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소설 그 사이
첫 책이 출간되고 엄마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엄마, 너무 소문내지 마.”
엄마는 우리 집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확성기다. 나쁜 소식은 누군가에게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고, 좋은 소식은 인연이 끊긴 사람까지 모조리 연락해 소문냈다. 옅은 미소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엄마가 불안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문내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엄마는 핸드폰을 탁 덮으며, 약속은 꼭 지킨다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 그녀의 단언과는 다르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첫 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가족과의 거리두기를 원하는 딸과 그렇지 못한 엄마의 애달픈 이야기. 왜 거리 둬야 하는지를 설명하다 보니, 가족의 뒷담화가 들어갔다. 이게 소문내지 말라는 이유였다. 엄마는 책을 읽지도 않았는지 내 속도 모르고 하루도 되지 않아 봉인된 입을 해제해버렸다. 엄마 친구들로부터 매일 연락이 왔다.
‘은영 작가님. 책 잘 읽을게요. 미자가 자랑을 얼마나 하던지 안 살 수가 없더라.’
계 모임에서 식당이 떠나가라 볼륨을 높이며 내 책을 자랑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다행스러운 건, 아빠만큼은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아빠는 출간 계약을 알렸을 때부터 책이 나온 순간까지도 덤덤했다. 책을 전하러 본가에 갔을 때도 아빠는 누워있던 소파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거기 두고 가라.”
아빠는 칭찬에 인색했다. 대학생 시절, 성적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연락하자 전액 장학금이 맞냐고 묻던 아빠였다. 반액이라는 대답에 한숨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이번 책과 관련해서 아빠가 처음으로 묻던 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작가 그거 돈 되니?”
이번엔 내가 한숨 소리를 남기고, 본가를 나와버렸다. 칭찬은 아니더라도 다른 걸 물어봐 주기를 바랐다. 어떤 내용인지, 책이 출간되고 기분이 어떤지, 글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나아갔는지 등. 물을 게 수두룩한데 왜 자꾸 돈에만 집착하는지 답답했다. 아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먹고 사는 일이었다. 아빠의 가치관은 명절이 되면 더 극대화되었다. 큰 집 거실에서 큰아빠들과 둘러앉아 누가 어디 땅을 샀는데 그게 얼마나 올랐는지, 동네 친구 아들이 공공기업에 취업해서 월급 얼마를 받는지, 침을 튀겨가며 대화했다. 내가 끼일 수도 없고, 끼이고 싶지도 않은 대화에 설 내내 투명 인간을 자처했다. 친척들이 내 존재감을 알게 된 건, 큰아빠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은영이 책 썼다며? 큰아빠가 사서 읽어보마.”
흠칫했다. 큰아빠들의 험담을 가장 신랄하게 썼었다. ‘자기들이 조선의 양반인 줄 알고 부엌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 ‘할머니는 사형제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다며 요즘이었으면 오은영이 호되게 혼냈을 것이다’ 등. 큰아빠가 읽자마자 뒷목 잡고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직 출간되기 전이라고 대충 둘러대려는데 여태껏 책에 시큰둥하던 아빠가 나섰다.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소문낸 줄 알았는데 이번엔 아빠였구나. 아빠의 소심한 자랑에 큰아빠는 콧방귀를 꼈다. 정갈하게 깎인 사과를 우악스럽게 씹으며 말했다.
“책 그걸로 몇 푼이나 번다고. 공기업 아니면 다 도루묵이야.”
아빠의 자그마한 자부심이 부서졌다. 동시에 내 표정도 구겨졌다. 간섭을 조언이라 착각한 큰 아빠는 거침없었다. 아빠는 겨우 열게 된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어렸을 때 공부 못하더니 글은 어떻게 쓰냐고 무례의 정점을 찍자 깊숙한 속에서 비명이 들렸다.
“저 능력 있어요. 큰아빠나 잘하세요. 명절에 사촌들 한 명도 오지 않고 저만 왔잖아요.”
내뱉고도 놀랐다. 능력 있다고 내 입으로 말하다니. 글 쓰면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으면서 말이다. 지렁이가 제대로 꿈틀했구나. 그날, 나는 지구가 둥글다고 처음 주장하는 갈릴레오였다. 능력이 좋다는 엄청난 가설을 하나 발표하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지난하게 실험했던 천문학자처럼 글 써야 할 것 같았다.
아빠는 그날 이후로 나에게 명절날 큰집에 가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내 책은 아직 읽지도 않았으며, 책에 ‘ㅊ’도 꺼내지 않았다. 엄마의 시끄럽던 휴대폰도 조용해졌다. 작가인 딸이 부끄러워졌나. 부서진 아빠의 자부심을 붙일 수 있는 건, 원고료뿐이었다. 출판사에 연락해 몇 권이나 팔렸는지 매일 확인했다. 신간이라 반응이 늦다는 편집자의 대답만 애석하게 들려왔다. 결과는 처참했다. 1쇄조차 다 팔지 못해서 손에 쥐어지는 돈도 적었다.
첫 원고료를 받던 날, 쇼핑백을 주렁주렁 매달고 본가에 들렸다. 사비를 털어 장만한 선물들이라 그런지 어깨가 더 무거웠다. 무늬도 없는 넥타이 주제에, 20g도 안 되는 립스틱 주제에 왜 이리도 비싼 건지 두 달 치 용돈을 퍼부어야 했다. 현관에 선물상자를 던지듯 놓고 신발을 벗었다. 평소 휑했던 거실에는 웬 택배 상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몇 개는 구석에 뜯기지도 않은 채로 놓여 있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등장에 엄마와 아빠는 허둥지둥 상자를 하나둘씩 치웠다.
“뭘 이렇게 많이 주문했어?”
“아무것도 아냐.”
와르르. 아빠가 급하게 든 상자가 내 책들을 토해냈다. 밑부분이 뜯겨버린 상자를 놓지도 들지도 못한 채로 아빠가 굳어버렸다. 어느 날, 출판사가 하루아침에 100권이 팔렸다고 했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빠와 나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쏟아진 책들을 주섬주섬 주웠다. 어색한 공기를 뚫고 100권을 도대체 어디에 쓸 거냐고 툴툴거렸다.
“라면 받침 살 일은 평생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