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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례 Jan 30. 2024

정신머리

자꾸만 세월은 나이를 간섭하고 이리저리 잡아당긴다.

내 집을 못 찾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거리는 온통 꾀꼬리단풍으로 황홀하지만 정신머리는 혼미하다. 버스를 타려고 보니 휴대폰이 없다. 가방 수납공간을 이리저리 뒤적여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행사 때의 좋았던 기분은 불안으로 엄습하고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무작정 버스를 탔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그만 중간에서 내렸다. 마침 서비스 받을 지인의 폴더 폰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전 문학회 행사가 있었던 장소를 114에 문의해 보았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 메시지만 들릴 뿐 연결이 되지 않는다. 점점 마음은 조급해지고 시간은 상관없이 지나간다. 무조건 택시를 탔다.


 문학회 행사가 있었던 장소는 이역만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마음 졸이며 가 보았지만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 없다. 미궁에 빠진 상태에서 타고 오던 택시에 다시 허망함을 싣고 되돌아온다. 오고 가는 동안의 근심만큼이나 택시비는 쌓이고, 먼 거리만큼이나 허탈한 심신은 터덜거린다.


택시 안에서 모든 카드와 신분증 분실신고는 해 놓은 상태지만 난감하기 그지없다. 행사 중에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 무음으로 해 놓았던 게 이럴 때는 문제가 될 줄이야. 때로는 지나친 예의가 불이익을 보게 된다. 진동으로 해 놓았더라면 상대방이 알아챌 수 있으련만 휴대폰 커버를 열어놓지 않는 한 알 수 없으리라. 시간은 자꾸 가는데 대책은 없다.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을까 하도 답답하니 휴대폰 매장에까지 문의를 해 본다. 신호가 간다면 주인을 기다린다는 것이고, 신호가 없으면 찾아줄 의향이 없다고 보면 되니 신호가 가면 내일까지 기다려 보란다. 그 말을 들으니 한결 안심이 된다.


유체이탈자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행사장 오고 갔던 경로를 차분히 톺아본다. ‘아 그래, 올 때 문우님 차를 타고 왔지!’ 하나 난감하다. 문우님 전화번호를 모른다. 어떡하지, 함정에는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받아온 등단한 분들의 책을 뒤적였다. 전화번호들이 있다. 그중 한 분의 전화를 눌렀다. 사정 얘기를 하니 신속하게 연결을 해 준다. 고맙게도 차 태워준 문우님 승용차 뒷좌석에 내 휴대폰이 있다는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구세주를 만난 듯 마음이 벅차다.


뒤늦게나마 그런 생각이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애태웠던 시간이 기가 막히다. 책을 받아온 게 고맙고 천만다행이었다. 전화연결해 준 문우님과 휴대폰 건네주신 차주 문우님 두 분 덕에 집을 한 채 얻은 기분이다. 현대 생활에서 휴대폰 없는 세상은 칠흑 같은 밤하늘을 보는 느낌이다. 거리에 내몰린 노숙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시름 놓고 보니 이놈의 정신머리는 어디에 두고 다니는지가 의심된다.


침착하지 못하게 시리 마지막 문우님 차를 타고 온 생각은 왜 미 쳐 못했는지, 그제야 삼만 오천 원 택시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해답은 가까이 있음에도 먼 곳에서만 헤매기 일쑤다. 그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나 보다. 잦아지는 건망증이 심각 수준에 와 있는 것인가. 가을은 깊어 가는데 낙엽은 자꾸만 떨어지고, 떨어진 낙엽은 갈색으로 탈색되어 바람에 나뒹군다. 어수선한 십일월에 도망 다니는 꿈에서 깨어보면 한밤중이고 당최 잠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그러한 꿈을 꾸어댈 때는 아마도 내 영혼에 어떤 두려움이 감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에서 겨울로 치미는 미 틈 달, 휴대폰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고요한 사위는 시간만 돌리고 있을 뿐이다. 방안의 전등 불빛은 여전히 밝은 빛을 발하는데 내 정신머리는 껌뻑껌뻑 갈아야 할 전구 같다. 못다 푼 숙제처럼 전전 긍긍하는 영혼이 안쓰럽다. 무엇이 그리도 초조하고 무엇이 그다지도 아쉬운 것인가. 너무 예의가 바른 것도 너무 성급한 성정性情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결핍되지 않았나 하는 내 기억장애에 허허로운 웃음이 감돈다. 허둥지둥 살다가 갈팡질팡 갈까 겁난다. 은행나무길이 하늘하늘 노란빛에 나부끼던 윤슬도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 넋 놓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내가 누군지 모른 채 다른 영혼이 내게 들어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깊어가는 십 일월 이어서일까, 그럴까. 헝클어진 영혼이 정리되지 않아서인가. 가지각색 나뭇잎 색깔과도 같이. 온 사색이 척척 너울거린다. 오늘따라 마치 첫눈이라도 퍼 부울 기세다. 이왕이면 아름답게 흔들리고 싶은 마음이고 싶은데 자꾸만 세월은 나이를 간섭하고 이리저리 잡아당긴다.




졸다가 

지은이: 양순례


버스에서 졸다가

손을 놓치고 몸을 놓쳤다


꾸벅꾸벅 동자꽃 분간하지 못하고

환청과 환상으로 계산하기 힘들다


누군가를 놓치고 사물을 놓치고 생각을 놓치고

기울어지고 내지르고 곁가지 꺾이고 늘어지다가

멀쩡하게 달리다가 날아가다가


생 이파리 붙어 있을 때였다

훅, 바람 끝에 매달린 물방울 소리

콧구멍을 넘어 귓바퀴로 돌아 나오는 길,

빛이 회오리쳐 밀려오는 것을 보니

아직 자동차 엔진은 꺼지지 않았나 보다


서서히 냉각기를 잡아 올린다

진한 꿈길,

숨 놓쳐버리면 평온해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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