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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주 Mar 03. 2024

진영에게



안녕, 진영아. 이렇게 편지를 쓴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너에게는 처음 쓰는 편지일 수도 있겠다 싶어. 설을 맞아 간만에 내려간 대구에서 우리는 또 밤 10시가 넘어서야 만났지. 우리가 처음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갔던 번화가에서 만나, 비슷한 술집에 들어갔어. 그 근방은 얼마나 바뀌는지, 우리가 자주 갔던 무한 리필 홍합탕 집이나, 기본안주로 인스턴트 수프가 나오는 2층 술집이나, 메가박스 건물에 있던 이자카야도 모두 사라졌어. 그 뒤로 얼마나 많은 가게가 생기고, 또 망했던지. 갈 때마다 참 익숙하고 새롭다.


일 년에 한두 번, 내가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는 그 동네에서 만났어. 내가 늦은 시간 무료함에 취해 연락하면 술도 못 먹는 너는 날 만나러 와줬지. 나는 직장 험담을 하고, 서울살이가 힘들다 하고 외롭다 하고, 우울하다 하고, 그럼에도 욕심내고 자만했어.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때쯤이면 난 불콰하게 취해있지. 부끄럽지만 이번 만남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너 좀 재수 없다' 할 법 한데 너는 특유의 웃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줬어. 헤-소리가 날 것처럼 활짝 웃는 표정으로, 웃음소리는 2초 정도 뒤늦게 나오는 그 표정 말이야. 가끔은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어. '이야기가 재미없나?' 대화에 마가 뜨면, 넌 이내 네 생각을 말해줬어. '조언'이 아니라 '생각'말이야. 너는 나한테 한 번도 이거 해라, 저게 맞다 단호히 가르치지 않았어. 나의 칭얼거림을 한 귀로 흘리지 않았어. 늘 진심으로 고민하고, 위로해주었지. 그래서 난 너를 찾은 것 같아. 내 바보같음도, 이기적임도, 어리석은 선택에도 넌 날 탓하지 않았으니까.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해줬으니까. 난 네 말 한마디에 늘 숨통이 트였어.


정말 넌 날 왜 만나주니? 자기 연민에 빠져서 내 스스로 무언가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내 불행은 세상이나 사회 탓'이라며 광광거리는 어린애를 왜 만나주는 거니? 나는 생각해. 네 천성이 물러터졌다고. 가끔은 답답하고, 가끔은 황당해. 그리고 가끔은 가닿을 수 없는 너를 부러워해.


그래, 나는 언젠가 네가 되고 싶었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초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도 말이야. 나보다 작은 키에, 어디서 탔을지 모르게 익은 피부에,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다닌 여자애를 기억해. 목소리가 크지만 거슬리지 않고, 누구나 친하게 지냈지만 무리 지어 위화감을 만들지 않았어. 우리 반 애들은 모두 널 좋아했다. 너에겐 늘 사람이 모였어. 그때 나는 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어. 넌 태생이 다르다고 느꼈거든. 그래서 나는 함부로 너를 규정했어. 사랑받으면서 자란 아이겠거니, 부족함 없이 자랐겠거니, 그래서 저렇게 밝을 수 있겠거니. 그렇지 않고서야 거기서 거기인 아이들만 모아놓은 그 학교에서 혼자 잔별처럼 빛날 수 없을 거라 확신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적당한 거리감으로 졸업했고, 각자 다른 중학교에 진학했지. 너를 향한 열등감은 나 혼자만 간직했어. 너 몰랐지?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야. 나는 다른 무리와 놀다가, 2학년 때 우리가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했어. 그때 네가 있었지.  중학교 때 나는 종종 네 이야기를 들었어. 옆 중학교에 정말 이쁜 애가 있다더라. 정말 귀엽다더라 등등. 그걸 들은 나는? 흥, 못 들은 척했지. 그런 너와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만난 거야.


너는 여전히 목소리가 크고, 누구나 친하게 지냈어.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긴 머리는 숏컷이 되었고, 엄청난 자기주장이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널 '단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아따아따'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애 말이야, 그 고집 센 여자애. 너는 짐짓 그런 별명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아직도 내 휴대폰에는 네가 단비로 저장돼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단비 말이야. 고집 센 여자애가 방점이 아니야. 포인트는 '주인공' 여자애지. 맞아, 넌 주인공이었어. 20년도 안된 세상에서 넌 주인공으로 보였어. 동갑인 나는 내 인생에서도 조연이자 엑스트라였고.


난 널 선망했을까? 아니 그런 마음은 아닌 것 같아. 난 너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아. 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물가물한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한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거든. 초코송이 머리에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큰소리로 웃으면서 앞장서는 네 뒷모습. 네 뒤를 따라 우리도 깔깔 웃으면서 학교 언덕을 내려가던 모습. 우리 모든 친구들이 내 10대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야. 네 모습은 그 기억의 썸네일이고, 대표사진이야. 흠, 갑자기 재수 없다 너.


성인이 되고, 술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주 빨리 알았지. 그리고 불안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어. 누구보다 빨리 취업하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어. 욕심은 많았으나 능력은 없는, 지금과 같은 모습 그대로였지. 같은 대학교에 다녔던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다가, 이따금 만나 같이 공부했어. 토익시험을 준비하고, 학교시험을 준비하고, 나는 징징거렸지. 그런데 방식이 잘못됐어. 나는 그때 더 어렸고, 내 모자람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자존심 상했어. 그래서 가만있는 너에게, '토익 시험 준비해야 하는데', '대외활동 해야 하는데' 하며, 입으로만 목표를 떠들어댔어. 그러면 너는 가만 듣고 있다가 '나도 하긴 해야 하는데'라고 입맛을 다셨지. 그리고 나를 위로했어. 너는 뭐든 잘할 거라고. 넌 쌓아놓은 게 많이 있다고. 나는 그 위로가 너무 좋았어. 그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힘이 됐어. 그런데 진영아, 너도 힘들었을 거잖아. 그런 너한테 나는 어떤 위로를 해줬어? 나는 너한테 어떤 힘을 줬어?


지금은 망한 수많은 카페에서 나눈 대화가 벌써 십 년을 넘겼다. 그동안 원숭이었던 나도 아주 조금 성장했어.  사람 간의 관계역학을 볼 수 있고, 사회적 언어를 쉽게 구사할 수 있지. 서슴없이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발언과 행동을 하기도 해. 그리고 그 십 년 간 나는 너를 다시 읽기 시작했어. 아마 사랑받았기에, 부족함 없이 자랐다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당당하다 느낀 너의 행동이나, 가끔은 우유부단하게 느껴지는 기다림 같은 것에 각주가 보이기 시작했어. 이미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감히 너를 알 수 있겠냐 싶지만 말이야. 적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웃는 네 모습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겠더라.


이런 생각을 해. 너는 참 예나 지금이나 그냥 좋은 사람이었구나. 오로지 네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흔들흔들 춤추고 있구나. 그런 널 규정지은 건 나의 아집이구나. 애초에 너에 대한 내 생각은 다 틀려먹었어. 너는 태어난 것이 그런 게 아니야, 무엇하나 쥐고 있지 않아. 무기 삼지 않아. 그런 너와 나의 차이는, 나는 너를 보며 비교했고. 너는 남을 보며 친교했어. 나는 투정했고, 너는 호흡했어. 나는 선을 그었고, 너는 배려했어. 내가 멋대로 보폭하며 걸을 때, 우리가 함께한 줄 알았던 그 시간은 다 네가 맞춰준 거더라. 이제 나는 그런 너를 생각하며 늘 배우고 있어.


이렇게 쓰고 나니 나는 참 너에게 도움 되지 않는 친구 같다. 굳이 써서 개념화시킬 의미가 없는 이런 어리석음을 또 굳이 남기는 이유는. 난 네가 정말 좋기 때문이야. 그래서 꼭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기 때문이야.


13살 때 만난 네가, 꼭 20년이 지나 결혼하게 됐네. 너는 모르겠지만 그 20년간 네가 날 사람 만들었다.

세상 사람 다 무시하고 다니는 내가, 뭐 하나 진득이 좋아하는 것 없는 내가 너는 정말 인정해.


잡초처럼 질기고, 독하고, 잔별처럼 반짝반짝거리는 너를 알아. 그런 너를 인정해. 사람 좋은 웃음 속에 있는 네 마음을 알아, 네 주위로는 사람이 모이고, 온기가 모여. 그런 너의 타고난 능력을 인정해.


너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우리 단비, 우리 대장, 태전동산이 떠나갈듯한 웃음소리로 앞장서던 네 모습을 나는 아직도 든든해하고 있다는 걸.


삼십 년이 지나고 사십 년이 지나고, 네가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돼도. 너한테 무수한 반짝이 조각이 있다는 건 기억하고 있어라. 나도 네 조각 하나는 주머니에 넣고 살 테니까. 그리고 너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 나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도, 그 사람들이 다 네 흔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뿌듯해하며 살아라.


네가 이 편지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바쁜 일 끝나고 다시 대구에 갈게, 그때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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