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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키코모리 K선생 Jul 08. 2024

숫자를 셀 수 없는 히키코모리입니다

동굴 속 이야기 스물셋

동굴 속 이야기 스물두 번째 글을 쓰고 약 5주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당황했던 일을 얘기하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날 힘들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상상해 봤다. 언어폭력, 몸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 몸의 피로, 고통, 부상, 수면 부족, 저혈당이다. 하지만 정작 날 힘들게 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숫자를 셀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몇 개인지 세는 일이 왜 어려워?


'숫자를 셀 수 없다'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내가 했던 일을 내가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5초 전에 내가 했던 일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확신할 수 없다. 74개를 세었다면 내가 정말 74개를 세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불신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매 순간 스스로를 비난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단 한 번도 상상치 못했던 것뿐이다. (숫자를 세는 것에 곤란함을 느낀 것 처럼 자기확신이 부족해서 당황스러운 일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난 지금 나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난 운전을 하지 않는다. 다리와 같은 구조물 아래를 걷는 것을 꺼린다, 다리를 걷는 것도 꺼린다. 내가 나조차 믿지 못하는데 남을 믿는 것이 가능할까? 어려운 일이다.

다리와 같은 구조물 아래를 걷지 않는다. 맨홀, 배수구를 밟지 않는다
산책을 할 때는 개천에서 멀리 떨어져 걷는다
구조물을 믿지 않는다. 차도를 걷거나 경계석을 걷거나 돌아서 간다




사람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잘 모르겠다. 갈 길이 멀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괜찮다.

이런 날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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