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 아부지 이야기.
위의 말은 제가 실제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에게 했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직후에 집에 제대로 된 월급도 거의 가져다주신 적이 없던 아버지가 거래처 분께 빌려서 생활비로 가져온 300만원이 들어있던 돈 봉투를 전력으로 세게 제 옆구리에 박히듯이 던지셨지요.
나이가 40대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그때의 감각이 기억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아버지 옆에서 걸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늘 아버지는 저 앞에서 멀리 걸어가시고 저와 어머니와 동생은 같이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갔었지요.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 좀 봐라. 저 외모가 얼마나 멋있니?"
그 당시 키 178에 해군 대위 출신인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번도 그런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거나 같이 놀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눈에 아버지는 전혀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지요. 저희 집은 부도가 나기전까지 아버지가 지은 빌라에 살았었는데 옆골목은 다 허물어져 가는 가난한 집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끔 학교를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경비실에서 경비원 아저씨가 끓여주는 컵라면을 먹으며 앉아있을 때면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같은 반 학급 중 마을 버스를 운전하는 아버지를 둔 친구가 아버지 목마를 타고 웃으면서 지나가는 그 모습이 지는 석양과 함께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그 아이 대로 현실에서 힘들었겠지요.
어느새 시간이 지나 저는 20대의 중반의 학생이 되어 겨울에 잠시 국내에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아침에 면도기가 없어 아버지께 면도기를 잠깐 빌려달라고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참있다 나온 아버지는 제게 붉은 녹이 다 슬어있는 오래된 면도기를 건네주셨습니다. 본인께서 매일 쓰시는 신형 면도기가 있었지만 그건 빌려줄 수가 없어 한참을 찾다 예전에 쓰셨던 오래된 면도기를 발견하신 것이었지요. 왜그런지 그때는 면도기를 받아들고 하루동안 눈물이 많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부분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없는 부도난 살림에 부족한 아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든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신 분도 같은 아버지이실 테니까요. 사람의 내면은 항상 입체적이고 다층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사랑을 많이 줄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이 사랑을 더 많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가끔은 이카루스 처럼 제 두 날개가 육아로 인해 녹아있는 기분이 들때가 있습니다. 주말은 지인들의 좋은 모임들과 VIP 행사 초청들을 많이 받지만 저는 이제는 주말에 아이들 없이는 어딘가를 가본 기억이 흐릿합니다.
아무리 높은 분들이 전화가 오셔도 저는 못간다는 말을 합니다. 극단적으로는 누군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주말에 제게 연락을 주셔도 지금은 원하는 답변을 거의 못받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건 제 마음의 '철칙'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지 못한 사랑을 쌍둥이 아이들에게 주고 싶고 체력이 있는 한 제 시간을 후회없이 쓰고 싶어 어지러운 기분이 들때까지 아이들과 놀아줍니다.
'내가 힘들 때 왜 거기에 없었어요?'
제 마음속의 웅크려 있던 어린아이에게 이제는 너가 아이들에게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오늘도 말해줍니다.
언젠가 아이들이 크면 녹아내린 저의 이카루스의 날개도 다시 자라나겠지요. 그때는 다시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저의 커다란 두 날개로 한번 사는 삶을 더 멋지게 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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