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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하마 Jan 18. 2024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우리는

미안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들처럼 저에게도 연애 경험이 있습니다. 딱 두 번.

한 때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연인이었던 우리는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지만 이름은 익명입니다.)

 



1. A

첫 남자친구 A는 제 인생에서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 가장 처음으로 "너는 예뻐"라고 말해준 이성입니다. 살면서 -비록 꽤 납득할만한 묘사이긴 하지만- '뚱뚱하다', '피부가 너무 까멓다', '키가 너무 작다', '못생겼다'와 같은 말만 듣다가 처음으로 저런 고운 말을 들었더니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가 좋아졌습니다. 동갑내기였던 A와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났고, 장거리 연애이다 보니 자주 얼굴 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자주 연락하며 시간 되는 대로 만나 꽤 행복한 추억도 많이 쌓았습니다.


약 5개월 정도 뒤, 그가 제 생일날 연락을 끊기 전까지는 말이죠.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한참 Facebook이 유행하던 그 시절 유행에 민감한 20대 답게 그와 저 역시도 Facebook에서 이런저런 추억들을 지인들과 공유했습니다. 어쩌다 그의 전 여자친구 B가 저희의 포스팅을 발견했고, B는 그녀와 A가 함께한 시간들에 대해 적은 메시지를 제게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A와 연락하고 지내고 있으며 저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말도 서슴없이 꺼냈습니다. A에게 이에 대해 말했더니 그는 B가 하는 말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A를 믿었고, 여느 때처럼 제가 보낸 하루에 대해 문자를 남겼지만 그의 대답은 제 생일날 뚝 끊기고 말았습니다.


걱정이 되어 혹시나 그의 핸드폰에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서 지인에게 A와 연락이 되는지 물어봤더니, 역시나 지인의 연락엔 바로 응답하던 A... 그는 끝까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B에게 SNS상으로 괴롭힘 당한 것도, 헤어지자는 말할 용기도 없었던 A도, 첫 연애가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두 싫었습니다. 많이 슬펐고,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온라인상 괴롭힘의 무서움도 깨달아 모든 SNS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그에게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나 0월 0일에 출국해. 한동안 외국에 있을 거야. 네가 아직도 날 좋아한다면 공항으로 나와줘."

누가 들어도 멍소리죠? 바로 휴지통에 처박았습니다. 그렇게 제 첫 연애는 막을 내렸습니다.


2. C

동갑내기인 C와는 장거리 연애를 포함해서 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 다시 못 만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전히 너무나 좋은 사람입니다. 지나가던 길에 사고를 목격했을 때 부상자가 있는 곳 근처에 휴대용 '주의' 표지판을 세우고, 119를 부른 뒤,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2시간 동안 교통정리를 할 정도로 인명을 우선시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데 망설임이 없는 좋은 인성의 소유자입니다.


유럽에서 살며 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을 때 병원에도 같이 가주고, 제가 회복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도 노력을 기울이는 등 그는 한마디 불평 없이 늘 헌신적이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죠.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질환으로 인해 저는 외부 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졌고 (왜 감옥에 갇히는 게 처벌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4년간 비싼 병원비를 감당해 가며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지만 건강에 차도가 없어 결국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C는 이 나라에서 이미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고, 유럽에서의 삶에 만족했으며,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시민권까지 신청해 둔 상황이었죠. 그렇기에 그는 이곳에 남는 것을 원했습니다.


저희에겐 서로를 위한 마음만큼이나 개인으로서의 삶도 중요했습니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건강 회복이 간절했고, 더 이상 C가 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제 건강이 그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다행히 그는 제 결정을 존중해 주었고, 덕분에 저는 안전 이별을 하는 중입니다.


다만 그는 제게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함께할 거라는 여자들의 말을 이젠 쉽게 믿지 못할 것 같아."

너무 미안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 만나 뵌 적이 있는 C의 가족들도 저를 따스히 대해주셨던 만큼 제게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들었습니다. 고작 본인 건강 하나 챙기겠다고 몇 년간 신뢰로 쌓아온 관계를 무너뜨리는 상황이 괘씸했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이 보시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 이 나라에 정착해 보겠다고 온갖 치료를 다 시도해 봤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아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기에, 이 상황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스스로의 결정을 지지하는 만큼, 본인의 행복을 좇아 이곳에 남기로 한 C의 결정도 존중합니다. 슬픔과 괴로움은 제가 다 안고 갈 테니 C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가 늘 원했던 아이가 뛰노는 따뜻한 가정을 이뤄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차였던 첫 연애는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 있었고, 어려서였는지 회복이 쉬웠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끝내고 있는 두 번째 연애는 신뢰를 저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한데 뒤섞여 여전히 저를 울립니다. 감정적 소모가 삶에 이렇게나 큰 타격을 줄 줄이야.


앞으로는 쉬이 누군가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남의 집 귀한 아들 마음에 못 박는 건 해서는 안될 짓임을 굳이 해보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만 하고 살까 봐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Nick Karvoun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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