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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11. 2024

브런치 100일, 그 뜨거운 기록

신고식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까지 브런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작심을 하고 24년 1월 1일 새벽에 첫 글을 발표하고 지금 4월 11일, 목요일 현재, 51편을 발행했다. 100일 하고 하루가 지났다.


20여 년 전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긴 했었다. 그러다 기도와 수행의 삶으로 선회하면펜을 내려놓았다. 그 무렵 내 옆엔 책 대신 고양이들이 찾아왔다.

이대로 그럭저럭 살만했다.


2023년, 어느 귀인의 삶이 나를 크게 각성시켰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콩나물 국밥집 대표님. 네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감히 오를 수 없는 경지의 인물이시다.

신문에 실린 귀인의 글이 죽비가 되어 내 어깨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모두가 잠든 시각에 끓고 있는 육수통옆에서 연필을 깎아 초고를 쓰고 계셨다.


' 참, 나도 글을 썼었지?'


십여 녀 만에 다시 컴 앞에 앉았다.

다시 글 좀 써볼까? 하면서 옛 문인들을  찾아보니, 나랑 함께 비등하게 글을 썼던(나보다 못 쓴다고 깔봤던ᆢ) 문인들이 교수가 되어있었다.

 대형 출판사의 편집장이 되었는가 하면, 지역의 대표 문인으로 성장하여 기관에서 함부로 건들지 못하는 협회의 회장들이 되었고, 신춘문예 심사위원장으로 급성장을 했다.


불교 소모임에서는 뒤늦게 뭐 좀 우러 다닌다며 자주 자리를 비우던 사람들이 십 년 사이에 대명창이 되고, 국선 민화작가가 되었으며 살풀이 으로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너나 할 것 없이 특출한 기량을 발휘하여 정상에 서있었다. 


늦게나마 꾸준히 기량을 닦아  찬란히 꽃들을 피우고 지역을 넘어 전국을 넘나들며  큰 상들을  경쟁하듯 받았다. 나도 덩달아 바빴다. 그들에게 가져다줄  꽃다발을 준비하느라고 말이다.

이제는  초청 공연과 제자들  육성하느라 얼굴 보기가 더더욱 힘들어졌다.


그럼  그동안 무엇하였는가?


내 이력서에  길만한 기록이  등단 이후로 20년 동안 비어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한 줄 새겨놓을 경력이 전혀 없었다.

절간을 직장 삼아 25년을 쉬지 않고  한자리에서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는 반성각성이 크게 일어났다.

끝에 시작된 나의 브런치 입문.


여기에도 람이 살고 있었다.

글만 발행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여기에도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정말 치열하게 삶을 가꾸면서  브런치 바다를  유히 헤엄치고 대작가들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방금 글을 발행했지만  나의 글은 유령처럼 사라져서 나조차 찾기 힘들었고 브런치 화면이 켜질 때마다 대문을 장식했던.  넘사벽 큰 별 작가님, 큰 산 작가님, 오랜 님, 큰 힘이 되어준 초맹 님,  말랑이님, 댓글로 응원해 주신 다수의 작가님들...


대한민국 인재들은 브런치에  모여있었다. 브런치에서 인정하는 작가가 나에게 응원의 댓글 한 줄을 달아주었을 때, 경시대회 큰 상을 받은 것처럼 뿌듯했다.


 결과  <이혼하셨어요? > 현재 조회수 23,000회를 넘었고,

 <이혼 두 번 할까 두려워 재혼 못하겠어요>는 8천 조회수,

<내 눈엔 고양이만 보여요>9,500 조회수, <고양이 축원을 하면 생기는 일> 3,000 조회수 기록을 세웠고 오늘 현재 구독자는 137명이다.


 오늘까지도 고공행진 중인 <이혼하셨어요?>라는 글에  순수  독자님께서 3천 원을 응원해 주셨을 땐, 가슴이 벅차올랐다. 최선을 다해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3월 중순쯤에 덜컥 독감에 걸려버렸다.

쉴 새 없이 기침과 가래가 들끓어서 일상 대화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운전석옆에 비닐봉지를 두고 다녔다. 수액주사와 독한 약을 삼키면서도 글을 썼다.

'나 이렇게 아파요?'라는 글을 썼다가 삭제했다. 작가님들의 눈물겨운 투병기와  간병기록 앞에서 차마 독감 걸린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다.


내 글에 라이킷주신 분들에겐 답례의 의미로 구독을 눌러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그분들의 글을 모두 읽으려다 보니 하루 종일 브런치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처음 구독자 백 명이 넘으면 떡 한말 해서 잔치한다고 했는데, 남사스러워서 그만뒀다.

사람심이 끝이 없어서 백 명을 넘고 보니 삼백 명, 오백 명, 천명까지 갔으면 하는 야망을 꿈꾸어본다.


 아직 내 주위의 네댓 명 외에는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줄 모르고 있다. 카톡이나 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도 하지 않으니 나의 글이 확장되어 구독자수가 늘어나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구독자 욕심에 단체 카톡으로 친절하게 사이트까지 링크해서 보내드리고 싶지만 혹시나 응원금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망설여진다.


일취월장한 동료 예술가들의 역량이 커져버려  좀처럼 나랑 놀아주지 못한 것처럼 요즘  나도 그들과 통화와 연락이 뜸해지고 있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종일 놀고 있기 때문이다. 읽고 댓글 다는 것, 이것도 큰 집중이며 공부이다. 열심히 뽀시락거리며 글 맛집을 순례 중이다.


이제 이력서에 추가할 경력이 생겼났다

<2024년 1월부터 브런치 가로 활동 중>

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다.

우선 일 년을 목표로 오로지 브런치 글의 바다에서 헤엄칠 예정이다.

연재 두 편과(화. 금), 매거진 두 편(목. 일)으로 편성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바쁘게 내 글을 쓰면서 또한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읽으며 댓글독후감을 대신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처럼, 나는 대선배 작가들에게서 많이 배우고  배울 것이다.


백일동안 밤낮없이 브런치 작가님들을 염탐해 보니 각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촌뜨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모두 다 내로라하는 프로님 들이시다.

브런치ㅡ 카카오ㅡ 다음 ㅡ 대한민국 대표 포털사이트!

브런치에서 인정받는 작가는, 가히 대한민국에서  공히 인정하는 작가님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글쟁이들끼리의 펜의 전쟁이다.


나도 여기에 이름을 새기려 시골 촌뜨기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기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목표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업무에

충실하면서 기도와 수행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고양이도 돌보면서,  글도 쓰면서...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네 뭐. 지금은 대학원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못쓰지만. . .?'


 <섣달 그믐날에 족발을 시켜놓고>라는 글에 등장했던  ㄱ과장이  내 글을 평가절하했지만  일주 일에 네 편씩을 써 내려가는 파죽지세에 눌려 코가 납작해진 느낌이다. 에 부칠 땐 쪽수강하게 밀어붙어야  한다.

나, 조회 수, 23,000  나온 여자야!


브런치 입문을 도와주면서  옆에서  이것 써봐라, 저것 써봐라,  내용이 고리타분하다, 젊은 애들이 읽힐 수 있는 글을 써라, 하면서  숙제를  내주는 0 과장이 어느 날  진지하게 물었다.


" 어째, 그전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걸음걸이나 표정이 당당하고 기운이 넘쳐요. 

브런치에서 크게 떠버리면 엄청  바빠질 텐데, 그때는 저랑 놀지 않겠네요?


  날이 진짜 오는지, 안 오는지? 새로 개업한 소바집에서 세트메뉴에다 음료까지 사주는 것으로 내기를 걸었다. 날이 올 때까지 바집이 업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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