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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3)

『더 헌트』와 『피고인』으로 보는 집단의 폭력성과 사법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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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의 희생 제의를 싫어하고 경멸하며 너희 모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가 나에게 불로 태워 바치는 희생제물이나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를 드려도 내가 받지 않을 것이며 살진 짐승으로 화목제를 드려도 내가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 너희는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마르지 않는 개울처럼 흐르게 하라. ‭(아모스서,‬ ‭5:21‭-‬24‬ ‭KLB)‬


피해자를 가해자로: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신화(rape myth)’와
최근 대법원 판결례의 변화 흐름


1. 영화 『피고인』에 드러난 희생양 메커니즘의 작동 원리


   『더 헌트』에서의 마을 공동체 신화가 일련의 사실을 왜곡하는 데 그친다면, 영화 『피고인』이 묘사하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신화’는 단순한 사실 왜곡을 넘어서서 옳고 그름의 판단마저 굴절시킨다. 즉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것(ex. 평소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 피해 당시에 선정적인 의상을 착용하지 않았을 것, 정조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여 도망쳤을 것)이라는 ‘신화적 해석의 틀’은 끔찍한 성범죄의 희생양을 도리어 가해자로 탈바꿈시키는 정신적인 곡예를 유발한다.


   전통적인 여성 정조 관념에 기초한 신화는 매우 강력하여, 정의와 공정을 기해야 하는 법조인들조차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피고인』에 등장하는 여성 검사 또한 피해자다움의 신화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려고 하는 대신, 신화의 해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회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피의자들을 '강간죄'로 기소하지 않고 '단순폭행' 및 '상해죄'로 기소한 것이다.


   이러한 법적 판단에 따라 피해자인 사라(Sarah)는 공동체 내에서 온전한 피해자로 현상하지 않고 오히려 성범죄를 부추긴(instigate)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주홍글씨를 바라보며,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린 불미스러운 사건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그 여성이라는 논리적 비약을 감행한다. 기존의 질서를 재생산하기 위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사라는 언론에 의해, 일상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에 의해, 심지어 가까운 지인들에 의해 난잡한 여인이라는 조롱과 멸시를 당하며 범죄의 가해자보다도 못한 삶을 강요당한다. ‘미래가 창창했던 한 남학생’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집안의 기둥이 되는 한 가장’이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신화공동체’는 강간의 피해자였던 한 여성을 희생양으로 선택해 그에 대한 2차 가해를 정당화한다.


2. ‘피해자다움의 신화’를 ‘인권의 서사’로: 일련의 대법원 판결


   영화 『피고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아무리 사실확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더라도 법률의 해석적용을 뒷받침하는 공동체의 정의 관념이 올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면 희생양 메커니즘은 근절되지 못한다. 재판절차의 공정성 확보로써 사실인정의 정확성을 기하는 것과 함께, 모든 인간의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을 선언하는 헌법 질서를 법률의 해석적용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일련의 대법원 판결은 고무적이다. (1) 법원은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하며,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유념하여야 한다고 설시한 2017두74702 판결, (2)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다고 설시한 2020도6965 판결, (3) 강제 추행죄의 성립 요건으로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한 2018도13877 등은 모두 ‘피해자다움의 신화’를 ‘인권의 서사’로 전환하기 위한 법원의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나가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니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서 있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한의 복음서,‬ ‭5:21‭-‬24‬ ‭KLB)‬


   군중에 둘러싸여 돌을 맞을 위기에 처해있는 '개인'과, 그에게 있는 힘껏 돌을 던지려는 '집단' 중 과연 '죄인'은 누구일까? 맹목적으로 돌 던질 자세를 취하고 있는 집단의 구성원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 『더 헌트』와 『피고인』은 '집단'이 과연 '무죄'인지를, 그의 표적이 된 '개인'이 과연 '유죄'인지를 언제나 의심해보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본 글은 이른바 '희생양 메커니즘'을 근절하기 위한 법적 해결책을 두 영화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논하고자 했다. 루카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는 공정한 재판절차의 설계가, 사라의 아픔을 막기 위해서는 법률의 올바른 해석적용이 보장되어야 함을 논증했다.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집단적 마녀사냥'이 아닌 '사법적 지혜'가 요구됨을 말하고자 했다.


   언젠가는 일체의 희생제의가 사라지기를, 다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되기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개울같이 넘쳐 흐르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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