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발표된 신춘문예 당선작들 중에서 경향신문의 <여기 있다>가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인 듯하다. 당선자는 택배기사, 지게차기사, 요리사라는 직업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존재감 없음을 <투명 인간>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심사평에서 심사위원들은 새로운 경향으로는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는 시들이 많아졌음을 언급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삶에서 비롯된 결핍 감정인 존재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현실은 실제이고 깨닫게 되고 돌이킬수 없는 것이어서 인생이 짧다거나 삶에 불안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 생명의 절대 한계를 극복하고자 할 때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언젠가 무(無)로 돌아가고, 꽃이 피고 지는 순간처럼 슬픈 것이지만, 시인은 자신이 비존재로 느껴질 때 의미(meaning) 찾기를 모색하게 되며 두려움, 불안, 슬픔을 넘고자 한다. 이 세상은 고독과 슬픔으로 가득할지라도 그러한 삶을 극복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살아갈만한 세상이다.
시인은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고 하거나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내면의 거울(유리창)에 비친 대상(객체)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시인이 <여기 있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요리사,지게차기사,택백기사 등으로 살아가면서 인식(cognition) 되고 지각(perception) 된 감각의 내재적 존재론적 의미(meaning)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무상無常에서 무아無我로 깨달음을 얻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이 무엇이고 무상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삶의 의지가 살아나게 되고 슬픔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희망이나 자유가 소중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이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던 “나는 투명인간”이라는 선언을 통해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고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으며, 이 시의 고요한 단단함을 심사위원들은 믿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이 출구 없는 막막한 일상을 견디는 데 작은 버팀목이 되길 바란다.2024.01.02/김승하시인/kimseonbi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