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결핍조차 시간이 지나면 잔잔한 복리처럼 우리를 단단하게 한다
행복의 모양은 상상과 다르다.
성공이 자부심과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우리가 가늠하던 크기와 결은 늘 조금씩 빗나간다.
다만 청춘의 결핍조차 시간이 지나면 잔잔한 복리처럼 우리를 단단하게 한다.
2025년의 마지막 일요일.
며칠 뒤면 2026년의 첫 아침이 열린다.
유튜브는 요 며칠 <응답하라 1988>을 자꾸 추천했고, 나는 기꺼이 눌렀다.
드라마는 이상하다. 화면 속 골목과 방 안의 조명이 그때의 공기와 체온을 데려온다.
2015년 겨울부터 2016년 초까지—벌써 10주년.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TV를 보며 “어제 그 장면 봤어?” 하고 수다를 떨 친구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유난히 또렷하다.
그래서 오늘은 나만의 시리즈, <응답하라 2016>으로 돌아가 본다.
2016년은 내가 박사 졸업의 해였다.
긴 성장곡선의 가장 추운 고비를 지나, 가장 뜨겁게 불타던 계절.
그때 나는 본방사수로 보던 <응답하라 1988>의 남편 맞히기를 친구와 국밥집에서 토론하곤 했다.
내 친구는 우리 병원 레지던트. 그는 늘 말했다.
“나는 매뉴얼로 환자를 치료하지만, 너는 ‘없는 길’을 만든다. 그게 더 고된 일일 거야.”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연구실 형광등 아래에서 버틴 수많은 밤에 작은 난로가 되었다.
그러나 연구라는 일의 이면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투고, 리젝, 재투고, 그리고 때로는 저작권과 공저자 순서 같은 정치.
2016년 초, 한 편의 논문에서 겪은 불공정은 지금 돌아보면 해프닝이지만,
그때의 나는 젊고 단단했기에 더 아팠다.
같은 랩에선 말하기 어려운 마음을, 연구의 구조를 이해하는 친구와 나눴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두 길—임상의와 연구자의 길—
그래서 더 깊이 들어줄 수 있었던, 시절 인연이었다.
그 친구는 집안의 빚을 떠안고 살았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라며 염세를 내놓던 밤들.
나는 그때 이렇게 답했다.
“너 자신이 가장 큰 자본이야. 길이 멀고 굽어도, 언젠가 빛은 너에게 도착해.”
지금 우리는 연락이 뜸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말들은 여전히 내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인다.
가까웠기에 멀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궤도로 공전하는 시간이 시작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는 힘들어도 입맛에 맞는 한식을 친구와 먹으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지금은 전임교수라는 목표를 이뤘지만,
낯선 도시의 식탁은 여전히 내 입맛과 먼 편이다.
대신 나는 방법을 바꿨다.
혼자 소고기뭇국을 끓이고, 김치두부국과 고등어를 굽고, 책을 펴고 글을 쓴다.
연구자의 냉정한 두뇌와 감성의 서랍을 함께 쓰는 법.
타인의 감정에 닻을 내리기보다, 문장에 닻을 내리는 법.
한국에서처럼 “같이”의 온도를 얻기 어려운 날,
글은 나를 다시 사람들 곁으로 데려다준다.
전임교수가 된 지금도 솔직히 말하자.
행복의 모양은 상상과 다르다.
성공이 자부심과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우리가 가늠하던 크기와 결은 늘 조금씩 빗나간다.
2016년의 그 친구는 “돈 때문에 불행하다”라고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부채가 사라졌는지, 원하는 행복을 손에 쥐었는지 나는 모른다.
아는 것은 하나—
청춘의 결핍조차 시간이 지나면 잔잔한 복리처럼 우리를 단단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겨울 공기, 신촌의 골목, 국밥 그릇 위로 피어오르던 김.
우리는 부유하지 않았고 불안했지만, 그 장면들은 지금도 마음을 따뜻하게 덥힌다.
우리는 결국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응답하라 1997/1994/1988>을 보고 다음 날 직장에서 수다를 떨던 한국의 장면들—
그 공동의 기억은 국경을 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중국의 연구실에서 나는 좋은 동료들과 일하지만,
드라마 한 장면에 동시에 웃고 울 수 있는 감성의 언어는 한국에 있다.
그래서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린다.
나와 같은 언어, 같은 계절을 지나온 당신과 겨울의 기억을 나누기 위해.
그해는 내 20대의 클라이맥스의 해이자, 지금의 나를 만든 해였다.
불공정 앞에서 분노했고,
인정 앞에서 안도했고,
실험대 앞에서 배웠고,
식탁에서 위로받았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내 연구와 글,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만든다.
응답하라—그 말은 과거를 소환하는 주문이 아니라,
과거를 정리하고,현재에 집중하며, 다음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게 하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2016년은 무엇을 남겼나요?
지금의 당신을 만든 문장 한 줄이 있다면?
성공과 행복의 모양이 상상과 달랐던 순간, 당신은 어떻게 균형을 잡았나요?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 떠올리면 따뜻해지는 한 장면을 이곳에 붙여 두시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이 오건, 바람이 차건, 우리의 겨울은 결국 기억의 온도로 버텨집니다.
다음 주, 새로운 달력 첫 장 앞에서도—우리는 또 서로에게 응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