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사랑의 이름으로 시작되지 않았던 그 감정이,
이제는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나아가기로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2026년 봄, 나는 중국 국가자연과학기금(NSFC) 두 건을 제출했다.
작년에 처음 도전했을 때는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더욱 조심스러웠고, 마음 한편에 작은 두려움도 있었다.
과제 제출을 마친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20대 후반, 세브란스에서 청춘을 함께했던 H군이 나타났다.
시간이 멈춘 듯, 우리는 그때 모교 의대의 익숙한 로비에 서 있었다.
그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는 시작해도 돼요.”
그리고 키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기에,
꿈속에서조차 나는 놀랐다.
잠에서 깬 후 한참을 생각했다.
왜 하필 지금, 그가 내 꿈에 나타났을까.
그 꿈은 나를 2017년 봄,
벚꽃이 만개하던 연희동으로 데려갔다.
그 시절의 나는 연구실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고 있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며
계절이 바뀌는 것도 종종 놓치곤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H 군이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늦게 수련의를 시작한 그는,
당시 레지던트 로테이션으로 일산의 병원에서 근무 중이었다.
당직을 마치고 피곤할 텐데도,
한 시간 넘게 달려 세브란스로 오겠다고 했다.
짧은 메시지였지만,
그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약속 시간에 맞춰 만나
연희동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담담했고,
나는 그 옆에서 뒤늦게 계절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의 연락이 아니었다면,
나는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을 모른 채
연구실 안에서만 꽃다운 20대 후반을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였고,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본과 4학년으로 우리 연구실에 실습을 나왔을 때였다.
그 이후로,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고 여유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신촌 일대에서 식사를 하며 자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사이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연인이라 부르기엔 부족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기엔
서로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H군에 대한 이야기는 연재 완료된 브런치북에서 한 번 다뤘었다. 응답하라 2016)
2017년 가을,
나는 유럽으로 포닥을 가게 되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의 표정이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겨울이 지나고,
2018년 1월 1일.
식사를 함께한 후 그는 내게 이렇게 이런 편지를 건네주었다.
“하찮은 나로 인해 당신의 창창한 앞날을 망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 탁월한 과학자로서 마음껏 비상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나를 보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하찮다"라고 비하하면서까지 나를 밀어내는지.
그래서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의미를 갖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나는 유럽으로 떠나지 못했다.
첫 해외 그랜트 도전은 실패로 끝났고,
나는 다시 세브란스에 남아 연구를 이어갔다.
연구비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외부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 조건 위에 놓여 있는지 실감했다.
한 달 가까이 영어로 연구계획서를 쓰고, 유럽 교수님과 매일같이 수정과 토론을 반복했던 시간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긴장, 그리고 ‘미선정’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던 순간의 감정은
단순한 실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아쉬움과 함께, 어딘가에 잠시 머물러도 된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멈춤이 아니라 축적의 시간이었다.
2020년, 내 연구는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나는 결국 미국 포닥 펠로우십을 수주하게 되었다.
첫 도전에서의 실패는,
두 번째 도전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H군은 어디선가 내 소식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신촌, 내가 가장 좋아하던 R 레스토랑에서.
그는 여전히 조용한 표정으로 나의 선택을 축하해 주었다.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그가 그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22년, 내가 미국에서 세브란스로 돌아와 연구조교수로 재직 중인 어느 날
H군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학위논문 연구계획서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이미 몇 년 전의 자료를 꺼내
조심스럽게 그에게 건넸다.
“참고만 해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다시 신촌에서 만났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같은 장소 R 레스토랑에서.
그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연세의대라는 곳은,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또 다른 ‘더 잘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곳이다.
굳이 나를 다시 찾아올 이유가 있었을까.
이미 한 번, 어딘가 어긋났던 관계인데도.
그 질문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여전히 많은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박사과정의 어려움,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은 끝내 꺼내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 단지 연구계획서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여전히 나라는 사람을 어딘가에서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이미 해외 대학교 전임교수 임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두 시간 남짓의 식사와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2023년 봄, 나는 그와 작별하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났다.
2018년, 이미 작별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에서 전임교수로, 부교수로 활약한 지 만 3년이 넘은 지금,
H군의 박사 졸업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성과는 다소 아쉬웠다.
impact factor 1점대 정도의 논문을 게재하고 겨우 졸업의 문턱을 넘은 것이었다.
문득 생각해 본다.
그가 친구였던 나에게 더 일찍, 더 깊이 지도를 요청해 왔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까.
“하찮은 나로 인해 당신의 창창한 앞날을 망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 탁월한 과학자로서 마음껏 비상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의 말은, 이제 와서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한 사람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정확한 말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며 살아갈까.
누가 처음 했는지, 정말 그 사람이 한 말인지,
그 말에 담긴 진실된 마음은 무엇인지,
문장의 출처와 진위를 확인하는 데 집요해진다.
마치 그것이 진짜일 때에만 그 의미도 유효해지는 것처럼.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그 믿음에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은, 모든 말은 이미 한 번은 말해졌지만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사랑’이라는 느슨하지만 깊은 띠로 묶어낸다.
어떤 감정은, 굳이 사랑이라는 말로 명명되지 않아도
이미 우리에게 사랑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괴테는 인간의 한계를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개인의 능력과 직업적 전문성의 경계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H군에게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의 한계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불안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고 있었다.
제한된 시간과 여유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견뎌내야 했다.
어쩌면 그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했던 나의 앞날을
자신의 감정으로 붙잡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청춘을 갈아 넣어 연구성과와 명예를 쌓아가야 했던 나의 시간 속에서,
그는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방향을 흐리게 하지 않았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는 하나의 조용한 배려로 남아 있다.
나는 이제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진다.
그는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니었을까.
왜 끝내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질문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말이 결국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가이다.
“하찮은 나로 인해 당신의 창창한 앞날을 망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 탁월한 과학자로서 마음껏 비상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러 있다가,
가장 적절한 순간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까지 밀어냈다.
사랑은 반드시 고백의 형태로 완성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감정은 이름 없이 스쳐 지나가고,
끝내 확인되지 않은 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한 사람의 삶에 남긴 방향은
오히려 더 오래 지속된다.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사랑이었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감정이 내 안에 무엇으로 남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끝내 사랑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2026년 봄,
“이제는 시작해도 돼요.”
그가 꿈속에서 건넨 그 말을,
나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여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국 국가자연과학기금(NSFC) 두 건을 제출한 바로 그날 밤,
그 문장은 마치 오랜 시간 미뤄져 있던 답처럼
다시 내게 도착했다.
첫 도전의 실패를 지나,
두 번째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비로소 허락된 문장처럼.
그가 남겨주었던 말처럼,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
나의 자리에서 끝까지 비상하라는 조용한 격려처럼.
사랑의 이름으로 시작되지 않았던 그 감정이,
이제는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나아가기로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