누구한테든 비난받는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 작은 질서도 지켜가며 살아야 한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급하게 껍질을 벗겨 빨대를 꽂아 장애자한테 먹인다는 것이 그만 아르바이트생의 맘을 상하게 한 게 되고 말았다. 본이 되는 행동은 못하더라도 책잡힐 짓은 해서야 되겠는가. 인생 공부 아직도 멀었나 보다.

오늘 또다시 실수하여 그 학생에게 정중하게 미안함을 내비쳤다. 매월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만나는 동안에는 미운 고객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번 일까지 진심으로 사과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항상 자신을 먼저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뒤돌아보면 내 탓이 많다. 그래 놓고는 남 탓을 하려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벌어진다. 나이가 들어가니 깊어가는 주름만큼이나 생각도 깊어진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 고통받는 코로나19까지 길어지다 보니 그 점원도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한 사람이지만, 점원은 많은 고객을 대하여야 한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숨겨진 우울증이 내포되어 있다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도 있다지 않던가. 이럴수록 서로가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갈수록 이상한 병이 생긴다. 점점 사람의 심리도 예민해진다. 폭염 속 매미 우는 파열음의 강도가 높아지더니 어느새 접어든 가을도 깊어간다. 노인의 섬망증같이 방향감각을 잃은 낙엽들이 이리저리 휘날린다. 별안간 알림 신호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노인을 찾는다는 안타까운 문자 메시지가 떴다. 거울 앞에서 나부끼는 세월의 모습을 헤아려본다. 돋보기를 끼고 볼 때와 돋보기 없이 볼 때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반복된 실수로 위축된 생각을 비빈다. 또다시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는 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주문하듯 중얼댄다.




앎 한 숟갈

지은이: 양순례


키보드 한자모드가 사라졌다


동네 폰 매장에 갔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더니 안 된다고 건네준다


버스정류장에서 남학생한테 물었다

갸우뚱하던 중 버스가 와서 함께 탔다


한참 있다 생각났다는 듯

제 휴대폰을 보이며 눈짓 손짓으로 알려준다


그래 맞아,


앎 한 숟갈 입에 물고

입맛이 환하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