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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누나 Jan 29. 2024

전 재산 X억, 가난해서 미안합니다

원고료 10년째 10만 원 받는 33살 거지 일기 ft. 월 400 저금

요새 제일 인기 많은 콘텐츠 대부분이 월 천만 원 벌기, 20대 1억 저금, 경제적 자유, 부업으로 500만 원 벌기 등등 각종 돈 벌기 방법론이 엄청난 인기인 듯. 순간 혹 해서 읽어보면, 맛보기 강좌나 글에서 이런 이런 방법이 있고, 온라인 강의나 E-북을 구매하면 그 안에 내가 몇 년간 축적한 팁이 있으니 당신도 경제적 자유를 누려보세요!라는 콘텐츠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진다.


이런 글을 보고 있는 나는 생각에 빠진다. 원래 나는 글을 써서 오랜 시간 'N잡러'로 살아왔고, 돈 받고 글을 써 온 시간이 10년을 넘었다. 잠깐씩 회사를 쉬거나 퇴사를 하는 시기에도 같이 일하는 잡지사나 재단들에 원고를 납품해 적게는 월 200, 한참 글 쓰는 일만 전문적으로 프리랜서를 할 때엔 월 5-600만 원 정도 벌었다. 미국에서 살 때나 한국에 귀국해서 잠깐 거주할 때, 회사 이직 하기 전 나의 밥 줄이 되어 주었다. 물론 한 군데 소속된 삶이 아니라, 여러 잡지사와 운 좋게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하는 일을 여러 개 받아서 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선, 부업으로 병행해 왔다. 나의 직업은 패션/의류 테크니컬 디자이너라서, 디자이너 겸업만 아니면 충분히 문제없이 할 수 있기에 항상 크건 작건 글을 쓰며 소소한 부업을 해왔다. 


모자장수도 합니다 


회사일이 바쁘면 일을 안 하면 되고, 글이 쓰고 싶으면 써서 납품을 하면 일한 만큼 정산되어 돌아온다. 물론 회사와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아, 회사가 바쁘면 한 달에 겨우 50만 원을 벌 때도 있다. 게다가 잡지사나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는 건, 연말이나 연초 개편과 함께 갑자기 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이 5년 넘게 일하던 곳도 갑자기 개편되어 일자리가 없어지고, 우수 통신원으로 수상을 몇 번이나 해도 반년 정도 기사 납품을 뜸하게 하면 부진 참여자로 분류되어 잘리기도 한다. 난 일개 아르바이트생과 다를 빠 없기 때문에, 잘리는 것과 내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쉽다. 원고료는 어떤가. 200자 기준 3,000자 정도의 기사가 10만 원 정도를 받는다. 원고료도 비슷하다. 그리고 기획 기사처럼 호흡이 긴 기사가 아니고선 15만 원이 맥스다. 그리고 이 원고료는 내가 20살, 12년 전쯤 처음 원고를 쓸 때와 다르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고공행진이고, 20살 때 떡볶이 1인분이 2천 원일 때와 지금 2024년은 4천 원으로 두 배가 넘었는데 원고료는 똑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10년간 기사나 원고를 쓰는 속도가 두 배는 늘었으니, 시간면이나 효용면에서 똑같다며 정신승리를 해본다.


원고료를 10년째 10만 원 받고 있다 하면 누구는 측은지심 하게 보겠으나, 그래도 과거했던 알바에 비하면 편하고 감사한 일이다. 대학 들어가기 전, 한국에서 한 아르바이트 중에는 아웃렛 매장에서 야외 부스에 앉아 크록스 신발을 판 경험이 있다. 최저시급을 받던 19살의 겨울,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양심 없는 젊은 사장과 일을 했다. 매장을 열고 닫는 시간은 시급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으며, 매달 정산 시 로스가 나는 부분은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이 50:50으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일주일에 3일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는데, 1주일 내내 근무하는 사장이 담배 피우러 간 사이 사라진 물건 로스까지 아르바이트생한테 50:50으로 나누자고 하며 내가 관두고 나서 싫다고 하자 하루에 전화를 20통씩 했었다. 이런 사장과 일하는 것에 비해, 원고 납품을 하고 나서는 상당히 이성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사람들만 만나와 얼굴 붉힐일이 많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N잡러의 삶 


이런 시기를 거쳐 지금은 회사와 원고 쓰기를 병행하며 N잡러로 살아가고 있지만, 태생이 주목받거나 인기를 끄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내향형 인간이라 SNS에서 자신을 브랜드화하며 돈을 벌라는 많은 '월 1000만 원 벌기' 전문가들의 조언은 소화해 내기 어렵다. 그리고 SNS로 돈 벌기 강좌의 주된 내용은, 인지도를 쌓아 그것으로 광고, 강의, 협찬, 원고료를 받아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인지도가 낮아지면 월 천만 원을 벌기가 어려워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후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긴 하지만, 대부분 메시지가 "지금 당장 시도하세요"였고, 나 같은 질문은 부정적인 불안함으로 치부되어 차마 공개적인 공간에서 질문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질문에는 댓글로 듣기 좋은 두리뭉실한 말로 '회사생활도 영원하진 않아요~'같은 멘트가 달려있었는데, 질문자의 의도는 그게 아닐 텐데..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그냥 구경만 하고, 여전히 익숙해진 원고 쓰기와 회사 생활로 연명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N잡러로 열심히 살아도, 생활비라는 게 참 명품이나 오마카세 같은 허세 소비를 하지 않아도 한 달에 저금할 수 있는 돈은 정말 얼마 없다. 내가 돈을 많이 못 버는 것과 비싼 미국 물가가 가장 큰 문제겠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에 겨우 3000달러 정도 저금하고 있다. 한국돈으로 400만 원 정도 저금한다고 하면, 꽤 많은 돈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좀 더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시라. 


요즘엔 이런 원고, 글쓰기, 회사 생활 N잡의 모든 게 질리고 식상해지고 있다. 정말 강렬하게 일을 안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데, 멋들어진 '번아웃', '슬럼프'이런 단어를 쓰기엔 조금 민망하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저런 걸 느낄 텐데 나는 애초에 적당히 하고 돈 받고 쉬자라는 마인드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서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는 자유롭게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권이 있는 삶을 원한다. 자유의 끝은 돈인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자유롭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의식주의 안녕은 돈이 없으면 영위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래서 내 은퇴계좌와 주식, 각종 자산을 들여다보면 아직 5억 도 모이지 않았다. 요샌 은퇴할 때 최소 10억은 있어야 먹고산다 이런 말도 많고 파이어족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찾아보니, 내 월 생활비 150만 원을 평생 쓰려면 약 7억은 있어야 배당수익등으로 그 정도가 나온단다. 


자유를 찾아 


7억이 생기면, 정말 나는 자유로워질까? 400만 원 저 금로 7억까지 모으려면, 나는 앞으로 15년은 더 일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또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론 미국 주식이 우상 향하다 보면 복리의 마법이니 어쩌고 하지만, 폭삭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앞으로 10년은 꼼짝없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을 해야 하겠네라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중간에 나도 좀 쉬고 싶은데, 그럴 돈이 없는 나. 인간은 평생 자유를 갈망하고 산다던데, 나의 자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직 한참 멀리 있는 듯하다. 


나의 결론은, 자유를 갈망하는 나 자신, 가난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헐벗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 그것에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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