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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녹두전과 나의 몽니

by 눈물과 미소



녹두전을 부쳤다. 어제 해물볶음우동을 만들고 남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숙주나물이 냉장고에 있었기 때문이다. 녹두를 불려 믹서기에 갈고, 돼지고기 다짐육에 밑간을 하고, 숙주를 데쳐 정성스럽게 전을 부쳤다. 나로서는 대단히 복잡한 공정의 요리를 해냈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먹지 않는 녹두전이 식탁 위에서 식고 있다. 녹두전을 먹기 직전 실랑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실랑이의 원인은 아이가 다른 아이의 택배를 허락 없이 뜯은 것. 배달 온 옷을 몰래 내다 버린 것도, 입어본 것도 아닌, 단지 택배를 '뜯은' 일이 너무 속상해서 나의 녹두전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식어가는 녹두전을 바라보며, 나는 앞으로 정성스러운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려 한다.


아이들은 택배로 인해 마음이 상했고, 나는 그런 아이들로 인해 마음이 상했다. 아이들은 저녁 금식을 선택했고, 나는 요리를 거부하겠다고 씩씩거리는 참이다. 사람은 이처럼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터무니없이 작은 일로도 마음이 상하면 소송을 벌이는 등 커다란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이 감정싸움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왜냐하면 나는 결국 앞으로도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누군가 언어적인, 혹은 비언어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비언어적인 대화는 이를테면 아이가 방에서 나와 녹두전을 먹기 시작한다던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말없이 요리를 시작한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혹은 양쪽이 조금씩 수그리지 않으면 상황은 점점 험악해진다. 가족 간의 소통 부재로 인한 불편과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한 아이가 녹두전을 먹으러 나왔다. 나머지 아이도 녹두전을 먹으러 나왔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화가 나있다. 나는 기어이 모든 가족의 기분을 상하게 한 일과, 나의 녹두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여야겠는 것이다. 훈계가 아닌 짜증을 내다니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서운했다. 녹두전으로 인해 더욱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의 화는 녹두전이 모두 없어질 때에야 녹아지고, 나의 몽니는 '엄마 죄송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에야 멈출 것이라는 말이었다.


가족이라서 그렇다. 가족은 이렇게 사소한 감정을 주고 받고[치고 받고] 나누는 존재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잘해야겠지만 그렇기에 아이들도 내게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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