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드리박 Jan 05. 2024

두 아들의 사춘기, 그리고 나의 사춘기

비로소 너를 통해 돌보는 나의 사춘기

 큰 아이와 다투었다. 5학년이 되면서 점점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내 말에 아니라는 분명한 자신의 의사를 밝히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우기거나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셀카봉이었다. 셀카봉 설명을 읽고 엄마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다. 큰 아이가 이제 설명서를 제대로 읽고 분석하고 나에게 설명을 잘해 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큰 아이가 자신감과 뿌듯함을 느꼈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카메라와 블루투스를 연결해야 하는 셀카봉을 민호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에게 안 된다고 말을 했다. 난 다시 설명서를 읽고자 셀카봉 박스를 가져와 달라 부탁했고,  큰 아이는 박스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박스를 가져오지 않았다. 반복해서 말하며 난 조금씩 지치고 마지막에 큰 아이를 보지 않고 '박스를 가져오라고 좀!'이라 외쳤고 민호는 박스를 주우러 간 사이였다. 큰 아이는 박스를 장난스럽게 나에게 던졌다. 거기서 참아야 했다. 난 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왜 박스를 던지냐며 짜증 섞인 말을 했고 큰 아이는 '내 맘이지. 던질 수도 있지'라며 어긋난 선으로 가고 말았다.      

엄마가 몇 번을 박스를 가져오라 했는지 물건은 왜 던졌는지 엄마에게 왜 던지냐는 소리를 반복하여 난... 큰 아이를 지적하고 말았다. 큰 아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떠냐, 그럴 수도 있지 않냐' 라며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언성이 높아졌다.. 큰 아이는 가져오라는 소리를 결국 듣지 못했다 고 했다.      

'난 믿을 수 없고 왜 못 듣냐'며 추궁했고, 큰 아이는 눈물을 보이며 정말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애아빠가 나서서 엄마가 몇 번을 얘기했는데 못 들었냐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큰 아이는 서럽게 울며 왜 믿지 않냐며 진짜 못 들었다 했고 셀카봉을 달라는 아빠의 말도 들어주지 않았다. 애 아빠의 큰소리가 난 후에야 큰 아이의 말은 잦아들었고, 저녁식사자리는.. 그렇게 엉망이 되었다.      

엄마에게 사과하라는 말에 큰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도 존심이지 포기인지 아님 미안함인지 사과는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며 식탁을 치웠다. 

방으로 들어가라는 말에도 큰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고...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돌아서서 싱크대에서 저녁식사 그릇을 치우고 있는 나에게 큰 아이가 다가왔다.      

“엄마 죄송해요”

마음이 울컥했다. 엄밀히 말해 누가 잘못을 했을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한테 자꾸 화가 나고 화를 내지 않으려 해도 자꾸 그렇게 되어요”

울컥했다. 사춘기라는 그 녀석이 결국.. 이렇게 왔구나 싶었다. 

"oo야 엄마가 사춘기 아들은 처음이라 그렇게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그럴 때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할까? 넌 엄마가 그럴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큰 아이의 대답은, 아니 대답이 아니고 뜻밖에 질문을 해 왔다. 


“엄마는 사춘기 때 어떻게 할머니가 했어요? 엄마 어떻게 했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어떻게 했냐고? 할머니는? 내 마음 저 밑에.. 저 과거 속으로 꾸깃거리게 넣어놨던 기억이, 감정이 순간 올라오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아팠다.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지만 울컥 눈물부터 솟아 포장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솔직해지기로 했다. 

“ 엄마는 그때 너무 외롭고 힘들었어. 그래서 지금도 생각하면 아프고 눈물이 나. 할머니가 좀 많이 바쁘고 잘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엄마는 그냥 참았어. 꾹 참았어. 그래서 사실 엄마가 OO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애써 눈물을 참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어린.. 어리다고 생각했던.. 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큰 아이는 나의 생각보다. 훨씬 커가고 있었나 보다.      

 큰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도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슬픈 건지, 내 말을 이해하고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공감인지, 그냥 엄마가 슬퍼하니까 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큰 아이의 울음이 나는 따뜻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미안하고 미안했다. 미성숙하고... 부족하고... 부족한 엄마인 내가 너무나 미안했다. 보다 성숙하고 보다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그렇기에 늘 편안하게 품어주는 엄마일 수 없음이.... 미안했다. 이런 나의 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따뜻한 아들임이 미안했다.      

 더 이상 말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큰 아이를, 그리고 큰 아이는 나를 안았다. 큰 아이는 안겨서도 계속 울었다.... 나는 정신 차리고 차분하게 말을 하자고 넌 엄마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과잉이 아니길 바랐다. 

“OO야 엄마도 잘 모르니까 OO랑 얘기하면서 잘해보자. 너 화낼 때 OO야 너 지금 화내고 있으니 방에 들어가서 화 좀 가라앉으면 나와.라고 엄마가 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줄까?”

큰 아이는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어린아이인 것처럼.

등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노력 많이 할 것이라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있는 우리를 애아빠는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그리 싸우더니 이건 뭐 하는 장면인고?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큰 아이는 세수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책을 읽고 싶다고....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밝은 큰 아이로 돌아와 나에게 다가와 뭐라 뭐라 하고 간다. 

아직 아이는 아이인가 보다. 저 짧은 시간에 다시 홀가분한 얼굴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니 아직 아이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민호가 나로 하여금 저 어린아이 나를 뒤돌아 보게 하였으니 이제 아이가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가 커 간다는 것은..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하루하루 OO가 커가는 만큼 나도.. 성장하고 있나 보다. 아니 OO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나 보다. 감히 아이를 키운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던 내가 참 자만했구나..

 앞으로 수도 없이 펼쳐질 사춘기 아들과 엄마의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잘 이겨낼 수, 아니 서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극복해 나가며 하루하루 이런 일기를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두 아들에게 다짐처럼 했던 나의 마음... ‘OO야 OO아 사춘기 되어서 엄마한테 못되게 하고 서운하게 해도 엄마가 잘 참고 더욱 사랑할게, 여전히 사랑할게.’    


너희가 커가는 만큼 나도...


작가의 이전글 나는 큰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