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맞게” 할 때 비로소 열매가 된다
노력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맞게” 할 때 비로소 열매가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을 배우는 일은
언제나 늦지 않고 때마다 가치가 있다.
2026년도 벌써 3월 중순까지 달려왔다.
본업에 충실하는 동시에 주 1회 브런치 연재를 이어오던 지난날과 달리, 오늘은 보름 만에 글을 올린다.
방금 전 중국과학기술연구재단에 신규 연구과제 계획서 두 개를 모두 제출했다.
그제야 마음이 한껏 가벼워져, 홀가분한 숨으로 에세이를 남긴다.
2026년 1월 시작부터 오늘까지, 나는 신규 연구계획서 작성에 꼬박 3개월을 바쳤다.
의대 교수이자 연구책임자로서 중국 국가연구과제 두 개를 동시에 제출했다.
동료 교수들조차 신규 과제를 평균 0개에서 많아야 1개 정도 내는 분위기에서, 외국계 교수인 내가 중국어로 연구과제 두 편을 완성해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솔직히 말해 스스로가 대견하다.
기적이라면, 그 기적은 결국 ‘재능’보다 ‘지속’의 형태로 온다는 것을 또 확인했다.
연구계획서의 핵심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예쁘게 쓰는 일이 아니다.
게재한 논문 성과, 신규 과제를 위한 선행 연구 데이터, 최신 문헌 근거를 바탕으로 심사평가원이 납득할 수밖에 없는 로직을 구축하는 일이다.
탁월한 연구 아이디어와 과학적 근거를 구슬 꿰듯 엮어 A4 26페이지 분량으로 설득해야 한다.
나는 중국 대학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연구 추진 전략 모식도를 그리고, Graphic Abstract를 다듬고, 원고를 중국어로 다시 깎아냈다.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한, 홀로 해내야만 했던 고독한 싸움이었다.
성공이 간절했고, 무엇보다 과학에 진심이었기에 남들보다 두 배 더 노력해 왔다.
한국연구재단 연구비도 수주해 봤고, 미국 박사 후 과정 펠로십 연구비도 수주해 봤다.
이제 중국에서도 국가급 연구비를 따내는 ‘그랜드슬램’만 남았다.
중국 대학에 전임교수로 임용된 지 3년 차다.
교수 대상으로 주는 과학인재상은 받았지만, 아직 국가연구비 수주는 받지 못했다. 솔직히 안타깝다.
물론 냉정히 보면, 동료들이 받지 못하는 개인 상금과 처우를 받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더 실속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자의 실속은 결국 ‘랩이 돌아가는가’에 달려 있다.
연구비가 있어야 연구가 살아 있고, 연구가 살아 있어야 학생이 성장한다.
지금까지는 교내 연구비로 버텨왔지만, 실험과학인 의학 연구는 “돈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랩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결국 충분한 연구비를 따내야 한다.
중국과학기술연구재단 과제 제출은 올해가 두 번째 도전이다.
작년에도 한국연구재단이 선호하는 스타일로 충분히 선정될 수 있을 만큼의 선행 연구를 정리해 제출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미선정이었다.
‘내가 CNS급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게재해 왔고, 아이디어도 창의적인데 왜?’
선정 결과가 나왔을 때, 분노와 의심을 가라앉히는 데 3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편파적으로 평가해서 연구비를 쓰겠다고?’
그 마음은 무식할 만큼 뜨거웠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다.
하지만 모든 아픔과 시련을 견디는 데엔 강인한 마음만큼이나 시간이 약이었다.
나는 미선정 이후 3개월의 냉각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의지를 다잡고 전력투구했다.
처음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 편견이 있었던 걸까.’
‘중국에 백도 없고, 혈혈단신 30대 젊은 여자가 혼자 연구를 해보겠다고 하니 거절한 걸까.’
그러나 그 결론은 오래 붙잡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면, 썩어빠진 과학계에서 연구를 계속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꿔, 가장 어려운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혹시 시련의 이유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 노력이 ‘맞는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 아닐까?”
“혹시 내 마음의 진심이 아직 그곳에 닿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태도는 결국 성공을 결정한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나는 중국 학계에 대한 ‘진심의 순도’가 부족했다.
정년까지 보장받는 자리를 얻었으면, 마음을 다잡고 현지의 기준에 맞춰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어딘가에서 중국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학계 분위기가 시시하다고, 연구가 수박 겉핥기 같다고,
중국 동료들의 연구계획서가 촌스럽다고—속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어차피 논문은 미국이나 유럽의 유수 학술지에 영어로 낼 텐데.’
‘그럼 연구계획서도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쓰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됐다.
이곳에서 서바이벌하려면, 현지 과학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스타일로, 현지 평가위원이 선호하는 로직으로 써야 연구에 쓰일 돈을 얻을 수 있다.
현지는 ‘나의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그 판에서 이기고 싶다면, 판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부터 나는 현지 중국어로 작성된 논문과
중국 과학기술연구재단의 빅데이터를 파고들었다.
과거 선정된 수백 편의 연구계획서를 분석하며 과제 제목, 키워드, 초록의 하이라이트를 공부했다.
내 연구 분야 논문을 수백 편 읽는 일은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 중국 과학자들의 “셀링 포인트”를 샅샅이 분석해 내재화했다.
그 결과, 총 52페이지.
‘연구계획서’라고 부르지만 사실 논문 4~5편의 무게를 담은 문서를, 3개월 안에 중국어로 완성해 냈다.
매일 브레인스토밍하며 연구하고 글쓰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했다.
뇌가 연료를 태우는 방식으로 몸이 변하는 걸,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 깨달았다.
노력의 기준은 “내 방식만 고수하는 성실함”이 아니라,
고집·자부심·편견까지 깨부수고 성공과의 간극을 좁히는 능력이라는 걸.
중국인을 좋아하지 않고, 현지인을 얕잡아보는 내 못난 마음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중국어로 과학 글쓰기에 에너지를 몰빵 하는 동안,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아주 천천히,
하루에 조금씩 음미하며 머리를 식혔다.
선생님의 수필 〈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초겨울이 싫은 이유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추워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라고.
부부 사이의 간극, 자식과의 간극, 사회의 사고와 내 사고의 간극, 친구와의 간극, 동포와의 간극.
그 ‘틈’을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내 삶의 간극을 떠올렸다.
현지에서 중국인보다 월등함을 증명하고 싶다면, 성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지 스타일과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그 간극을 줄여야만, 내가 가진 실력이 ‘표준’이 되고 ‘신뢰’가 된다.
그게 내가 찾아낸 성공의 기본이자, 올해 내가 새로 세운 노력의 기준이다.
오늘, 두 개의 연구과제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제 결과는 심사위원의 시간이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이번에는 내 방식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언어로, 내가 끝까지 갈 수 있는 태도로 썼다.
노력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맞게” 할 때 비로소 열매가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을 배우는 일은
언제나 늦지 않고, 때마다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