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당장의 보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준다.
지난 연재글에서 나는 중국어로 과제를 직접 작성하고 제출한 과정을 담았다.
중국자연과학기금위원회 국가연구과제 두 건을 제출한 이후에도, 중국에서의 나의 교수 생활은 계속 이어진다. 낮에는 대부분 중국어로 소통하며 학생들을 교육하는 삶이다.
외고 시절 제2외국어로 배웠던 중국어가 이렇게 쓸모 있게, 내 인생의 선택지를 넓혀줄 줄은 몰랐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중국어로 연구과제 두 건을 제출한 직후,
곧바로 영어로 국제학술지에 투고할 논문을 작성하는 역할로 전환되었다.
중국어로 문서를 쓰다가 곧장 영어로 사고를 전환한다는 것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원어민의 사고방식에 그대로 이입해야만,
평가자나 영미권 에디터에게 이질감 없는 하나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나는 중국 학자들, 즉 평가위원회가 선호하는 스타일에 맞춰 자료를 조사하고 수많은 현지 과제 보고서를 분석했다.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중국 과학계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선별해 내는 작업은, 내게 또 하나의 새로운 업그레이드 과정이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는 오히려 영어 글쓰기가 더 수월한 사람이었다.
영어로 논문을 쓰고, 투고하고, 게재하는 일은 이미 수없이 경험해 왔다.
대학원 입학 전 BK21 전액장학금을 받기 위해 응시했던 TOEFL iBT 시험에서도 110점을 받았고,
이후에도 북미 튜터와 화상영어를 10년 넘게 이어오며 언제든 원어민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 왔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서구 세계에서 학자로 살아갈 준비 역시 어느 정도는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33세 때, 단순히 실력 확인을 위해 다시 TOEFL iBT 시험에 응시했을 때도 점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박사 과정과 포닥 시절, 영어로 읽고 쓰고 생각해 온 시간이 쌓여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공부 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던 어느 화요일 오후, 비서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교수님, 연구책임자가 취득해야 하는 <연구실 안전관리 자격증> 시험이 이번 금요일인데, 응시하시겠어요?”
월요일에 국가 과제를 제출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마음과 몸이 모두 하얗게 불타버린 직후였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네, 응시하겠습니다.”
물론 100% 중국어로 치르는 국가 공인 자격시험이다.
이미 벅찬 일정 속에서, 나는 다시 중국어로 연구실 안전관리법을 암기해야 했다.
자연과학이나 의학 용어라면 오히려 익숙하지만, 법규 문장은 또 다른 차원의 문해력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흔히 공부는 어릴 때 해야 하고, 성인이 되면 어렵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면 업무에 쫓겨, 깊이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어로 된 <연구실 안전관리> 문제집 약 1000문항을 풀었다.
자투리 시간을 모아 누적 공부 시간은 약 8시간 남짓이었을 것이다. 전부 풀고 난 뒤, 틀린 문제만 다시 모아 반복 암기했다.
그리고 금요일, 국가 자격시험센터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시험장에는 모두 우리 학교 교수들이었다.
컴퓨터 기반 시험이었고, 관리도 엄격했다. 휴대폰은 수거되었고, 각 자리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감독관 세 명은 자격증 발행 기관 직원들이었다.
객관식 100문항을 모두 풀고 제출 버튼을 누르면, 즉시 합격 여부가 나온다.
나는 문제를 모두 풀고, 표시해 둔 몇 문항을 다시 점검한 뒤 제출 버튼을 눌렀다.
“합격. 축하드립니다.”
이미 버튼을 누르기 전부터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뜬 ‘합격’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묘한 안도감과 함께 하나의 신호를 읽었다.
이번 주 초에 제출한 국가 연구과제 역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예감.
중국에서 새롭게 교수로 출발한 나는, 이곳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스스로 분석하고 있었다.
연구과제를 갈고닦듯, 시험 준비 역시 가볍게 넘기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
그 일관된 태도가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시험이 끝난 뒤, 동료 중국 교수들이 불합격을 받았다고 투덜거리는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안도했다.
뛰어난 교수들조차 연구와 교육에 바빠 시험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듯했다.
오래 근무한 교수들조차 처음 응시하는 시험이었다. 아마 과거에는 이런 자격 제도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겐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반항심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알까.
외국인인 내가, 아무런 배려 없이 중국어로 국가 자격시험을 치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이 선택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중국에서 전임교수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그 책임 역시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현지 언어로 경쟁해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실력이라는 것을.
중국의 과학 연구는 오랜 시간 축적되어 왔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체계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방인인 내가 이곳에서, 그것도 현지인들이 어려워하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오랜 시간 축적해 온 학문, 그리고 언어.
그 두 가지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
그것이 내가 깨달은 ‘공부의 쓸모’다.
최근 읽고 있는 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서, 작가는 파우스트 박사의 한탄을 인용한다.
“아아, 나는 지금까지 철학이며 법학, 의학, 심지어 신학까지 배웠건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학문에 인생을 바친 끝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절망.
사실 나 역시, 한때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명문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의대에서 연구조교수로 근무하던 30대 초반의 나는 현실 앞에서 자주 무너졌다.
명문대 박사 학위와 CNS급 유수의 논문 실적이 있어도, 전임교수 임용이라는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지방대에서 임용 제안이 오기도 했지만, 학령인구 감소라는 불안정 요소 때문에
미래의 안정성을 확신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전임교수로 자리 잡지 못하면, 커리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이 늘 따라다녔다.
어느 날 밤 10시, 퇴근 후 세브란스 병원을 나서던 길에 마주친 연구실 선배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10년 넘게 연구를 이어온 선배는 여전히 연구조교수였고, 생계를 위해 제과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
공부를 잘하면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는 믿음.
그 믿음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공부의 쓸모는 도대체 무엇인가.
명문대 박사여도,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고용 불안과 경제적 불안을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삶에서.
그 질문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선택’을 통해 완성되었다.
33세의 어느 밤, 나는 중국 명문 대학의 전임교수 공개채용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 선택 하나로, 내 삶의 궤적은 완전히 달라졌다.
고용의 불안은 사라졌고, 학자로서의 존엄과 안정, 그리고 충분한 보상이 내 손에 들어왔다.
명예와 권위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공부, 특히 언어라는 도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언어는 나를 다른 나라로, 더 큰 무대로 이동시켜 주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서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결국 내가 깨달은 공부의 쓸모는 이것이다.
공부는 당장의 보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결국 내가 추구하는 삶으로 데려간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공부는,
당장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혹은 아직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공부는 정말 쓸모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그 쓸모가 드러날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일까.
당신의 인생에서 방향을 바꿀 단 한 번의 선택.
그 순간에 당신을 지탱해 줄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의 당신은,
그 선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