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람에게

by 황 운

*바람에 이끌린다는 것은 어쩌면 향을 쫓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좋아하는 향이 있으신지요. 저는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이따금씩 실로 겨울이 왔음을 인정하게 해주는 코털이 웅크리는 냄새, 그러니까 겨울에만 맡을 수 있는 고독하고도 독한 냄새를 좋아합니다. 차가울 때면 으레 차분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요, 반대로 여름에 늘 분해 있는 건.. 저의 미천한 언어유희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차가운 곳을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군대도 가장 추운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눈이 옆으로 내리는 곳이었습니다. 오직 발만을 녹여주는 라디에이터 앞에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을 철책너머 관망했습니다. 저의 위치는 경계초소 3층, 지상으로부터 6미터 솟은 작은 구조물 내부였습니다. 깨진 아크릴 창문을 교체하고, 틈마다 문풍지를 아무리 갈아 끼워도 떨어지는 온도는 저의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허름한 나무로 지어졌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겠지요. 새벽 3시, 봉인된 수류탄을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고 대검을 반대로 차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방아쇠 앞에서 약 올리듯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은 수면이 부족하다는 이유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차가운 방탄모와 방탄조끼의 주렁주렁 매달린 것들 위로 계속해서 쌓이는 눈 때문이었겠지요. 군인에게는 제설이라는 숙명이 있습니다. 흔히 하늘에서 내린 쓰레기를 치운다고 하지요.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탄절에 태어났다고 뒤 돌면 어느새 다시 발목까지 쌓여있는 눈을 치우는 일은 마찬가지로 저에게도 고역이었습니다. 조금은 위험한 눈사람이 되어 3시 15분쯤 경계초소 앞에 도착하면 이미 근무하고 있던 후임은 늘 제게 라이트를 비추며 무언가 물었습니다. 그것도 반말로 말입니다.


누구냐.

근무자.

용무는.

근무교대.

신원 확인을 위해 삼천 칠백 보 앞으로...

... 뒤질래?


후임들을 소초로 돌려보내고 저희는 발 밑에 라디에이터를 들어 올려 온몸에 쌓인 눈을 녹였습니다. 등에 묻은 눈은 서로 녹여주었지요. 경계를 미뤄두진 않았습니다. 저희의 경계 구역은 9시부터 3시 방향 까지였으니까요. 그렇게 눈을 다 녹이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멍하니 북을 바라보았습니다. 종종 싸우는 고라니들도 보이지요. 무사히 교대 완료 했다는 무전도 보내봅니다. 30분을 멍하니 경계하다 보면 이제야 눈이 만드는 풍경이 보입니다. 얇디얇은 나뭇가지 위로 3센티는 족히 쌓인 눈의 물구나무에 감탄합니다. 저는 부사수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후임에게 묻습니다.


눈 좋아하냐?

사회에서는 좋아했습니다.

... 그래




어쩌면 좋아하는 향을 쫓는다는 것은 무거운 발자국을 남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필히 송풍기로도 날아가지 않는 눈은 제가 밟은 눈이었습니다. 제설이 끝나고도 하얗게 남은 것 역시 저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발걸음은 어느새 수백 개입니다. 바람에 이끌린다는 말도 이젠 어색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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