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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랑 Sep 27. 2024

죽은자는 말이 없다

"하나뿐인 아들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인스타그램 DM이었다. 다소 충격적인 미리보기에 황급히 휴대폰을 켰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그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 친다.

-박완서 : 한말씀만 하소서



    박완서님의 작품처럼 존재의 의미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내 자식. 내 아이. 나의 모든 것. 

    그것이 회사에서의 죽음이라면, 그것이 스스로 끊은 목숨이라면, 부모로써 과연 납득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느릿하게 전송되는 타자의 속도에서 그녀의 슬픔이 묻어나와 먼저 전화번호를 건네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얼마나 급박한 일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선뜻 건네는 동앗줄을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내가 그 많은 줄을 붙잡아 보았기 때문에.


"그동안 슬픔에 잠겨있었을 시간은 충분했을 겁니다. 이제 나오세요.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아들은 친척의 사업체에서 근무하는 유약한 성격의 아들로 거래처와의 스트레스와 과로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 하다고 했다. 친척과 연관되어서 그런지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신청을 하지 말자는 뜻을 비추었다고 한다. 덧붙여 "아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것" 이라고 하면서. 



죽은자는 말이 없다. 

아들이 그것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는 우리의 판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해야할 것은 아들이 어떤 연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업무와의 연관성이 있다면 산재보험을 통해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회사에게 아들을 몰아갈 정도로 과실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확인된다면 그에 합당한 법의 처벌을 치르게 하는 것, 이미 정해져 있는 순리를 따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조목조목 알려드렸다. 내가 남편의 산재사고 이후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던 그 힘든길을 그녀 혼자 걸어가지 않도록.

    그러기 위해 나는 법률사무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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