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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Apr 06. 2024

나의 행복할 거리들

햇빛, 바람, 비 그리고 바다

요즘 들어 벚꽃 잎이 길바닥에서 둥글게 모여 춤을 추고 해가 지면 시원한 바람이 귓바퀴를 스쳐 속이 화-해진다. 아마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행복한 시절이겠지만, 그래서 이 계절을 제대로 즐기려고 애쓰고 있다.




예전에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속이 답답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나는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는데, 수업 도중에도 가슴이 답답해서 마스크 때문인 척하고 잠시 교실을 빠져나와 숨을 깊이 고르곤 했다.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엔 업무에 시달리다 도저히 못 버티겠으면 급한 걸음으로 햇빛이 내리는 중앙 정원으로 내려와 마치 수액 맞는 사람처럼 햇빛을 맞고 홀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손에 닿는 따스함과 눈꺼풀을 통과해 들어오는 눈이 부신 느낌이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나는 상담선생님에게 햇빛을 받으면 좀 살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그때보다 편안해지고 여유가 조금 생겼다. 숨이 턱까지 올라와 겨우겨우 쉬는 것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을 알맞게 조절하는 힘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 감사하다.

자연과 더 가까운 환경으로 거처를 옮기고 봄이 오면서 몸의 감각이 더 살아나는 듯하다. 차를 운전하면서 운하 위 다리를 건너게 되면 이때다 싶어 얼른 창을 내리고 손을 내밀어 손가락 사이로 부는 바람을 잡아본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의 흔적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마음속에서 행복이 몽글몽글 올라와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끼는 순간이다.




흐린 날이 지속되다가 어느 날 어둑어둑하니 봄 비가 내리면 공기마저 차갑게 어두워진다. 비가 오면 솔직히 몸이 쳐지고 기분이 늘어진다. 이럴 땐 음악을 틀면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어둡고 칙칙했던 비가 낭만적으로 변한다. 비가 오면 재즈가 생각난다. 칙칙하고 끈적끈적한 챗 베이커의 “funny valentine”부터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까지. 비가 오면 제 빛을 발하는 음악이 있다. 빗방울이 투두둑 창문에 부딫히는 소리가 음악으로 다가와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한다.




나는 이 세상이 싫었다. 죽는 건 편안해지는 거라 생각했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힘들지 세상을 떠나는 본인은 오히려 걱정이 없어지는 거라 생각했다. 장례식은 죽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예식이 아닌가.

과거의 나는 선악이 무질서하게 공존하는, 이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갈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아직 자라고 있는 서툰 사람이지만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일깨워주는 자연과 음악.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살아간다. 어찌 이런 생각을 하기만 하면 눈가에서 수분기가 올라오는지.




사실 아직 앞으로의 인생이 막막하다. 겁나고 무섭다. 더 이상 힘내라는 말이 힘나지 않는다. 힘을 안 내고 있어도 괜찮은 세상이면 좋겠다. 과거의 나를 짓누르는 상처들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보호대가 되면 좋겠다.

나이를 또 하나 먹어서 그런지 요즘 유독 길가의 꽃이 눈에 밟혀 사진을 찍고 하늘을 보며 참 높다, 저 파란 하늘에 풍덩 빠져 수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멍을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 처음 본 꽃. 안개꽃 같기도 하고. 꽃송이가 새끼손톱보다 작았다.


이렇게 주변의 작은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다 보면 내 마음속 아픈 기억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아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지 않냐고. 네 옆에 우리가 있지 않냐고. 말갛게 주홍빛으로 물들어 저 멀리 떠있는 섬 뒤로 훌훌 사라지는 해가 나에게 얘기한다. 우리 내일도 만나자고.


함께 걷는 길- 곽진언(음악 듣기​)


내가 자주가는 작은 바닷가 마을.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물들어가는 바닷물을 보고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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