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도구 소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던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도구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미니멀 라이프와는 이별해야 한다. 도무지 공존할 수 없다. 그저 마음 저 구석에 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동경을 품고 살아갈 뿐이다.
아무리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해도 도구 없이는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들이 많다. 필요 없는데 갖고 싶은 것도 많다. 원단 시장이나 큐레이팅이 잘 된 소품숍은 나의 통장 잔고를 위협한다. 이상과 통장 잔고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면 구매에 신중을 귀하는 것이다.
작업용 도구는 무엇보다 실용적이어야 한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리고 적정한 가격이어야 한다.
뭔 뜨개 부자재 구매에 그리 공을 들이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몰입의 시간에 느껴지는 장비의 만족감은 취미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그립감 좋은 골프채, 어렵사리 구한 경량 텐트, 쿠션감 최상의 운동화와 비슷하다.
최근에 들은 재미있는 질문이 있다. 나를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질문이다.
1.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A. 산다 B. 안 산다
2. 새로운 일이 궁금하면? A. 한다 B. 안 한다
1번 질문의 대답은 'B. 안 산다', 2번 질문의 대답은 'A. 한다'.
나는 무엇을 사든 시간을 두고 취향에 맞는 것들을 하나씩 사서 모으는 편이다. 지난달에 다녀온 도쿄에서는 돗바늘을 담을 작은 트레이를 만나서 아주 소중히 모셔왔다. 튤립사 바늘도 세트보다는 필요한 호수나 시즌 아이템으로 낱개 구매를 선호한다. 어쩌면 구매욕이 주는 기쁨을 여러 번에 나누어 오래 누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게 늘여 썰을 풀었는데 한 줄 요약하자면, '자신이 필요하고 선호하는 도구를 알자.'이다.
실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두께별, 소재별, 색상...
우선 섬유의 소재를 이해하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크게 면, 마, 울, 아크릴, 폴리에스터 정도만 알면 필요한 실을 고를 수 있다.
나는 실을 고를 때 소재-두께-색상의 순으로 고려한다.
- 무엇을 만들 것인가
- 사용 계절은 언제인가
- 어떤 소재가 필요한가
- 결과물의 두께가 어느 정도인가
- 무슨 색상인가
내가 하고 싶은 뜨개질이 대바늘 뜨기인지 코바늘 뜨기인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둘은 표면의 패턴이 다르다. 방법도 다르다. 대바늘 뜨기는 한 쌍의 바늘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코를 엮는다. 코바늘은 울사 전용과 레이스사 전용이 있고, 한 개의 바늘로 코를 엮는 기법이다. 대바늘과 코바늘은 두께가 다양한데 실의 두께에 따라 번호로 구분되며, 호수가 커질수록 굵은 바늘이다. 실의 두께나 디자인에 맞추어 고른다.
최근에 나는 주로 코바늘 작업을 하는데 울사 전용 4호나 7호 코바늘을 자주 사용한다. 잘 모르겠다면 실을 구매할 때 참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실은 제품 안내에 필요한 바늘의 호수가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늘의 가격도 브랜드에 따라 다양하다. 실을 구입하면 코바늘을 사은품으로 주는 온라인몰이 있는데 입문자에게는 이런 온라인몰을 우선 이용해 보기를 추천한다. 성향에 맞다 싶으면 조금 더 고급 바늘로 눈을 돌려보면 된다.
대바늘은 일자형이 있고 줄로 이어진 줄바늘이 있다. 일자형은 장갑, 양말 등 작은 원통형을 뜨기에 편리하다. 줄바늘은 니트웨어나 목도리 등 상대적으로 너비가 큰 것을 만들 때 사용한다.
돗바늘은 뜨개의 마무리 정리에 필요하다.
자수나 니트용품의 뒤면이 정갈하면 감동스럽다. 매사가 마지막이 중요하다. 핸드 크래프트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잘 정리된 실을 싹둑 자를 때의 쾌감은 작업자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다. 잘 끝내는구나 하는.
재봉 작업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종류의 가위를 사용한다.
실을 자르는 용도의 가위야 날만 무디지 않으면 크기는 무관하지만 유의할 점은 재봉이나 뜨개용 가위는 작업 전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날을 보호하기에 좋다.
최근에 갖고 싶은 가위를 두 가지 발견했다. 참고 있는 중인데 세 번 더 만나게 되면 사겠다. 세 번의 우연은 나와 함께 할 운명이다.
실의 종류를 섞어서 작업할 때는 코의 수보다는 너비를 재는 것이 모양이 잘 나온다. 실의 두께에 따라 일정 길이 내에 들어가는 코의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평자와 줄자를 두고 때에 따라 유용한 것으로 사용한다. 핑크 돼지 줄자는 10여 년 전 여행지에서 산 건데 너무 귀엽지 않은가.
표시링은 뜨개의 단수나 코수를 기억할 때 필요하다. 나의 기억력을 믿을 수 없다면 표시링과 메모지는 필수다.
코막음핀은 대바늘 뜨기에 주로 사용된다. 뜨개의 코를 마감하기 전에 올이 풀리지 않도록 잠시 고정해 두는 역할을 한다.
뜨개 시 모티브 패턴을 만들 때 유용하다. 이걸 발견하고 어찌나 좋던지... 자석으로 된 기둥을 세우고 물을 분무한 모티브 패턴을 고정해 둔다. 모티브들을 겹쳐 꽂아두면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작업 시 기존의 실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합사를 할 때가 많다. 특유의 텍스처나 색감을 내기 위해서다. 그럴 때는 와인더가 꼭 필요하다. 학창 시절에는 의자를 뒤집어 두고 감기도 했었다. 하지만 와인더의 세상을 맛본 뒤로는 그런 불편은 과거사가 되었다. 틈날 때 미리미리 수 타래씩 만들어두고 작업에 사용한다.
니트 모자를 뜰 때 유용한 원형 직기다. 전용 바늘을 이용해서 뜰 수 있는데 대바늘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바구니를 뜰 때에도 활용할 수 있다. 사이즈는 다양하니 필요한 지름으로 구입하면 된다.
여기까지가 뜨개 작업에 필요한 기본 도구들이다. 그 외 재봉, 위빙에 사용하는 도구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너무 길어지니 그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작업의 종류와 양이 많아지고, 작업 공간은 점점 채워지고 있다. 짐이 늘어가는 것이 스트레스인 때도 있었지만 더 이상 '짐'이라고 생각지 않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도구로 가득한 공간, 그 안에서 온전한 나로서 받는 긍정적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다음 작업의 원동력이 된다.
현재는 물리적 공간의 가벼움보다 내면적 단순함을 이루는 것에 더 힘을 싣고 있다. 마음에서 미니멀을 만들어가는 중인 게다. 머지않아 진정한 심정적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슬며시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