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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Lee Speaking Jun 07. 2024

2013년 4월 30일

컨베이어 벨트에 옷이 걸려버렸다. 수십 벌의 옷이 쏟아져 나오다가 그만 하늘하늘한 원피스 세 장이 얼척없게도 컨베이어 벨트의 툭 튀어나온 모서리 어딘가에 딱 걸려버린 것이다. 샛노란색, 하얀색, 빨간색, 색도 참 예쁘다. 우리 집에 멋쟁이가 있었나? 벨트는 무심하게도 계속 돌아가고, 그 장단에 맞추어 실오라기도 부지런히 풀려나간다. 야속한 모서리는 절대로 옷을 곱게 보내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은근한 질투라도 하는 것 마냥, 입지도 못할 옷을 꽉 붙들고 한 올 씩 풀어헤친다.

안타깝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다. 그저 세 벌 중 하나라도 말짱히 가져갈 수 있으면 좋으려니 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도 그랬고 옆에서 엄마도 그랬다. 그러게 이민 오는 마당에 옷 수십 벌을 가방에 담지도 않고 턱 하니 부친게 화근이다.


그나저나 엄마한테 저런 옷이 있었는지 아들은 영 깜빡하고 있었네. 내가 엄마 손 잡고 졸졸 쫓아다니던 시절에 입는 걸 본 기억이 나. 그때도 참 옷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살 땐 한 번을 안 입더니 한국에 돌아올 때 꼭꼭 챙겨 온 거야.


저 인정머리 없는 쇳덩어리에 잡아먹히기 전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보니 풀려나가고 있는 빨간색 실오라기를 손으로 끊어냈다. 다행히 한 벌은 살렸네. 펼쳐보니 크기가 작다. 엄마가 지금보다 젊고 날씬할 때 입던 건가 보다. 왠진 모르겠는데(꿈이니까) 옷 상표에 웬 날짜가 적혀있다. 2013년 4월 30일. 우리 가족이 이민 가기 전이다. 그제야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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