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취업 시 나이가 많을수록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들은 바도 있고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간호사로서 병원에 취업하는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호사로서 미국으로 건너가고 취업하는 데 있어 나이에 대해 제가 보고 느낀 바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좋다'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간호사로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2년 정도의 간호사 경력을 쌓아 20대 후반이라는 (제 생각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운이 좋게도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취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땐 20대에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 것에 크게 만족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다릅니다.
누군가 미국에 간호사로 이민 가는데 가장 적절한 시기를 묻는다면 '한국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보고 인간으로 성숙된 후 30대 후반-40대 초쯤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라고 답해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30대 이후에도 취업은 잘 된다.
간호사는 어딜 가나 인력이 부족한 직군인 것 같습니다. 제가 취업할 때만 해도 20대-40대 말까지는 경력에 상관없이 취업에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경력이 있다면 더 쉽겠죠?) 40대에 취업한다고 해도, 50-60대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보니 병원 측에서도 면접 시 나이에 페널티를 크게 적용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2. 나이 많은 신규라도 간호사 면허가 있으면 지원 조건은 만족.
미국 병원 동기 중에 신규로 입사한 50대 아저씨도 계셨습니다. 그분은 ER로 가셨었는데, 그 이후에 20, 30대 간호사 친구들이 뉴욕시의 ER 업무 강도를 못 이겨 우수수 퇴사할 때 그분만은 굳건히 버티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근무하던 시간 동안 오히려 20-30대 간호사들은 점차 사라져 가는 반면 40대-60대의 간호사 및 간호 관련 직종 종사자 (patient care assistant, patient care technicians)들이 남는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낙 업무강도가 높은 곳이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단기간 경력을 쌓아 더 연봉이 높은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40대 이상이셨던 선생님들께서는 이직보다는 병원 소속으로 10년 근속 시 연금이 제공되는 혜택을 받기 위해 그 시간만큼은 버티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런 점을 간호부와 인사팀에서도 인지했는지 30-40대 신규가 꽤 많이 들어오더군요.
물론 간호사로서 경력이 많으면 면접에서 더 유리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영업직이라던지 진상 고객을 많이 대처한 경험이 있거나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공동의 목표를 성취해 낸 경험이 있다면 추후에 간호사로서 업무를 잘 해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일만 제대로 하면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니까요^^) 오히려 순전히 나이만 가지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모독하면 그 사람이 문제인 게 분명하니 head nurse에게 이야기하시고, 혹시나 head nurse가 그 사람 편을 들어준다면 unit manager한테 직접 호소하시면 됩니다.
3. 나이 든 간호사를 선호하는 환자들이 꽤 있다.
어려 보이는 간호사보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간호사를 선호하는 환자분들이 꽤 많습니다. 앳된 얼굴의 간호사는 경력이 없어 보여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들 하시더군요. 반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셨던 선생님들께서는 여러 삶의 경험이 있다 보니 환자분들과 대화하시면서 공감도 잘 이끌어내시고 라포 형성도 잘 해내셔서 간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간호사의 연륜은 빛을 발한답니다.
4. 간호사가 내 천직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간호사로 뻗어나갈 길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임상 간호사로 짧게 일하다 다른 간호 직종으로 옮겨갈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미국에 간호사로 간다면 영주권을 받고 가는 계약에 n 년 이상은 간호사로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을 수 있습니다. 즉 그 시간 동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간호사로 버텨야 된다는 뜻입니다.
많은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에서 모든 걸 정리하고 미국에 갔는데 생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임금이 낮을 수도 있고, 근무지 외에도 미국에서의 삶 자체가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죠. (마치 제가 월세 사기를 당했던 것처럼 말입니다ㅠㅠ.) 따라서 국내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다양하게 해 보고 미국 간호사로 일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가면 '예상치 못하게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더 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세 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을 클릭하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지금만큼 인간의 수명이 길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만성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인구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회가 고령화되어 감에 따라 간호 인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이기에 미국에서 간호사로 취업하는데 나이가 미치는 영향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으나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는 불안에 좌절하셨던 분들께서 이번 글을 통해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Lucian Alex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