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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r 20. 2024

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아침엔 꼭 따스한 물 한 컵과 종합 비타민제와 경옥고를 먹고 점심엔 명절 선물로 들어온 홍삼제품과 비타민 d, 한 알을 먹는다. 저녁엔 역시 비타민 베타 한 알과 허리 관절에 좋다는 약을 꼬박꼬박 먹고 있다.


불과 3년 전까지는 단 한 개의 약도 먹지 많았는데 나이가 드니 약 선전에 눈과 귀가 쏠린다. 신경이 둔한 편이라 그런지 솔직히 말해 약효가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먹지 않았을 때보다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별 효과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아리송하다. 하지만 이것마저 먹지 않는다면 곧바로 몸에 이상이 생길까 싶어 예방 차원에서 습관적으로 복용을 한다.


너무 과하게 먹는 거 아닌가 싶어 넌지시 물어보면 종합비타민제, 칼슘제, 오메가 3, 혈액순환제, 마그네슘, 당뇨예방, 치아건강, 손목관절약, 고지혈약... 등등 진짜 한 움큼씩 먹고들 있어서 이거라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하루에 복용해야 약들을 질서 정연하게 먹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감기가 걸리거나 소화 기능이 약해져 위장장애가 일어날 경우에는 감기와 위장이 나을 때까지 잠시 중단한다. 독한 감기약들과 함께 먹으니 몸이 너무나 부대껴서 어질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렇게 습관처럼 약을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당췌, 내가 방금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이다. 분명 약을 삼키려 컵에다 물을 담아 온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내가 약병을 집어서 약을 꺼냈나? 꺼냈으면 분명 먹었을 텐데?

안 먹은 것 같은 이 기분ᆢ당췌 모르겠다. 약병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컵에 든 물의 양까지 유심히 바라 본다.

'내가 물을 이만큼 따랐나? 약을 삼켰으면 물이 줄어 들어야 정상인데, 물을 마신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식탁에 서서 물과 약병을 이리보고 저리 보면서 갈등을 한다.

진짜, 당췌 약을 삼켰는지, 꺼냈는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 르. 겠. 다.

기억력을 어떻게든 되살리고파 천천히 생각해 본다. 침착해~침착해.

'조금 전에 보리차 물을 컵에 따르고 나서 따뜻하게 데운다고 전자레인지 앞에 와서는 약병을 들어? 안들었..? 아니지, 분명히 보리차 물은 컵에 따랐는데 약병의 뚜껑을 먼저 열어? 안 열어?.. 아니 아니, 보리차 물을 들고 와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는데 너무 뜨거워서 식힌다고 내려놓고서 조금 기다렸다가 약을 꺼내서 먹은 것 같은데? 안 먹었나? 아니 아니 아니, 약병 뚜껑을...?

레코드 판의 바늘이 튀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맴맴 무한 반복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다시 입에 털어 넣으려는 순간, 잠깐!! 스톱!! 을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묘책을 강구해 놓았다. 음하하하~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그냥 먹지 않는 것으로.. 이미 오래전에 나 자신과 무언의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나란 인간 칭찬해~칭찬해.)


그리고 그다음 날이 문제이다.

오전에 먹는 경옥고와 비타민에다 어제 저녁 먹지 않은 관절약, 비타민 베타까지, 네 개를 털어 넣으니 위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억지로 네 가지를 털어 넣고 운전을 하면 머리가 멍해지면서 운전대 앞에서 정신줄 놓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이 엄습한다. 어지럽고 헤롱하고 메스꺼워서 다시 병원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식은땀이 난다. 특히나 감기가 걸렸을 때는 난 감기약 이외에 다른 것들은 입에 대지를 못한다. 심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감기약 한 가지만으로도 몸이 벅차다.


늘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서 자동적으로 약병에 손이 가는데

이제 나도 모르겠다. 내가 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삼켰나? 안 삼켰나? 헷갈린다. 자. 주..

 하루 이틀 먹지 않아도 무방한 비타민제라서 다행이긴 한데, 뇌기억력에 좋은 약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하나 심히 걱정된다. 어느 시어머니는 무슨 약이 든 한 달분을 지어와도 일주일 안에 다 드신다고 하던데 ᆢ혹시 나도 그렇게 변하는 거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양치질하는데 치약인 알고 화장품 지우는 크린싱을 칫솔에 묻히고 입안에 넣었다가 우웩 하고 뱉어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치약과 크린싱튜브가 거의 똑같아서 실수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탓하는 게 아니라,

'아니, 나 같은 소비자를 생각해서 치약과 폼크린싱 제품은 식별하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하며 분노의 양치질을 한다. 가끔은 내 나이가 헷갈려서 절 달력 뒤에 있는 조견표로 종종 확인할 때도 많다.


내가 저녁에 브런치에 글을 썼나 안 썼나?

쓴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글을 쓰다 보니 치매에 가까운 사건들이 몇 가지가 생각난다. 다음화에 소개해 볼까 한다.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이 글이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생각하는 분은 구독과 좋아요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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