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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Lee Speaking Feb 09. 2024

입원 일지

24년 2월 6일-24년 2월 9일. 두 차례의 코뼈 수술과 입원.

30분 전 정맥주사 바늘을 뽑았다. 항생제, 진통제, 마취제를 내 혈관으로 즉각 흘려보내주던 순간 이동 포탈은 이제 닫혔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24시간 내내 은근 신경을 거슬리게 하던 외경 1.2mm짜리 18게이지 녀석. 왠지 바늘에 찔릴까 봐 무서워 팔도 제대로 못 펴고 어정쩡하게 팔꿈치 굽히고 다니는 게 마치 투명 깁스라도 한 것 같았다. 반소매로 걷어올렸던 왼팔 소매를 다시 걷어내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간 망토처럼 걸치고만 다니던 외투에 팔을 쑥 집어넣어 입어본다. 일상에 한 발짝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해가 뜨면 콧구멍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바세린 거즈를 빼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퇴원하리라.


조각난 코뼈를 제 자리로 돌려놓는 수술을 이틀에 걸쳐 두 번 받았다. 첫날은 전신 마취, 둘째 날은 국소 마취. 첫날에 온전히 실력 발휘를 못하셨는지 집도 교수님께서 국소로 한 번 더 시행하자고 하셨다. 재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잠깐이나마 내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바세린 거즈를 뽑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컸다. 거즈를 뽑자마자 눈물샘에 자극이 갔는지 미친 듯이 흘러나온 눈물 중 1% 정도는 감격 덕택이었다. 재수술은 의식이 멀쩡했기에 콧 속으로 쇠붙이를 집어넣고 내 앞니를 지렛대 삼아 코뼈를 마구잡이로 올려 세우는 우악스러운 장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목구멍을 타고 꿀렁대며 넘어가는 혈액의 감촉도 느낄 수 있었다. 피가 혀에 닿지 않고 곧장 위장으로 직행해 주어서 다행이다. 피 맛까지 보았다면 약간 기절했을지도.


재수술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간절히 조기 퇴원을 바란다고 간호사분들과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있었다. 잠자리가 바뀐 탓에 48시간 넘게 잠을 못 잤는데, 수술 후의 통증보다도 잠을 못 잔 고통이 더 컸기에 집에 가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재수술 도중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피,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 안쓰러운 육신을 보며 사그라들었다. 어떻게든 이 녀석을 든든한 의료진 옆에 머무르게 해 줘야겠다. 수면제를 처방받아먹으며 하루만 더 버텨보기로 마음먹었다.


병원은 아픈 환자들이 오는 곳이니 당연한 소리지만, 정말이지 아픈 사람들밖에 없다. 6인실 병실에 앉아 환자들이 가족과 통화하는 내용, 간병인과 대화하는 내용을 자의 반 타의 반 엿듣다 보면 그들의 애환이 나를 덮쳐온다. 그들의 아픔은 더 크게 느껴지고, 병원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용기에는 더 큰 박수를 보내게 된다. 병실이라는 공간은 그런가 보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니, 바깥세상에서 그렇게 죽자고 집착하던 자존심 같은 거 다 내려놓고 모두가 무방비 상태가 된다. 각자 자기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부드러운 속살을 통해 서로의 아픔도 사랑도 더욱 크게 느낀다. 병실에서 낯선 타인을 배려하고 괜스레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주던, 다정한 모습으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건강과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는 경험이었다. 다시 건강한 육신을 되찾을 수 있음에, 그리고 다시 돌아갈 일상이 있음에 감사한다. 디스크든 코뼈든 통장이든 난 왜 항상 뭔가 깨 먹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는 건지. 이제 좀 그만 깨먹고 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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