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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내 Jun 24. 2024

위협운전을 당하다

걱정과는 달리 순탄하게 일요일을 보내고 새로운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월요병에 시달렸지만 엄마가 된 이후로는 월요일만 버티며 주말을 보내고 있다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오늘은 서평도 마무리해야 되고 할 일이 쌓여있다. 집은 이미 난장판이지만 등원만 시키면 한숨 돌릴 수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내 손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삶은 달걀과 우유, 모닝빵을 아이들에게 건네주고 먹든 안 먹든 한 명씩 씻기고 입히고 어르고 달래며 마지막으로 간식을 손에 쥐여주며 전쟁 같은 등원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아이들을 차에 태워 집을 나섰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평소보다 많다

적응이 좀 오래 걸리는 첫째는 올해 유치원에 들어갔고 유치원 버스에 강한 거부감을 표현해서 직접 라이딩하며 등하원 시켜주고 있다


그로 인해 집 근처 어린이집을 다니는 둘째도 매일같이 차를 탄다. 어린이집에 둘째를 먼저 내려주고 다시 출발! 동네 단지들 사이 이 차선 도로 어린이보호구역이라 속도를 빨리 낼 수도 없다


눈이 많이 내렸던날 등원길 풍경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고 차가 출발해야 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빨간 불로 바뀐 횡단보도를 유유히 걸어간다. 뛰지도 않고 걸어가는 모습에 순간 나는 "빵!!" 클랙슨을 울렸다.

내가 마음이 급했던 걸까?
내 앞에 있는 차도 가만히 있는데 그 뒤에 있는 내가 빵빵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뒷자리에 있는 첫째에게 이야기를 하며 내 상황을 정당화한다

"현아~ 신호등에 초록불이 깜빡일 때는 어떻게 해야 되지?"


"음.. 몰라"


"주변을 살피고 빨리 뛰어가거나 멈춰서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해"

직진 신호가 떨어져서 가야 하는데 오늘따라 신호마다 내 앞을 가로막는 일이 반복되었다.
우회전하는 차들이 앞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고 조금만 앞으로 나가주면 조금만 비켜주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또 빵빵 클랙슨을 울렸다

그때 앞 차량 문이 열리고 운전자가 내리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속으로
'뭐야.. 정차하려고 뭉그적거린 거였어?' 하고 옆으로 비켜 나와 직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빵빵!!!!

아까 내 앞에 있던 차였다. 나를 따라오고 있다. 그것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엄청 빠른 속도로 그리고 역주행해서 내 앞을 가로막는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차에서 내려 내 쪽으로 오고 있다

심장이 쿵 쾅 쿵 쾅!(나 지금 떨고 있니)
재빨리 112에 전화를 걸고 다급한 목소리로

"112죠? 저 지금 위협운전을 당했어요. 제 차를 가로막고 와서 지금 차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ㅇㅇ유치원 앞쪽에 있어요 빨리 좀 와주세요!!!!"


© scottrodgerson, 출처 Unsplash

동시에 위치 기반 GPS로 내 위치를 확인했다고 문자가 왔다.
 
 그 아저씨는 차 문밖에서 문을 열라고 한다
나는 떨리는 마음이지만 태연하게 행동했다. 뒷자리에 우리 첫째가 있었기 때문이다

똑똑똑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며 창문 쪽으로 얼굴을 들이대고 이야기 좀 하잔다

"기다리세요 경찰 오면 이야기합시다"

창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 아저씨에게 들리진 않겠지만 뒷자리에 우리 첫째가 듣고 있으니까

내가 문을 열지 않자 그 아저씨는 차로 돌아가더니 이내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차량 앞 유리에 붙은 전화번호를 사진 찍고 다시 차를 타고 가버렸다. 물론 경찰이 오기 전이다

아 맞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량 앞에는 남편의 핸드폰 번호가 있었지! 반대로 남편의 차에는 내 핸드폰 번호가 부착되어 있었다.(업무 미팅 중에 연락을 받지 못할 때 주차 문제로 오는 전화를 내가 응대하기 때문이다)


© thombradley, 출처 Unsplash

정말 다행인 순간이었다.  문자로 남편에게 상황을 대략 설명하려고 하는데  바로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남자 분명히 내가 여자인 줄 알고 쫓아온 모양새였는데 전화기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들리니 차주냐고 말하는 목소리에 살짝 당황스러움이 묻어 있었다고 했다. 왜 운전을 그렇게 하냐고 뭐가 그리 급해서 빵빵거리냐고 했단다.

"제가 차주는 맞는데 지금 차량을 저희 와이프가 탄 것 같아요. 제가 정황을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아오 속 시원해 죄송하다고 안 하길 잘했어 여보 내가 피해자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가 마무리되었고, 이 상황을 얘기하는 사이 앞쪽으로 경찰차가 보인다
"여보 지금 경찰 왔다 나 얘기해야 되니까 끊을게"

"어.. 위협운전 한 거면  신고해"
다급히 전화를 끊고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왔다

결국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탄 차량 앞 유리에는 전화번호뿐 아니라 아파트 동호수가 적힌 스티커가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욱하는 성격에 집까지 찾아올까 봐)

출장 중이었지만 와이프 위기 상황에 본인의 몫을 톡톡히 해준 남편이 있기에 두려웠지만 안도감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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