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북클럽이 알려준 『과정의 의미』

살림은 스스로 장만해야 행복해

by 박주영

겨울이 지나고, 새해의 초봄이 다가왔다.
중국 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된 지도 어느덧 3년. 해마다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내 일상은 늘 다이내믹했고, 그 덕분에 매년이 달랐고 매년이 새로웠다.


중국에서의 직장과 생활은 작은 디테일까지도 매번 새로 배워야 한다.

환경, 인간관계, 업무 처리 방식, 공문을 돌리는 관례까지—모든 것이 ‘한국에서의 나’와는 다르게 움직인다. 나는 그 디테일을 하나씩 알아가고 적응하며, 스스로를 현지에 맞게 최적화해 왔다.

과학자로서 서바이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한국인으로서의 내 정체성과 뿌리를 지키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지의 삶이 치열해질수록 나는 더 꾸준히 한국어로 읽고, 생각하고, 기록한다. 글쓰기는 내게 취미가 아니라, 타지에서 나를 잃지 않게 해주는 ‘귀환 장치’가 된다.


2월의 서울, 그리고 새로운 시작

올해 2월은 유독 새로웠다.
오랜만에 서울의 공기를 다시 느끼고, 다시 일터로 돌아온 지도 반달이 넘었다.

5년을 살아온 서울 전셋집을 정리하고 전세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지난 청춘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무엇보다 ‘내가 얻기 위해 지나온 과정’이 예전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결과만 남는 줄 알았는데, 인생은 꼭 그렇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남는 건 ‘누가 얼마나 가졌는가’보다 ‘어떻게 지나왔는가’였다.


엄마들의 대화, 그리고 “엄친딸”이라는 낯선 자리

재미있었던 일화는 엄마와의 대화에서였다.
엄마와 친분이 있는 분이자, 사실 내가 20대 후반쯤 엄마들끼리 맞선을 주선했던 집안의 어머니였다.

연세대 동문이고 집안도 여러 면에서 잘 맞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인연을 사절하며 이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


엄마는 그 댁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딸은 28살에 박사 졸업하고, 애가 워낙 구두쇠라 참 알뜰하게 벌고 모아서 30대 초반에 대출 없이 몇 억대 서울 전세를 혼자 구했다니까요. 이제는 중국 대학교수가 돼서 인재에게 제공되는 집까지 얻었어요.”


그러자 상대 어머니가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어머, 너무 부럽네요. 우리 아들은 호주 대학원 유학 보내느라 돈을 많이 썼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나라 문이 닫혀서 박사 졸업도 못하고 돌아왔잖아요. 국내에서 다행히 취직은 했지만, 애가 혼자 집은 못 사죠. 우리가 도와줘야 해요.”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문득 '엄마도 참 뭘 그런 말씀까지...'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누군가의 “엄친딸”, 그러니까 엄마 친구들이 부러워하면서도 어딘가 얄밉게 느낄 수 있는 존재였겠구나. 좋은 학벌, 전문직, 자가 마련까지—이렇게 말로 요약해 버리면, 듣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해질까.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엄마의 자랑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은근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알뜰하게 벌고 모아서, 스스로 마련했다는 과정. 그게 내 인생의 핵심이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의 방식: “먼저 혼자 해보렴”

돌아보면 우리 부모님이 나를 교육해 온 방식은 일관됐다.
“우선 혼자 해결해 보렴. 그래도 어렵다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 신조는 내 자립성과 생존 능력을 단련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생활에서 뿐 아니라, 공부와 입시 경쟁에서도 사교육을 크게 선택하지 않고 자기주도 학습으로 길을 잡게 했다. 특목고와 명문대 약대까지 가는 과정에서도 결국 내게 남은 건 ‘누가 대신 해준 결과’가 아니라, ‘내가 해냈다는 체력’이었다.


엄마들의 대화를 굳이 꺼낸 이유는, 자녀 교육이라는 어려운 과제 앞에서 정답은 없지만—그래도 나는 우리 부모님의 방식이 내게 어떤 힘이 되었는지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가 내게 꽤 따뜻한 힌트를 줬다.


“살림은 스스로 장만해야 행복해”

박완서 선생님은 한 에세이에서 이런 관찰을 소개한다.

사람은 사회에 진출해 늙어 죽을 때까지 대개 세 번의 ‘빈곤 곡선’을 겪는다고.
첫 번째는 독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 살림을 장만할 때, 두 번째는 마흔 전후로 수입은 늘었지만 자녀 교육비의 압박이 가장 심할 때, 세 번째는 퇴직 후 자녀들이 뿔뿔이 제 살림을 차렸을 때—그렇게 세 번을 친다는 영국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선생님은 “행복”을 이렇게 말한다.
필요하고 갖고 싶은 물건을 벼르고 별러서 장만하는 재미, 그렇게 장만한 것에 대해 갖는 애착—이것도 꼭 맛볼 만한 중요한 행복이라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부모가 자식에게 아쉬운 것 없이 다 갖춰주는 일이, 어쩌면 자식에게서 중요한 행복 하나를 빼앗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고.
없는 것 없이 다 갖춘 곳에 몸만 들어가 사는 삶, 그게 무슨 재미냐고.
생활에 맥이 풀리면 권태로울 것이고, 자연히 다른 자극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고.

결국 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할 것 중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지도 모른다.
완성된 행복이 아니라, 그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 지나온 과정 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오래 멈춰 섰다.
요즘의 나는 “결과”로 평가받는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 삶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건 늘 “과정의 체력”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 언어를 바꾸며, 삶을 다시 장만하는 중

어느덧 30대 후반의 나는 중국에서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날에는 영어로 논문과 전문지식 서적을 읽으며 성장했다면, 지금은 중국 현지의 공문 관례, 연구과제 표현 방식에 맞춰 수많은 중국어 자료를 곱씹어 읽고 참고하며 연구계획서를 쓴다. 한 문장을 ‘현지 심사위원이 먹을 수 있게’ 조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그래서 더 집요한 시간을 요구한다.


공부는 여전히 새롭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늘 성장통처럼 쓰리다. 하지만 성과라는 열매는 달콤하고, 그래서 나는 또 다음 문장으로 나아간다. 스스로 얻기 위한 과정을 거치며 어려움도 알고 재미도 알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이 나이가 되어서야 더 크게 깨닫는다.


잘 익은 열매를 거저먹는 삶보다,
열매를 가꾸는 과정의 수고와 기쁨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의 살림을 스스로 장만하는 중이다.
그 과정이 결국 나를 더 존엄하게 만들 거라는 걸, 이제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