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들어와 집에서 쉬고 싶지만, 그러진 못한다.
집안 청소 후 애들 공부 봐주고 저녁을 차려 애들이 먹는 동안 소파에서 잠깐 누워 한 20분쯤 자고는 저녁상 치우고 애들 씻기고 재우면 신랑 저녁상을 또 차린다.
일과를 해치우듯 하다 보니 애들말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서 눈을 바라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잠깐, 몇십 분이면 되는데, 아직도 미성숙한 인간이라 빨리 이 과제들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난 연예인들의 가족 예능, 특히 육아예능은 일부러 보지 않는다. 내가 사줄 수 없는 옷들과, 내가 데려가 줄 수 없는 좋은 곳들, 내가 낼 수 없는 시간적 여유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그들의 삶에 비해 내 삶은 아이들에게 수많은 결핍을 주고 있다고 계속 나 자신을 바늘로 찌르기 때문에.
오늘은 다 같이 도서관을 갔다.
역시나 가기 싫다고 떼쓰지만, 막상 가면 책을 읽고 빌릴걸 알기에 무인문구점으로 꾀어서 데리고 나왔다.
그동안 빌리고 싶던 보노보노 만화책을 운 좋게 빌렸다. 소금 치지 않는 시금치를 먹는듯한 심심한 맛이 보노보노의 매력이다.
그런데, 보노보노와 포로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맘껏 웃고 즐거워한다. 너부리는 그런 둘에게 종종 공감을 못한다. 그 너부리가 나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이들은 티브이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다 조금이라도 흥미로운 걸 발견하면 나에게 다 얘기하지만 어른의 눈에선 그게 전혀 흥미롭지 않기에 건성으로 대답하곤 했다. 아이 눈에는 물감이 튄 모습이 새로운 모양의 별 같다며 흥분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물감이 튄 것뿐.
어느 날, 아이가 그런다
엄마는 재밌지도 않으면서 이해하는 척한다고.
뜨끔했다. 맞는 말이니까.
나는 너부리의 나쁜 면을 모두 가진 엄마였다.
아이들은 즐거움의 역치가 무척 낮다.
반면에 난 나이가 들수록 자극의 홍수에서 버텨가며 역치가 하늘을 치솟으니 별로 웃긴 일도, 웃을 일도 없다며 그리 살기로 작정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생각한 대로 살아야 하는데, 사는 대로 생각해 버렸다. 아차,
이제부터 나는 즐거움의 역치가 아주 낮은 사람이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웃음에 함께 웃고 웃음의 이유를 아이들과 얘기 나눌 수 있는 엄마다.
그렇게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