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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Lee Speaking Jan 30. 2024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2

낮은 차원으로의 하강

아이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관념의 세계로, 사람의 세계로 초대되었다. 아이는 꽃을 꽃이라 분류하기 시작했고, 이내 매 순간 무한한 깊이를 뽐내던 꽃의 아름다움은 관념 세계에 무채색의 이름표로 박제되어 그 빛을 상실해 갔다.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1'


언어의 습득은 신의 세계에 머무르던 아이가 인간 사회로 나오는 통로였다. 다만 그 통로는 한 번 발 들이면 되돌아나갈 길 없는 일방통행로였다. 나중에 아이는 인간 사회에 발 붙인 채 다시금 신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끔 자그마한 틈새를 만들게 되지만, 이는 먼 훗날의 이야기다. 

그 통로는 사실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문이었는데, 3차원의 굴레에 속박된 인간의 인지적 능력의 한계로 인해, 겉보기에는 차원의 이동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를테면 2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에게(예를 들어, 메이플 스토리 게임의 캐릭터) 3차원의 물질(예를 들어, 구 모양의 사과)을 보여준다고 한들, 낮은 차원의 캐릭터에게는 구가 아닌 원이 보이므로 사과의 전모를 인지할 수 없는 상황과도 같다.

이 경우, 통로를 넘어서는 순간 육신이 아닌 정신의 수준에서 낮은 차원으로의 하강이 일어났으나, 이 사실을 인지할 만큼 아이의 의식은 발달하지도, 그것을 표현할 만큼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상상컨데, 기껏해야 무언가 상실하는 모호한 느낌정도가 있었을 수 있다.


아무튼 통로를 넘어선 아이는 인간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기 존재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게 됐고, 그 이름은 자아 정체성의 첫 조각으로 편입되었다. 자기 존재가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게 됐고, 그 관계도 자아 정체성의 다음 조각이 되었다. 일상의 크고 작은 경험들 역시 자아 정체성의 일부로 편입되며, 점차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아갔다.  그 정체성은 곧 '나'와 '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었고, '나'를 '나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경계선이었다.  경계선 없이 세계와의 물아일체의 상태에 머무르던 아이는, 자기 존재를 타인과 구별되며 세계와, 꽃과, 나비와 구별되는 별개의 개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였고, 나비는 나비였으며, 나와 나비는 분리된 별개의 존재였다.


성인이 되어가며 아이는 점점 더 두터운 경계선을 그려나갔고, 그 경계선은 이내 자기 존재의 본질과도 같은 수준의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아니, 사실 그 경계선 자체가 곧 자기 존재라고 오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신과 학벌, 직업, 소득 따위의 사회적 지위(status)는 물론이거니와, 외모와 신체, 재산 같은 물리적 소유물, 지능이나 언어 능력, 경험과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성격(character)이라는 정신적 소유물까지 모두 경계선을 구성하는 소중한 재료였다. 경계선에 손상을 입는 것은 곧 자기 본질이 손상을 입는 것과 동등한 위협이었기에, 경계선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방어하고 더 두터운 정체성을 위해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 아이는 전리품을 잃을까 끝없이 두려워했고, 그 두려움을 감추고자 더 많은 소유물을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이쯤에 이르자, 아이는 나비를 나비라고 이름 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봄날에 날아다니는 나비는 더 이상 아무런 신비감도 감동도 주지 못했다. '현실'이라는 골치 아픈 문젯거리는 아이로 하여금 아무 판단과 분류 없이, 나비를 나비라고 부르지 않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하는 여유를 허락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에 덕지덕지 소유물들 발라본들, 소유의 만족감은 유통기한이 짧았다. 유통기한이 다 한 만족감은 어김없이 아이의 공허한 가슴을 들춰내기 일쑤였다. 아이는 그 공백을 채울 마땅한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했으나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탈출구 없는 나락의 굴레로 걸어 들어가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언어의 문을 넘어서며 아이의 세계는 바뀌었다. 신의 세계를 보며 지복에 경탄할 줄 아는 눈을 가졌던 아이는 그 눈을 상실했고, 세상은 끝없는 소유와 쟁취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덕지덕지 발라진 수많은 장식품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이는 흡족했고, 새로운 소유물을 추가할 때면 짜릿한 기분이 들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미묘한 느낌이 그림자처럼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아이가 공허감을 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눈, 지복에 경탄할 줄 알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눈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지만, 회복을 위해서 아이는 첫 번째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바로 세계를 인식하는 자신의 눈이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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