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맛깔전종만 Sep 09. 2024

산티 아고 순례길 33일

힘듦 안에서 행복 찾다

  시작은 이랬다. 걷기 좋아하니까 도보여행을 하자. 국내는 이곳저곳 많이 다녀 봤으니까 이번에는 국외로 가자. 그럼 어디를 갈까? 그래서 결정한 곳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오랫동안 꿈꾸던 여행길이라 많이 설렜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 기간 동안 설렘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이기적으로 살아 보자는 마음이 미안함보다 컸다.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기적인 결단 없이 장기간 여행하기란 쉽지 않다. 아내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먼 여행길을 지인들과 떠난다는 것, 일반적이지는 않다. 몇 년 전부터 꿈꾸던 여행이라 어떤 장애물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42일간(산티아고 순례길 33일, 나머지 기간은 프랑스, 포르투갈)의 여행을 떠났다.


  전국에 있는 도보여행의 최적지라는 제주도 올레길, 남해바레길을 걸었고 현직 때에는 해남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43킬로를 2년 동안 매달 1회씩 걸어 완주했다. 꿈꾸던 여행을 같이 떠나게 되는 지인 2명과 함께 가끔 만나서 배낭의 무게 등 부족한 것은 없는지 점검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많은 길 중에 우리는 프랑스길을 선택했다. 프랑스길은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800키로다. 32일 내지 33일 계획이기 때문에 하루 평균 25키로 정도 걸어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헬싱키를 경유해서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까지 14시간 걸렸다. 파리 몽파르나스역 주변에서 1박을 하면서 엘페탑 등을 구경했다. 올림픽 준비에 바쁜 모습들이다. 다음날 TGV를 타고 생장으로 갔다. 산티아고 순례를 위해서 순례자 여권을 받아야 한다. 여권을 받기 위해 순례자 사무소로 갔다. 여권을 만들어 주면서 안내하는 분이 내일은 눈이 온다고 하니 프랑스길 첫 구간인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것은 자제하라고 한다. 눈이 오면 길이 거칠고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첫날부터 꼬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늘 비와 바람 그리고 눈과 싸우던, 아니 친하게 지내던 우리다. 긍정적으로 마음을 바꾼다. 알바르게에서 잠을 자고 아침 6시 반쯤 파이팅과 함께 출발한다. 피레네 산맥을 우회하기로 하고 떠났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 갈림길에 도착하니 우회하지 않고 정상코스(나폴레옹길)로 가는 분들이 있다. 의논 결과, 어제 안내소에서 주의 줬지만 피레네 산맥을 넘기로 한다. 피레네 산맥은 1,500 고지이다. 1,500 고지 자체는 그리 두렵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수없이 다녀 던 산들의 높이다. 그런데 비가 오고 눈이 온다고 하니 조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700 고지쯤 올라가니 비가 온다. 800 고지까지는 초록초록하다.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그런데 900 고지부터는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쌓이기 시작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안내 책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보다 한 달쯤 앞서 가니 엄청 더울 거라고 했다. 준비해간 옷이 반바지, 반팔 상위나 얇은 옷이다. 다행인 것은 혹시나 해서 가지고 간 얇은 패딩이 한몫했다. 초록 초록한 나뭇잎 위로 하얀 눈이 쌓인 광경은 아마도 다시 보기 힘든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봄이라 그런지 눈이 오지만 많이 춥지는 않다. 우리를 앞서가는 브라질 친구들은 이 추위에도 반바지 반팔이다. 피레네 산맥의 모습은 사계절을 보는 느낌이다.


  첫날 힘들어서 그런지 둘째 날, 셋째 날로 이어지면서 평온함으로 돌아온다. 비가 오고 춥기는 하지만 어제 만난 피레네 산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넓은 밀밭을 만나기도 하고 넓은 포도밭을 만나기도 한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를 고난의 길, 마음에 길을 걷게 하더니 결국은 평화의 길이 걷도록 한다. 넓은 밀밭 사잇길을 걸을 때는 나 같은 하찮은 존재가 그 길을 지나가도 되나 싶기도 했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 넋을 놓고 한없이 앉아 있기도 했다. 이 길 위에 사는 사람이나 이 길을 걷는 모두가 천사다. 길을 물어보면 원하는 장소까지 동행하는 분도 있었고 많지 않은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 길을 걷는 모두는 친구였다. 남녀노소 다르지 않았다. 각자가 가지고 온 걱정, 근심 그리고 고민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부족한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하였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목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진짜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두 번째로 버킷리스트로 정해 놓은 여러 가지 중 하나를 완성하는 일 그리고 세 번째로 모태신앙인 내가 삶을 너무 신앙적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야곱의 전도여행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다지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생 길에 대한 고민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목적완성으로 보아야 하고 나머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짐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키로 걷기는 단순히 걷는 데에만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집을 떠나서 만나게 되는 산티아고 숙소 알베르게는 우리나라 여행 중 이용했던 숙소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한 숙소에 100명 이상이 잠을 자는 숙소도 있다. 대부분 2층 침대로 되어 있는 모 니토리라고 하는 기숙사 형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화장실이나 사워 실도 대부분 공용으로 되어 있어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불편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호텔이나 좋은 호스텔을 이용하는 경우 경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떠나는 여행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군 제대 후 직장 입사하기 전, 복학을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떠나온 청년, 직장 퇴직 후 기념으로 온 어느 부부, 10년 전 이곳에 다녀 갔는데 다시 생각이 나서 왔다는 어느 노신사, 그리고 야곱의 전도여행길에서의 고난,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실천하고자 온 사람들, 나는 그 무리 속에서 수 백 년 전 신앙선배의 가르침을 들었고 들려주는 새소리,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세상 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이 길은 걸었다.    

걷기예찬에서 다비드 르 브르팅은 이렇게 썼다.

'걷는 것은 자신의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길 끝에 길


길 끝에 길을 나는 걸었다

파란 하늘을 따라

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끔은 새소리를 따라


그 길이 때로는 아름다웠고

그 길이 때로는 아팠고

그 길이 때로는 기다림이 되었고

그 길이 때로는 멈추게 하였다

길 끝에 또 길이 있어서

그 길이 영원히 존재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길도 끝이 있었다


삶도 끝이 있는 것처럼...

산테아고 콤프스텔라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후
완주 후 환희
등산화의 새로운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