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일과 가정의 균형

무엇이 우선인가

by 빛해랑

불빛이 새어 나오는 딸 유이 방에 기척을 하고 들어갔다. 어두운 조명 아래 책 한 권을 안은 채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다.

"왜 아직 안 잤어? 엄마 기다렸어?"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엄마의 필사나 글쓰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나 보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족의 얼굴 보기가 힘들까. 아침엔 부랴부랴 출근하고, 퇴근 후엔 블로그에 글 한 편 쓰느라 딸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 엄마에게 방해 주지 않으려고 저녁도 혼자서 해결했나 보다.

방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서관에서 의학 관련 책을 읽었고, 치과에 다녀왔고, 보건소에서 대사증후군 검사했고….

눈꺼풀이 내려앉으며 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만 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엄마의 할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려 준 유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쉬고 싶었다.

문득 "엄마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 화가 난다"라는 며칠 전 유이 말이 생각났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면서 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방을 나왔다.


얼마 전 유이가 "엄마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라고 했다. 일이 항상 우선인 엄마라서 대화를 바라는 일에 지친다는 뜻이다. '내가 일이 우선인 엄마였구나!'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면서, 막상 당사자인 가족에게는 일이 먼저인 사람이었던 거다.

일도 가정도 잘 해내고 있다고 착각했다. 자기 계발한다고 끼니도 챙기지 않는 엄마에게 화를 낼 만도 하다. "엄마의 취미생활"이라서 봐주는 거라고 말해주었던 딸이다.


엄마에게 무엇이 우선인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도 아니다. 엄마 못지않게 바쁜 딸이다. 태도가 문제였을 것이다. '밥은 먹었는지', '요즘 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괜찮은 건지' 몇 마디를 나누지 못할 만큼 바쁘지는 않지 않은가.

좋은 엄마, 괜찮은 아내, 본받고 싶은 이웃이 되고 싶었다. 생각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상대는 오해하고 서운한 마음을 품는다.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이 무슨 벼슬도 아닌데 가족의 희생을 바랐을까. 책을 읽고 양식을 쌓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유세를 떨 일인가.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기를 진심으로 나에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