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히키코모리 K선생
Oct 19. 2024
다크 서클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불편한 네가 있어줘서 고마워
난 다크 서클이 있다.
8살. 놀이터에서 다크 서클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픈 사람 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갖는 징표라 했다. 집에 가서 거울을 보니 눈 밑이 푸르스름했다. 부모님께 다크 서클을 없앨 수 있냐고 묻자 자라면서 서서히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크 서클은 여전히 내 눈가에 머물러 있다.
다크 서클은 의지와 관계없이 푸르스름한 색에서 짙푸른 색, 검붉은 색, 붉은색, 검은색으로 이리저리 색상을 바꾸며 여러 문양으로 춤을 춘다. 잠이 부족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피로에 허덕일 때면 색상은 짙어지고 크기는 커진다.
검붉은 다크 서클은 폭행의 흔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8마일(8 Mile), 2002>
몸과 마음이 많이 고생스러울 때면 다크 서클은 광대뼈 언저리까지 내려온다. 그렇게 다크 서클은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불편한 감정을 감추고 싶을 때, 진심을 감추고 가면을 쓴다. 그럴 때마다 다크 서클은 날 방해한다. 표정과 말투로 평온한 척 위장해도 불편한 마음에 잠을 설친 건 다크 서클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게 다크 서클은 내 가면, 감추고 싶은 욕망, 음험하고 불편한 내 감정을 드러낸다. 보여주고 싶은 꾸며진 모습과 내면 간의 괴리가 클수록 더 적나라하게 고스란히 내 추함을 구석구석 드러내고 만다.
설령, 상대가 내 추한 가면을 다크 서클로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마음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불편하기만 하다.
다크서클은 나에게 말한다. '거짓말장이! 위선자!'
그래서 난 다크 서클이 불편하다. 그리고 싫다.
'아. 이건 거짓말쟁이의 낙인이구나...'
어느 늦여름 아침. 거울에서 얼굴을 보랏빛 나비 모양으로 뒤덮은 다크 서클을 보았다. '넌 왜 일평생 내게 있는 걸까? 이 흉측한 녀석!'
오전 내내 일하며 이 녀석이 내게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어쩌면, 다크 서클은 수십 년 동안 매일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성장하라며 인간이 되라며 재촉해 댄 또 다른 솔직한 내가 아녔을까? 모든 것이 무너졌고 흉측한 내 마음과 욕망에 침범당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내 마지막.
나를 보여줌에 감사합니다. 남아줘서 감사합니다. 죽는 날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