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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아이 Apr 04. 2024

고사리만큼

우리의 의지도 그러하자

어영부영 사월이다. 사방팔방 들녘에 노랗게 보이는 것이 유채꽃인지 갓꽃인지 멀리서 보아서는 나로서는 알턱이 없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동네 편의점 앞 뜰에 누군가 정성스레 가꾼 듯 보이는 목련 나무 한그루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 때문에 그 목련은 아주 짧은 시간 그 역할을 다하였다. 제주의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어닥친다. 그렇게 며칠 불어닥친 강풍주의보가 해제되고 나니 곧이어 벚나무 꽃잎이 뭉게뭉게 하얀 핑크빛을 머금은 채 흐드러진다. 봄이 왔겠거니 꽃들이 피는가 보다.


제주에서 살면서 따로 직접 농사를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한 두 가지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데, ‘고사리’와 ‘보말’이다. 고사리는 지금 이맘때부터 채취를 할 수 있고, 보말은 조금 뒤에 청보리가 익어갈 즈음에 하면 좋다고 내가 제주 살이를 시작할 당시 어머님께서 알려주셨다. 말은 자급자족이라고 했지만 부지런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고사리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가야만 꺾을 수 있는데, 어른들이 말씀하기를 해가 뜨면 고사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겨울, 회사 간판을 내렸을 때 함께 일했던 선배 두 명을 백수로 만들었다. 괜스레 미안하면서도 본래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라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선배들은 보령에서 제주로 내려와 정착을 했던 터라 마음이  쓰이긴 했다. 광양 출신의 최선배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짓는 게 싫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어릴 때 지겹게 했다던 농사 기술이 제법 남아있었는지 밭에서 길러내는 온갖 쌈 채소와 특히 루꼴라가 일품이었다. 내 눈에는 틀림없이 농부의 아들임이 분명했다.


며칠 전 최선배가 고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고사리 꺾어다 말려서 팔면 하루 일당 이십만 원은 벌 것 같은데, 어때해볼래?” 그러면서 그날 꺾어온 고사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꺾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선배는 사는 동네가 고사리가 많이 난다고 좋아했다. 같은 제주지만 사람들 말로도 여기는 많고 어디는 적게난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최선배의 고사리 이야기를 말해주며 사진을 보여주었고, 아내는 그 이야기를 장모님께 전했다.

장모님은 정말 그렇게나 벌써 나오냐며, 한 껏 신이 나신 듯 말씀하셨다.

“우리도 꺾으로 한 번 가볼까?” 서로가 말을 했다.

제주에 살면서 아내도 나도 고사리를 꺾어본 경험은 그동안 서너 번이나 될까.

고사리는 동틀 녘에 가야지 꺾을 수 있다고, 해가 나면 보이지 않는다고 장모님은 말씀하셨다.


최선배는 친절하게도 자기가 다녀간 밭의 좌표를 세 군데 알려주었는데, 서로의 위치가 멀지 않아 좋았다.

장모님은 살다 살다 고사리 밭을 번지수 찍고 가보기는 처음이라며 재밌어하셨다.

집에서 첫 번째 좌표지점까지는 대략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좌표가 가리키는 곳에 다가갈수록 차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어떤 사람은 벌써 가방과 앞치마가 불룩한 채 내려오기도 했는데, 받은 좌표의 정보가 확실한 것 같다며 또 한 번 신기한 듯 웃었다.


예전에 장인어른께서 고사리는 찔레꽃이 있는 가시덤불 아래 많다고 알려주셨는데, 장모님은 다른데도 많다며 웃으셨다. 나는 그때 해주셨던 말씀을 기억하며 가시덤불을 찾아내 들추느라 긁히고 찔리고 했지만 내 딴에는 좋은 고사리를 발견했다.


땅을 보고 고사리를 꺾고 있으니 고사리 생각만 하게 된다.

다른 생각이 자리잡지 못하는데, 지나간 후회와 내일의 걱정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꺾어진 고사리는 새순이 돋아나는데 누군가에 의해 다시금 꺾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꺾여도 다시금 자라니, 살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고사리 장맛비가 연일 계속된다.

그 비를 맞으며 대지 속으로부터 솟구치듯 일어서는 고사리만큼.

나와 우리가 그러자고 속으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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