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사는 법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by 빛해랑

작은 아가야~ "시어머님이 나를 부르신다. 살면서 유일하게 한 사람에게만 불리는 '아가'라는 호칭이다. 젊었을 땐 낮 간지럽고 싫었지만 지금은 익숙하고 어머님께 늘 '아가'인 게 좋다.


시어머님은 사십 대 초반에 왼쪽 눈의 시력을 사고로 잃으셨다. 아버님께서 치료해 주시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끝내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셨고 지금껏 오른쪽 눈만을 의지한 채 살고 계신다. 그런 어머님이 어느덧 구순에 가까워간다.

"작은 아가야 얘들(딸아이들) 보고 싶다" "또 언제 볼지 모르니 둘이만 오지 말고 얘들 데리고 오너라. "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혹시라도 당신이 살아생전에 손녀 얼굴 못 보고 가게 될까 봐 하신 말씀인가....


믿기 힘들겠지만 결혼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어머님께 언짢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꾸지람은커녕 싫은 소리, 잔소리 한번 들어본 적도 없다.


무엇을 하든 "~해라"소리는 하지 않으신다. 끼니때에도 당신이 먼저 식사 준비를 시작하시면 형님과 나는 밥 차리는 신호로 알고 얼른 상을 보곤 했다. 그러면 "소금은 아래 열어보면 있을게다" "간장은 병에 담아진 것 쓰면 된다 " 다정한 소리로 양념을 챙겨주시곤 했다.


바깥일밖에 모르시는 형님이나 부엌살림에는 소질이 없는 나나 어머니께는 빵점짜리 며느리들 이건만 못난 두 며느리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품어주신다.
어머니 눈에는 늘 형님과 내가 큰 아가(손위 동서), 작은 아가일뿐이다.


이 나이 먹도록 매번 어머님께 용돈을 받는다. 며느리와 손주들만 주신다. 양말도 명절 때마다 챙겨주신다.


예전엔 명절, 생신 때만 찾아뵈었지만 최근엔 자주 뵈러 간다. 내가 못 갈 땐 남편 혼자 보낸다. 너무 연로하셔서 옆에 모시고 싶지만 깔끔하고 점잖은 성격에 한사코 마다하신다. 그나마 돌봐드리는 분은 거절 안 하시니 다행이다.


남편이 미울 때에도 "어이구 어머님 때문에 참는다"라고 조용히 혼잣말할 때가 많았는데....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은 무서움에 떨게 한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 곧 닥칠 것만 같아 두렵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가슴이 미어진다. 아이들도 전달되는 무엇이 있는 건지 늘 달던 핑계 한마디 없이 할머니를 뵙는다.


"나는 성장하는 동안 좋은 스승과 좋은 벗을 많이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과 교훈, 그리고 모범이 가장 훌륭한 교훈이었다"-발포아

120세 시대라는데.... 손주가 결혼해서 증손자 보시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라본다.


어머니! 부디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