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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누나 Feb 27. 2024

연봉 1억 넘는 미국 회사, 4년 만에 퇴사!

드디어 호텔과 비행기로 출퇴근 끝내다 

지난주 수요일, 나는 드디어 퇴사를 했다.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던 회사지만, 영주권을 받음과 동시에 취업이 되어 코로나 시국 주 1회 출근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다니게 된 이 회사를 4년 만에 퇴사했다. 프리랜서로는 한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정규직 직원으로서 출퇴근이 필요한 회사를 다닌 것 중에는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이다. 한국, 미국 근무 경험을 통틀어 가장 오래 다닌 회사이다. 사실 중간에 이직에 성공해 한번 퇴사했다가 정말 안타깝게도 미친 매니저와 팀 리더 때문에 3개월 만에 돌아왔지만, 그 후로 1년이 넘게 다시 다니다가 약 4년 만에 정말로 이 회사와 인연을 끝냈다.


요새는 자주 이직하며 몸값을 올린다지만, 나의 직업 특성상 이직한다고 해서 꼭 몸값이 높아지진 않는다. 원래도 미국에서 낮은 연봉군에 속하고, 의류 업계에서도 마이너 한 포지션이다 보니 회사 규모가 조금만 작아도 내 포지션이 존재하지 않는 등 여러모로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그래서 이직한다고 해서 크게 장점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쥐똥만큼 오른다. 그리고 미국 회사는 저마다 건강 보험, 사원들을 위한 베네핏이 천차만별이라 나름 새로운 회사의 시스템을 배우고 얻어갈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이직하는 것이 힘들어도 나쁘진 않다. 특히 신입 사원을 포함해 연 초에 이런 베네핏이 들어오니, 퇴사 시기도 잘 잡으면 여러모로 이득 보는 듯하다. 


야호! 퇴사!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가 끝나고 주 3일 출근으로 인해 시카고에서 미시간주까지 운전으로 3시간, 비행기로 40분 걸리는 거리를 1년간 출퇴근했다. 월요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해, 수요일 저녁 6시 비행기를 타고 집에 왔다. 물론 중간중간에 연차를 써가며 아예 출근 안 하고 재택근무만 하는 주나, 아예 30일 무급 휴가를 사용해 회사에 장기간 출근 안 한 주도 많아서 매주 성실하게 출근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1년 넘게 이렇게 출퇴근을 하고 나니 정말 한계였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먼 출근길 보다 더 힘든 건 점점 미래가 보이지 않는 회사와 우리 팀이었다. 같이 일하는 매니저는 좋으신 분이었지만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팀원들에게 쏟아내기 일쑤였고,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나이가 지긋한 친한 동료 할머니 두 분과 새로 들어온 팀원 한 명, 그리고 심한 ADHD로 인해 같이 일하기 정말 힘들었던 팀원 한 명으로 구성되었는 우리 팀은 좋았지만 그 외 타 부서 사람들은 여러모로 사내 정치나 과한 견제로 내 업무에도 지장이 올 정도였다.


특히 타 부서에 새로 들어온 과장 급들 중에 자신의 모자란 실력을 만회하기 위해 무작정 남 탓을 하는 이란 출신 남자 매니저는 내가 출근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내 탓, 자기 팀의 대리나 사원이 휴가이면 그들의 탓을 하며 여러모로 같이 일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게다가 업무를 하는 데 있어 기초가 없다 보니, 우리 팀은 물론 그 외 타 부서 과장급들과도 트러블이 많아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소비하게 했다. 의류 업계 특성상 시즌마다 일이 엄청나게 몰리는 때가 있는데, 이럴 때 일은커녕 이 분야의 기초도 없는 사람과 일하는 것은 주변의 많은 직원들이 그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을 뜻했다. 이래서 같이 일하기 좋은 다른 부서 과장들의 일을 더 신경 써주고 싶어도, 이 일 못하는 이란 매니저 일을 도와주는데 급급했다. 여기에 우리 팀 과장은 자신의 업무가 과중해질수록 팀원들을 알아서 일하게 방임해 두고, 웬만한 이야기엔 모두 불평불만 취급하니 같은 팀원 할머니들은 은퇴할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발전이 없는 회사에서 장거리 출퇴근을 하기엔 너무 심적으로 힘들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건 역시 또 사람이다. 인간관계가 힘들다지만, 좋은 동료들은 이런 것도 없애줄 만큼 좋았다. 친한 할머니 팀원과 새로 들어온 팀원, 한국인 J님, 필리핀 디자이너와 몇몇 친한 동료들은 정말 가끔 회사 출근이 기다려 질정도로 좋은 분들이었다. 미국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회사 생활을 한다는 것도 꼭 사실은 아닌 게, 이렇게 가까운 팀원들과는 점심은 물론 집에서 직접 기른 야채나 저녁도 싸주셨고 나도 시카고에서 뭔가 많이 생기면 서로 나누고 문자도 하고 절친한 친구처럼 지냈다. 지금 퇴사한 지 1주일, 아직도 종종 문자가 오고 서로 같이 부대끼는 시간을 행복하게 해 준 동료들이 큰 장점이었다. 발전도, 연봉도, 베네핏도 그저 그런 회사에서 단비 같은 존재였고 나쁜 동료와 좋은 동료가 무엇인지 큰 깨우침을 얻었다.


다음 직장까진 30분 거리 


그래도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냉정하게 먼 출퇴근을 최소화할 수 있게 우리 동네 시카고에서 직장을 한참 찾다가 운 좋게 의료기기 회사에 환자, 간호사, 의사 의복을 만드는 회사에 포지션이 나서 지원했다. 의료기기 회사 내 작은 부서이지만, 미국 최대 의료기기 납품 업체인만큼 아주 큰 대기업이다. 회사 규모도 퇴사한 회사에 못지않은 큰 기업이며, 연봉이나 복지도 살짝 더 좋은 느낌이 있다. 내 전 회사와 포지션이 아주 동일한 것은 아니고, 패턴 전문 포지션이라 살짝 걱정되기도 한다. 


내가 패턴을 전문적으로 한 게 벌써 몇 년 전이라 과연 새로운 포지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내 얼마 안 되는 지식과 밑천이 드러나 잘리거나 문제가 되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하다만 부딪혀보지 않고선 알 수 없겠지. 그리고 잘리더라도 새로운 회사의 시스템이 어떤지, 여러모로 배워볼 수 있고 경력 직원으로서, 새로운 기업의 베네핏도 받을 수 있으니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다. 연봉은 좀 실망스럽지만 전 회사에 비해선 살짝 높은 편이고(매우 살짝), 먼 길 출퇴근을 하지 않고 매주 2박씩 묵던 호텔비용도 나가지 않아 그걸 생각하면 연봉을 높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달에 호텔이랑 비행기값만 1200달러씩 들었으니, 해당 비용을 아끼면 나름의 연봉 상승이다. 이런 계산법은 정신 승리일까? 호텔비용이 아까웠지만 덕분에 포인트도 많이 쌓아서 올여름휴가 때 친구와 사용할 생각을 하니 나름 전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만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그 누구든 멋진 커리어를 꿈꾸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마음이 매우 적은 것 같다. 노동을 꿈꾸지 않고, 직업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않으며, 소속감에서 안정감을 찾지 않는다. 항상 커리어는 내가 자유롭고, 안전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돈을 준다. 다른 일을 해도 돈을 주겠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가진 능력 중에선 가장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게 내 경력이자 관련 업무인 것 같다. 안타깝게 이런 걸 내가 좀 더 빨리 알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전공을 선택했을 텐데 아쉽다. 


퇴사할 때 받은 카드 겸 롤링 페이퍼 


나는 그냥 뭔갈 만드는 걸 좋아했고, 그중에서 인형옷이나 재봉틀 돌리는 걸 좋아했는데 꼭 이걸 전공으로 해서 커리어로 닦지 않았어도 될 텐데 아쉽다. 누군가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겠지만, 현실 앞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학비도 그렇고, 어쨌든 전공을 다시 받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큼 일하는 것을 병행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당장 미국에서 높은 연봉도 아니고, 이것저것 생활비하고 저금도 하다 보면 통장 잔고가 금세 떨어지고 마니 도전은 항상 생활비 앞에서 꺾이곤 한다. 누군가에겐 영 멋지지 않은 현실일지 언정, 브런치에서 까지 내가 교양을 떨며 진취적인 사람인척 해야 할까?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싶어서인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퇴사하고 6일이 지난 지금 시간이 언제 이렇게 빠르게 지났나 싶을 정도로 즐겁고 하루하루 일상이 바쁘다.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내가 하고 싶었던 브런치 글을 쓰고, 미뤄뒀던 원고 기사도 쓰고, 책도 주문하고, 빨래도 편하게 하고, 보고 싶었던 유튜브 영상도 보고. 이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경제적으로 유복한 집에선 그냥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이 내겐 자유로운 일상이다. 목줄 달린 개처럼 끌려나가 적당히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업무의 책임감과 여러 스트레스로 정신적으로도 굴레에 갇힌 일상이 아니라 내가 편안하게 내 집에서 안빈낙도할 수 있는 삶이야 말로 내겐 자유다. 가끔 자기 계발서에 보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라는데, 그거야 말로 정신승리 아닌가? 그리고 과한 긍정적 사고를 주입하는 것이야말로 정신건강에 불건전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점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나는 항상 자유에 목말라하며 남들이 생각하는 커리어적 성공이나 목표보단, 인생의 평생 숙제로 자유를 얻는데 쓸 것이라는 방향을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좌절하고 힘들 때면 목표를 향해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심정으로 이 또한 넘길 것이며, 새 이직 회사에서도 어려움이 있으면 맞서고 이길 수 없다면 부끄럽 없이 회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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