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힘
점심을 먹고 공원을 걸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몸이 움츠러든다. 아이들은 추위가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아직 녹지 않고 남아있는 눈두덩 주변에 몇몇 아이들이 모여있다.
"이거 내가 만들었던 눈사람이야. 다 망가졌네! 야! 우리 이거 파보자."
"너무 꽁꽁 얼어서 손으로는 안 돼!"
맞은편 아이가 말하며 흙과 나뭇잎이 한데 엉겨 붙어 얼어 있는 눈을 발로 찬다.
"야 더 파! 계속해서 파!" 점점 흥분하는 아이들 소리에 웃음이 참아지지 않는다. 앙상한 나무와 차가운 바람만 있는 텅 빈 공원에서도 아이들은 놀거리를 잘도 찾는다.
겨울이 되어도 예전처럼 눈 구경을 많이 못 한다. 어린 시절 시골의 겨울은 천지사방이 눈이었는데 말이다. 시골의 겨울은 일찍 시작되고 늦게 끝나는 것처럼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언니 오빠를 따라 매일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놀 거리를 찾았다. 추위 따위 아랑곳없이 세상에서 할 일은 노는 것밖에 없는 듯이 놀았다.
온 동네 아이들이 어울려 다니며 썰매도 타고, 술래잡기, 말뚝박기, 가위바위보 게임 등 놀다 보면 하루해가 짧은 것이 아쉬웠다. 아무리 추워도 참았다. 왠지 놀던 중간에 집에 가면 안 될 것 같은 어린 마음이 있었다.
질 좋은 외투도 없던 시절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잘 놀았다. 해가 산 너머로 뚝 떨어지고 골목이 어둑해질 때까지.
얇은 운동화로 눈밭을 휘젓고 놀았던 탓에 양말이 젖어 두 발에 감각이 없을 때쯤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 시간쯤이면 엄마는 저녁밥에 뜸을 들이고, 아버지는 아궁이에 마지막 잔불을 정리 중이다.
아버지는 동태가 되기 직전의 나를 옆에 앉혀 놓고 언 발을 녹여 주었다. 양말은 무쇠솥뚜껑에 올려두셨었지. 작고 붉은 숯덩이들 위에 석쇠로 김을 굽거나, 조기를 굽곤 하셨지. 운이 좋으면 군밤이나 군고구마가 내 차지가 되기도 했다.
잊고 살았다. 어린 시절 친구가 있었고, 놀아준 언니 오빠가 있었고, 나를 따뜻하게 사랑해 준 엄마,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내게도 그런 행복한 날들이 있었구나!
찬바람이 일던 마음에 불이 지펴진다. 추운 날에도 공원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에게서 깨달음을 얻는다. 단순히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지금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작고 소중한 일상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