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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Jun 18. 2024

행복하지 않기로 해요

살도 빠지지 않는 요즘, 운동의 낙을 찾자면 팟캐스트다. 오늘은 어떤 주제를 들을지 뒤적거리다가 재밌는 채널을 만나면 그 날은 오디오에 집중하느라 운동이 힘든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재밌는 팟캐스트와 주제를 고르는 비결은 없지만, 이런 주제는 회피한다는 나만의 철칙은 있다. ‘행복’이 들어간 팟캐스트는 무조건 피한다. ‘행복’이라는 주제는 듣기도 전에 뻔하고 밋밋하게 느껴진다. 팟캐스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행복이란 말을 하거나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행복추구’가 평생의 과업인 시대에서 ‘행복 혹은 불행’이라는 이분법적 감정 강요에 지쳐 반항심마저 든다. 하루는 오랜만에 만난 방송국 친구가 밥을 다 먹고 헤어질 무렵에 물었다.      


“너는 뭐할 때, 행복해?”

“내가 뭐할 때, 행복한지 생각하지 않을 때.”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가방 챙길 때나 물어보다니 센스 없네. 속으로 투덜거리다 반항심에 대답했다. 친구는 오히려 심금을 울리는 말을 들었다며 감탄했다. 사실 나도 내 대답에 감탄했다. 오랜 애증의 관계였던 행복과 연을 끊고 해방된 기분이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거나 활동을 할 때, 기분을 잘 들여다본다. 근데 어떤 감정인지 보다는 ‘행복한가’에만 기준으로 둔다. 퇴근하고 장 보고 밥을 차려 먹으면 하루의 마무리가 만족스럽다. 하지만, 뒷정리를 생각하면 귀찮고 귀찮은 나 자신이 한심하다. 나는 저녁밥을 차려 먹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고민된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는 굉장한 감정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편안, 흥분, 성취, 만족, 재미, 해방, 서운, 분노, 좌절, 불안 등 감정의 종류는 셀 수도 없이 다양하다. 우리는 이 많은 감정 중 긍정적인 부분을 ‘행복’으로 뭉개서 사용하곤 한다. TV 프로그램 <유 퀴즈>에 김영하 작가님이 나와 했던 말이 있다. 작가님은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절대 ‘짜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짜증 안에도 수많은 일과 감정이 있는데 그걸 짜증으로 표현하는 순간 모든 게 생략된다는 것이다. 가끔은 글쓰기가 인생 전반에도 호환된다는 것이 경이롭다. 작가님의 짜증과 내가 말한 행복이 같은 맥락이다. 만약에 친구가 언제 행복한지보다 언제 편안한지, 언제 도파민이 도는지, 언제 해방감을 느끼는지 물어봤다면 심금은 울리진 않았겠지만, 구체적인 대답이 더욱 빠르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에 남자친구와 데이트 할 때, 편안하다.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을 앞두고 남자친구와 여유로운 수다를 떨 수 있다. 연차를 쓴 평일 날, 낮술을 마시면 해방된 기분이 든다. 처음으로 야구장에 간 날, 다른 관객들과 하나 되어 응원할 때, 도파민이 돌았다. 내가 계획한 걸, 오로지 게으름 때문에 하지 못할 때,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좌절한다. 누군가 나를 통제할 때, 분노한다. 이처럼 행복에서 멀어지면, 불행이 아닌 또 다른 감정임을 알 수 있다.      


행복에 대해서 아주 명쾌한 답을 내렸다고 자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에 꽂힌 나의 첫 출간 책과 눈이 마주쳤다. 오랜만에 마주한 책 제목에 이마를 탁! 짚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다시 털썩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읽어보았다. 아무리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한 제목이지만 저렇게 진부한 제목을 썼다니. 어쩐지 나조차도 손이 잘 안 가더라. 나도 어쩔 수 없는 행복 도파민의 세대였다. 지금 이 글이 독자들에게 공감이 될지는 모르겠다. 만약 책을 2쇄 하게 된다면 바꿀 제목을 구상하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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