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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누나 Mar 03. 2024

억대연봉 3040세대, 맨날 친구랑 절교 고민

"바쁘네"라는 한심한 변명 - 본인 취미는 미루지 않는 그 사람 

최근 헝가리인 남편과 소소한 일상 대화를 나누다, 고민거리가 있는 표정이라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곧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고민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역시나 대부분 우리 인생사의 고민 탑 쓰리 주제인 인간관계, 돈, 커리어 중 가까운 직장동료 겸 친구와 있었던 트러블에 대해 토해냈다. 제삼자에게 이러한 인간관계 고민은 너무나 명확한 답이 보인다. 특히 그 관계 속에서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 정도의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뻔히 보인다. 하지만 당사자에겐 '아닐 거야, 왜 그랬지?'라며 의심의 여지를 주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정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남편 말고도 오랜만에 만난 미국인 대학 동기, 시절 인연이었던 미국 생활 친구들과도 다시 연락이 닿은 계기가 있었는데, 그들도 걱정의 대부분은 어떻게 먹고사나 와 인간관계가 대부분이었다. 3040세대들의 고민거리가 1020세대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걸 보면, 참 평생 동안 고민거리가 똑같은 걸까 싶기도 하다. 심지어 대부분 나의 대학 동기와 시절 인연 친구들은 대학 졸업 후 나처럼 박봉의 디자이너 길을 걷다가 과감하게 보험회사나 마케팅 쪽으로 직업을 바꿔 수 억의 연봉을 자랑하는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미국인 여성들이다. 게다가 내게 언제든지 새로운 직원 포지션이 나오니, 관심 있음 연락 달라는 든든한 미국인 친구들이다. 정도 많고, 벌써 10년이나 지난 대학 시절의 풋풋함이 떠오르는 친구들이 되었다. 


나는 성향이 기버인 만큼, 주변에 많이 나누고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이 편하다. 내가 착해서 그렇다기보단, 그렇게 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하고 가까운 사이라면 내 마음이 그런 것이고 다시 보지 않을 사이라도 서로 기분 좋게 헤어지는 게 추후에 탈이 없을듯해서 항상 주는 편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엄청나게 가난해지거나 손해 본 적도 없고, 있다한들 내겐 인간관계에 명확한 선을 긋고 살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주곤 했다. 그래서 현재 손에 꼽는 숫자의 친구 외엔 모두 적당한 지인관계 정도로 지낸다. 


아.. 안녕? 잘 지내보자~..

남편을 포함한 대학 동기와 오래전 친구들 모두 기버 성향을 가지고 사는 친구들이라, 인간관계를 할 때 항상 전적으로 잘해주는 편이다. 친한 사람이 부탁하면 크게 어렵지 않음 내가 조금 불편해도 차를 태워주고, 조금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를 데려다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랑만 잘 지낸다면,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지 않겠는가. 인생사가 그렇듯,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처음엔 너무 좋았던 사람들도 알고 보니 가면을 쓰고 있다던지 여러 변수가 있다. 이런 인간관계 이야기를 하며, 대충 산전수전 다 겪으며 뽈찜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뽉히며 이젠 거의 자연인 마냥 소수의 친한 사람들이랑만 근근이 연락하고 사는 내게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다. 특히 남편과 친구들은 내가 아주 칼 같은 사람이고 한번 한다고 하면 두 번 다시 번복이 없는 점이 대단하다며 '친구와 절교' 기준점에 대해 물었다. 


일단, 성인이 되어 오랜만에 친해진 사람들에게 확실한 선을 긋는 건 생각보다 고민되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예민하게 구는 건지 주로 자기 의심으로 고민이 시작된다. 여기서 내가 수많은 절교와 손절을 통해 얻은 나만의 규칙이 있다면, "바쁘네"라는 변명으로 시간을 할애해주지 않을 때 과감히 정신적으로 절교 선언을 내린다. 현대 사회에서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들 밥 먹고 사느라 바쁘고, 정신없이 일상 속에서 '노력'을 통해 집안일, 업무, 취미생활, 인간관계 등 다양한 것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사람들 개개인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사정이 있어 정말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도 없는 분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바쁘다 하는 것은 그들의 삶의 모습이나 패턴에서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너만 바쁘냐 나도 바쁘다 


내가 말하는 "바쁘네" 변명은, 평소 그 사람의 생활 습관이나 현재 어떻게 사는지 뻔히 눈에 보이는데 그런 한심한 핑계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떤지 여실히 보여줄 때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이나 각종 음주가무는 꼭 스케줄에 맞게 지켜야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대화를 하려고 시간을 내면 18번이 "바쁘네"라며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본인이 심심할 때나 '시간이 날 때'에는 대중없이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면, 과감하게 멀어지라고 조언한다. 이런 사람들이 처음엔 분명 항상 시간도 내주고 나와 잘 지내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했을 테지만, 가까워졌다고 생각되니 새로운 사람들이나 본인 취미 생활이 훨씬 더 중요해지며 나의 우선순위를 내리는 사람들이다. 


물론 개개인의 행복과 생활이 중요한 건 성인이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깊어지면, 기본적으로 서로 양보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본인들 취미생활이랍시고 골프, 헬스, 독서모임, 각종 콘서트, 뮤지컬 등은 신나게 참여하면서, 가끔 내가 커피 한 잔 하자거나 같이 어디 놀러 가자고 하면 바쁘다거나 아주 귀찮은 생색을 내며 자신이 대단한 걸 해주는 것 마냥 말하는 태도. 또는 고민 끝에 꺼낸 부탁은 아예 싹 잊고 있거나 바빠서 못했다고 미루면서 투덜거린다면, 본인의 사소한 일상의 취미가 당신과의 관계 그 이상이자 쏟고 싶은 에너지가 딱 그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화를 내거나 서운해하면, 그제야 뭔가를 하는 모습 또한 무시하는 행동 아닌가? 그 말을 꺼내게 하는, 화를 내게 하는 행동 그 자체가 서로의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인데 무시하고 있다가 당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니. 


이처럼, "바쁘네" 변명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딱 그 사람이 당신을 생각하는 수준을 쉽게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리스펙'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예의, 존중이 없는 것이다. 가까워진 친구를 마치 하나의 게임 미션 클리어하듯이, 내 주소록에 한 줄 추가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은 기버들에겐 상처만 되는 관계를 남겨준다. 이런 사람들의 입장을 또 들어보면, 자기는 자기 인생이 제일 중요하고 이게 나쁜 거냐고 한다. 나쁘다고 흑백논리로 말할 순 없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본인이 중요시하는 생활 반경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 될걸, 본인에게 이득 되거나 어디 나가서 자신의 인간관계를 과시할 수 있기 위해 초반에 열심히 공을 들여 누군가와 친해지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행함으로써 추후 힘들거나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사람을 계산적으로,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책감도 고민해 보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난 그냥 누워 잘래 

우리 모두 바쁜 세상 속에 살 고 있다. 누가 더 바쁘냐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바빠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다들 일상과 밥벌이하는 생활 속에서 시간은 유한한 만큼, '갓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바쁜 일상이 한 달 내내, 일 년 내내, 365일 내 24시간 동안 지속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세계적인 CEO나 유명한 한류 아이돌이 아닌 이상, 평범한 우리에게 일주일에 하루이틀, 또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편하게 쉴 시간이 생긴다. 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나는 짬을 내서 연락을 하고 같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지치게 만드는 인간관계가 있다면, 나를 딱 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너만 취미 생활 있냐? 나도 있다.라는 것을 잊지 말고,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친구나 지인들도 슬슬 익숙함에 젖어 당신의 우선순위를 내리고 있다면, 조용히 마음에서 절교해도 괜찮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라면, 익숙하고 편안함을 선물해 주는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으니 빨리 손절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다. 시간과 추억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만큼, 이를 뒷전으로 하고 새로운 취미, 관계, 사회관계를 갈구하는 사람일수록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고 테이커 기질이 드러나는 면모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특히 SNS가 발달된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그들의 취향은 무엇인지 더욱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에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감추려고 해도 금방 들통나게 되어 있어 오히려 기버들에겐 고마운 세상이다. 상대방이 취미, 연애, 그냥 귀찮아서 등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나의 우선순위를 뒷전하고 있다면 과감히 나도 마음을 내려놓고, 그들과 손절하던지 그들을 내 우선순위에서도 내려놓자. 그리고 그들이 아쉬운 게 있어 오랜만에 연락 온다면, 호구처럼 그때 또 쪼르르 잘해주지 말자. 


내가 굳이 잘해주고 챙겨주면서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난 상대방을 꽃처럼 대하는데, 날 쉰 개밥 취급하는데 왜 자꾸 잘해주겠는가. 이건 비단 친구, 지인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같이 가까운 상대에게도 적용된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면, 과감하게 내가 내려두면 된다. 생각보다 그 관계를 버린다고 해서 천지개벽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경제적으로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조용히 야반도주를 하던지 떠나던지 인연을 끊으면 고뇌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여러모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각종 사회적 굴레 속에서 쉽진 않겠지만, 정말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이 들면 해야만 한다. 요새 백날천날 베스트셀러로 뜨고 유행하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 자신을 잘한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괴롭게 하고 고통받게 하는 것들 그 어떤 것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내고야 말겠다, 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종종 생각한다. 단순히 힘든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대피시킬 수 있는 능력을 '도망'이라고 낮추지 않고,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것 또한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방식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 중 

미국에서 억대연봉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잘 사는 백인 여자 친구들뿐만 아니라 40대에 들어선 헝가리인 남편도 여러모로 인간관계 앞에선 여전히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한국가서 만나는 친구들도 대부분 돈이나 인간관계를 고민하고 있으니, 사람사는게 정말 다 비슷한걸까? 싶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좀 더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가까운 친구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실천하는 실행력 정도가 높아진 중년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이가 더 들면 점점 더 친구도 주변인도 사라지며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될까? 


어쨌든 최근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을 하며 대학 졸업 후 10년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참 인생사 인종불문 종교불문 국적불문 똑같네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친구들에게 나는 미국에 오래 산 외국인이자 한국인으로서 그들에게 공감과 이런저런 나의 의견을 나누며, 나름의 위로가 되었길 바란다. 한 인간으로서, 겉으로 봤을때 너무나 다른 우리가 느끼는 생각이 비슷하고 겪는 어려움이 닮아있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길. 


자산이 수 백억 정도 되면 이런 인간관계 고민을 없앨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섬을 사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만 불러서 종종 놀고 지내면 좋을 텐데,라는 상상을 하며 이제 몇 남지 않은 친구들과 손절할 날이 오지 않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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