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k Lee Speaking Jun 29. 2024

동냥하는 사람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구걸하는 게 그의 일상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다. 입만 열면 아쉬운 소리 내야 하는 이런 삶이 마냥 달갑지는 않지만, 어차피 다들 이러고 사니까 크게 불만은 없다. 어쩌면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건가보다, 현실이라는 건 원래 추한 건가 보다,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이다. 그래, 어차피 진실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이상 세계는 말 그대로 이데아의 세계에나 있는 건가 보지. 플라톤이라는 사람도 생각 꽤나 했을 텐데 그런 결론에 다다른 건 이유가 있을 테지. 하면서 그는 오늘도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알을 굴리며 여기저기 동냥을 한다.


그렇게 한 닢 한 닢 주섬주섬 받아 챙기다 보니 눈앞에 모자 가게가 보인다. 저 멋진 모자를 쓰고 동냥을 다니면 왠지 사람들이 더 많은 동전을 던져줄 것만 같다. 황급히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 그간 모은 돈을 털어  모자를 사고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창가에 비친 모습을 보니 모자를 걸친 내 모습이 흡족하다. 그는 모자를 쓰고 다시 위풍당당하게 동냥을 하러 나선다. 길거리에는 고급스러운 옷가지를 걸친 사람, 멋진 마차에 올라탄 사람들로 가득하다. 휘황찬란한 이 광경 속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점은 이 멋진 사람들이 전부 나와 똑같이 생긴 주머니를 들고 동냥을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13년 4월 30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