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이 나를 지키는 방식
여행은 우리를 현재로 되돌려 놓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붙잡아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3월 6일,
모교 세브란스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임상조교수 닥터 J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의 나는 중국 국가자연과학기금(NSFC) 신규과제 두 편을 동시에 준비하며
마감까지 열흘 남짓 남은, 시간이 초 단위로 쪼개지던 시점에 있었다.
전화는 자연스럽게 논문과 특허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진행 중인 연구들을 점검하듯 하나씩 짚어가던 대화의 끝에서,
그는 문득 이렇게 말했다.
“L 교수님이요, 박 교수님 안부를 늘 물어보세요.
본인이 직접 연락하시면 될 텐데, 꼭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젊은 사람들끼리 편하게 소통할 거라 생각하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올해는 과제 두 편을 혼자 다 써야 해서,
한국에 들어갈 여유가 없었어요.”
사실 나는 2월 초, 이미 서울을 다녀왔다.
전셋집을 정리하면서, 과제 준비를 병행하는 숨 가쁜 일정 속에서
그저 박사 지도교수님 한 분만 조용히 뵙고 돌아왔다.
세브란스를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굳이 알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다시 만날 시간도, 그럴 여유도,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닥터 J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교수님이 늘 그러세요. 박 박사님 같은 분 모셔오라고요.
지금 랩에 인력이 부족한 건 아닌데,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그 말은 곧, 연구조교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할 틈도 없이,
이미 오래전부터 정리해 두었던 마음을 그대로 꺼냈다.
“늘 저를 기억해 주시고 좋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 덕분에, 중국에서 고독을 버티는 힘을 얻었어요.
세브란스는 아마 제가 이번 생에 가장 사랑했던 직장이 될 거예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다른 단계로 와버린 것 같아요.
연구조교수는 언제나 다음 해를 걱정해야 하는 자리잖아요.
지금의 저는 제 연구를 스스로 책임지고, 제자들을 키우고,
앞으로의 구조가 보장된 자리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제는 다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자리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말을 마친 뒤,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을까.
하지만 답은 분명했다.
— 그래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깊이 몰입했다.
이를 악물고 과제에 매달렸고, 기존 연구를 다시 점검하며 자료를 갈아엎듯 정리했다.
중국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문장을 수없이 고쳐 쓰며 내 연구계획서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돌이켜보면, 그 전화는 단순한 연락이 아니었다.
나를 흔들어 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나의 자리를
다시 또렷하게 확인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다.
연구과제 두 편을 제출 후 며칠 뒤, 나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를 다시 연구조교수로 오라네. 이미 전임교수인데.”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 뒤에 남은 공기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조용히 올라왔다.
엄마는 잠시 말을 고르듯 침묵하다가,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만큼 네가 필요한 사람이란 거겠지.
언제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까지 담아서.”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사실에 가까운 문장이었다.
잠시의 공백 뒤에, 엄마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최대한 좋게 말했지. 그래도 솔직히… 속으로는 좀 웃겼어.”
엄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짧게 숨을 내쉬듯 웃었다.
“너는 원래 항상 그렇게 살아왔잖아. 이 악물고 버티면서.”
그 말에는 오래 지켜봐 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체념과 안쓰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엄마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우리 딸은, 중학생 때부터 쉬는 날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괜히 시선을 조금 피하게 되었다.
엄마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좀 쉬어. 연휴 때 엄마랑 여행 가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너무 오래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을.
학교와 집, 연구와 결과 사이를 오가며 나는 단 한 번도 제자리에서 멈춰 서 본 적이 없었다.
마치 고속열차처럼.
그래서 이번 청명절 (주말 포함 3일) 연휴,
나는 고속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청명절은 중국의 전통 명절로, 조상을 기리고 봄을 맞이하는 의미를 가진다.
매년 4월 초에 해당하며, 올해는 양력 4월 5일이다.)
근무지를 벗어나 처음으로 중국의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이 글이 발행될 즈음,
나는 아마도 어딘가 낯선 풍경 속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말한다.
우리는 삶의 난제들에 포위당할 때, 때로는 맞서 싸우기보다 달아나야 한다고.
그는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 “주위상(走爲上)”을 이야기한다.
불리할 때는, 도망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것.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문득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떠나려는 이 여행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지금의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여행은 우리를 현재로 되돌려 놓는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붙잡아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브리엘 마르셀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결국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돌아보면, 나의 인생 역시 하나의 긴 여행이었다.
세브란스에서의 시간,
끝내 떠나지 못했던 유럽,
그리고 결국 다녀온 미국,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중국까지.
그 모든 경로는 처음 계획했던 방향과는 달랐지만,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마치 여행처럼.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여행의 이유는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익숙해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흐려진 감각을 다시 깨우기 위해 우리는 떠난다는 것을.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연구실로 돌아갈 것이다.
논문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다른 과제를 준비하는 일상으로.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조금 더 단단해진 시선으로.
그러니 이번만큼은, 나는 기꺼이 도망치기로 한다.
그리고 그 도망이 결국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