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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심 Jun 25. 2024

가족은 나를 비추는 전부가 될 수 없다.

글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엄마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 여행으로 괌을 다녀왔다. ‘여행’에 ‘가족’이 붙었을 뿐인데, 여행이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 정했던 여행지는 멀리 가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따라 호주였다. 하지만, 내가 연차를 3일 연속으로 쓸 수 없다고 하자 여행지가 괌으로 급하게 변경되었다. 조심스레 고백하건대, 사실 회사에서 3일 연차로 눈치 준 적이 없다. 가족 여행도 버거운데 휴양지가 아닌 호주는 더욱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바뀐 괌 여행의 당일이 밝았다. 도착한 괌 공항에서 출국 심사를 하는데 가구원끼리 줄 서라는 안내가 있었다. 결혼한 큰 언니와 작은 언니는 자기가 꾸린 구성원끼리 줄을 섰지만, 나는 우왕좌왕했다. 엄마와 아빠, 나 이렇게 뭉쳐서 줄 서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따로이고 싶었다. 엄마랑 아빠도 이런 거 젊은 사람 없이 해봐야 한다는 변명을 대며 뒤로 물러섰다. 호텔에 도착하고 엄마, 아빠와 방을 같이 쓰게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내 방이 따로 있었다. 혼자 방 하나를 온전히 쓴다는 생각에 해방감과 함께 괌 여행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엄마, 아빠를 불편해하는 걸까.      


엄마는 어릴 적부터, 북적거리는 가족을 꿈꿨다. 친척 간 왕래가 전혀 없었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명절이면 친척들이 많이 오고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엄마는 다섯 남매가 있는 식구로는 부족했는지, 언젠가 결혼하면 반드시 가족이 북적거리는 명절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을 30년이 넘도록 악착같이 지켜냈다. 큰집만 다녀오면 아빠와 동네가 떠나갈세라 싸우지만, 엄마는 명절날 단 한 번도 큰집 방문을 빼먹은 적이 없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4형제 중에 셋째지만, 형제들을 잘 부탁한다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에 따라 장남의 역할을 장남 대신해서 톡톡히 해냈다. 할머니의 말은 아빠의 가정까지 뒤로 할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였다. 친척들 앞에서는 잘 웃었지만, 우리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툴툴거리는 모습을 주로 보였다. 이 둘에게 보이는 공통점은 가족이란 좋은 어떤 것보다는 이래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나는 가족에게 부여되는 사명감이 싫었다. 가족끼리 비밀이 없어야 하고, 가까이 있어야 하고, 자주 연락해야 하고, 걱정해야 하고 이런 것들이 불편했다. 월급이 왜 이렇게 적은 그곳에 다니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친하지도 않은 사촌과 연락 자주 하라는 아빠에게 나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 짓는 언니들에게 도망쳤다. 자취하는 5년 동안, 어쩌면 가족해체를 차근히 선언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모든 걸 허용하고 감수할 만큼, 가족이라는 게 대단한가 싶다.      


회의적인 마음을 가져서인지, 미디어를 접할 때면 죄인이 되곤 했다. 다정한 모녀나 부녀 모습이 미디어에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러면 패널들은 너무 보기 좋다며 칭찬 일색이다. 부모님과 다정한 모습이 출연진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보여준다며 말이다. 가족과 다정하지 못한 나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랐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랐다. 조금의 결핍은 가진 채로 밝고 독립적이지만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은 내 인생을 비추는 전부가 될 수 없다. 수많은 관계 속의 내가 겹치고 겹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가족은 일부에 불과하다. 주로 어떤 관계에서 자랐는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직도 조언이 필요할 때면, 책을 읽는 게 전부다. 가끔은 친구와의 대화를 회고하고, 회사 동료의 말을 곱씹어보기도 한다.      

엄마는 만날 때면 따지듯 묻는다.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면서 왜 이렇게 집에 안 오니? 가족끼리 얼굴 자주 비추고 살아야지.” 

    

 난 늘 그랬듯, 웃고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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