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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댕기자 Jan 14. 2024

내 생각대로 되면 그게 외국이겠냐

입국 열흘 뒤... 흔히 말하는 '정착'은 멀었다

#입국 1일차


애틀랜타 공항까지 가는 길. 비행기 좌석은 좁고, 복도자리 획득에 실패한 자의 말로는 처절했다. 짐 올릴 곳도 없어 다리 밑에 짐이 복닥복닥앞좌석 등받이가 코앞에 온 상태로 밥을 먹었다. 시장통 같은 13시간 30분. 날짜 변경선을 지나니 '그날'도 찾아왔다. 아이는 내 다리를 배고 잘도 잤다. 도착시간은 오후 6시경.


입국 수속을 하러 갔다. 아이의 미국여권을 앞세워 시티즌 줄로 갔다. "너 전에 J1비자로 온 적 있니?" 물었다. 없으니까 없다고 했다. 아이 여권을 돌려주더니 내 여권과 비자는 투명한 주머니 같은 데에 넣었다. 사람을 따라가라 했다. 세컨 인스펙션이구나 싶었다. 정신없이 따라가는 길에 갑자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짐을 놓고 돌아보니 진입 통제구역 밖에 아이 뒷모습이 보였다. 이름을 부르며 나가는데 시큐리티 몇 명이 소리를 지르며 쫓아나왔다. "마이 키드!"하니, 왜 놓고 왔냔다. 니들은 애를 일부러도 놓고 오니?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수많은 사람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권을 받아서 다시 나갔다. 나도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질문 하나 없이 "나중에 I-94 출입국기록에서 너 이름 사이 블랭크 없는지 잘 확인해."라며 보내줬다. 아 그랬다. 예전 입국 때는 이름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붙였다. 근데 그게 여기까지 잡아올 일이야? 진정? 


왜 따라오지 않았냐고, 애꿎은 아이만 타박했다.  "나는 안 가도 될 것 같아서 밖에 있었는데..." (입구에 Do Not Enter라 써 있었지만 영알못인 우리집 어린이가 읽었을 리는 없다.)




"둘이 오는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요?" 학교에서 계약한 한인업체 픽업 차량을 타고 미리 계약한 콘도미니엄에 도착했다. 처음 미국에 갈 땐 미국 집주소가 정해지자마자 우체국 배편으로 상자를 10개나 부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렇게 다 들고올 필요도 없고, 특히 책은... 가져와도 안 읽는다는 것. 그래서 이번엔 두 사람용 위탁수하물 4개에 모든 짐을 꾸렸다. 애 옷은 작아지니 다 넣고, 내 옷은 무게가 넘칠 때마다 덜어냈다. 23.1kg 정도로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인천공항에서 항공사 카운터 저울에 올려보니 조금씩 더 나왔다. 


"이상한 데다 집을 구해놨네" 픽업차량 기사분이 계단 아래까지만 짐가방들을 함께 끌어주고 가셨다. 23kg가 넘는 이민가방 3개와 트렁크들을 2층까지 계단으로 올리다 보니 허리가 휘청했다. 집 앞에는 아마존에서 미리 주문해둔 가정용 프린터가 있었다. 끙끙대며 집에 들어가니 사진과 유사하지만 살짝 낡은 집이 나왔다. 


가구가 다 갖춰진 퍼니시드로 집을 계약했다. 집주인이 인터넷과 전기를 합친 정액요금도 제안했다 해서 그대로 추가했다. 집에 도착하면 인터넷이 설치돼 있다니 안심했다. 공항에서는 짐도 하나 늦어서 정신이 없었던 터라 집에 와서 필요한 모든 연락들을 해야지 했다. TV 아래에 모뎀, TV 위에 와이파이 공유기가 있었다. 근데 신호만 잡히고 인터넷이 없다고 나왔다. 번을 껐다 켜도 안 됐다. 


하지만 신에게는 12개의 아니... 1개의 보루가 있었다. 1년치 선불로 US모바일 유심을 하루 전에 배달되게 주문해놨... 는데! 배달됐어야 하는 유심이 현관문 앞에 안 보였다. 우편함에 보관돼 있을지도 모르지만, 밤 늦은 시간이라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급한대로 로밍을 연결하려는데, 인터넷 가입에 실패해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가족들에게는 '잘 도착했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는 카톡만 돌리고 짐정리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 말고도 뚜껑 열린 존재가 있었다. 트렁크에서 참기름 냄새가 솔솔. 


엄마가 정신없는 사이, 아이는 집이 예쁘다며 살판이 났다. 큰방을 자기가 쓰겠다며 서랍장에 지 장난감을 다 정리해놓고 먼저 잠을 청했다. 다 닦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이가 갑자기 깼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높았다. 해열제 시럽을 먹이는데 갑자기 욱!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먹은 요거트까지 다 나오는데 소화가 하나도 안 되었는지 향긋했다. 옷 갈아입히고 전기장판 닦고 해열시트 붙여서 재우고 나니 새벽 2시. 


긴 하루였다...



#입국 2일차


정착을 도와주시기로 한 한인교회 장로님이 오전 10시에 오시기로 했는데... 9시 55분에 "집 앞"이라는 카톡을 보고 깨버렸다. 알람을 안 맞춰도 잘 일어나는 편이라고 방심했다. 어리버리 문을 열어드리고, 아이의 열을 재고, 한국에서 가져온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였다.


장로님이 우편함에서 유심을 찾아주셨다. 방식에 따라 두 개의 유심이 들어있었는데, 위에 꺼를 일단 IMEI 조회해 보니 가능한 전화기라고 나왔다. 유심을 끼웠더니 전화번호는 바로 연결됐지만, 데이터는 소식이 없었다. 때마침 관리사무소에서도 인터넷을 점검하러 왔다. 껐다 켜고 껐다 켜더니 안 된다고 했다. 서비스를 부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일단 장로님의 핫스팟을 빌려쓰며 집을 나섰다. 


이날의 첫 목표는 은행 계좌 개설이었다. 실은 은행과 미리 약속을 잡으려 했으나, 추천받은 직원이 내 메일을 못 본 건지 답을 주지 않았었다. 은행에 가서야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신학기라 수요가 많아 예약이 꽉꽉 차 있다고, 내 순서는 다음주 월요일에나 가능하겠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주머니에 큰돈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 목표는 아이 예방접종 서류를 학교 수속에 맞춰 현지 양식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보건소에 찾아가 서류를 제출했다. 그쪽에선 "간호사가 추가로 맞을 주사가 있는지 체크해보고 연락해줄 거야"라고 했다. 이르면 금요일, 늦어도 다음주 초엔 연락을 줄 거라 했다. 


오늘 해결될 일이 없구나 싶어 크로거에 장을 보러 갔다. 그때 장로님이, 휴대폰 데이터부터 해결하고 오늘 차를 가져오는 게 어떻냐고 했다. 차를 살 때부터 장로님 도움을 받은 상황이었다. 아틀란타 사구팔구 게시판(조지아텍 학생 게시판 중고장터와 연동)에 나온 중고차를 장로님이 직접 가서 대신 보시고, 대신 수령해주셨다. 


크로거 카트를 앞에 놓고 서비스센터와 긴 통화(S for Sam, L for Lima...)를 나눴다. 시키는대로 휴대폰에 오만 짓을 해보았다. 실패했다. 내려받으라는 앱도 받았지만, 또 실패했다. 이번엔 이메일로 안내받기로 하고 일단 장을 봤다. 그리고 집에 가서 이메일을 확인해 프로그램 다운로드 받으니 일단 데이터가 터졌다. 집 인터넷이 고쳐지기 전까지 휴대폰 핫스팟으로 연명할 수는 있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과 보이스톡/페이스톡이 안 돼 구글밋을 쓰기로 했다.




한인마트가 1시간여 거리라고 들었다. 내가 운전이 좀 숙달되면 거기도 갈 수는 있겠지 생각했다. 예전에 미국에서 잠깐, 그리고 한국에서도 잠깐밖에 운전을 안 한 나는 고속도로를 아직 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인수한 차는 귀국하시는 분이 파는 차였고, 장로님이 차량을 받아 주차해둔 곳은 애틀랜타 한인타운인 둘루쓰와 스와니 중간이었다. 


"제가 뒤를 졸졸 따라 운전하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저는 집이 애틀랜타인데요."라고 장로님이 답했다. 세상에... 거기서 나를 도와주러 Athens까지 오신 상황인 걸 그제서야 알았다. 


결국 나는 도착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직접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타게 됐다. Waze라는 네비 앱이 좋다 해서 다운받았는데, 얘가 음성다운로드에 실패했다고 뜨는 것도 못 보고 그냥 켜고 달렸다. 말이 안 나오는 네비를 눈팅하며 달리다 보니 거리 감이 안 왔다. 다음 좌회전인 줄 알았는데 이번 좌회전이어서 급하게 차선을 바꿨더니 클락션 빵빵 환영인사가 거셌다. 신호등 불이 5개 달려있는 고속도로 램프 진입로에선 노란 화살표도 아닌데 뒤에서 빵빵 거리는 차들을 버티며 초록 화살표를 기다리기도 했다.


땀이 흐르다 못해 발이 저렸다. 대도시인 애틀랜타 주변 러시아워를 만났고, 밤운전까지 하며 1시간 반 걸려 집에 도착했다. 다리가 후달렸다. 어찌나 힘을 줬던지 다음날까지 한쪽 다리가 계속 당겼다. 덕분에 매우 빨리 한인마트 장을 보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나, 내가 그럼 그렇지... 김밥재료를 열심히 사놓고 쌀과 김은 안 샀더라. (쌀은 다음날 동네 중국마트에서 사고 나머지는 Weee!앱으로 온라인 주문했다.)




현지 전화번호가 있어야 아이 초등학교 등록을 할 수 있다. 아이 예방접종 정보는 안 나왔지만, 이날 밤 학교 등록을 시도해 보았다. 한 달 전쯤까지는 온라인 등록하고 카운티 스쿨 디스트릭트에 서류를 갖다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전면 온라인 등록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만 서류 다 올리고 예방접종 서류 없이 그냥 등록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시간이 좀 지났다. 어라, 접속이 안 된다. 아이디를 내놓으라는데, 아이디라는 게 없이 등록하던 중이었다. 메일로 복구 시도를 하래서 했다. 안 먹혔다. 아이디 확인 요청 메일을 보냈다. 답이 안 왔다. 


그러는 사이 하루가 날아갔다. 아이는 개학 날짜에 맞춰 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입국 10일차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이가 어제 처음 학교에 갔다. 도착 1주일이 지나서야 수속이 끝났다. 나이로는 여기 3학년 2학기인데, 2학년에 배정됐다. 한국에서 뗀 재학증명서가 아직 2학년이고 영어를 안 쓰던 아이라서 그렇게 한다 했다. 


아이는 울면서 들어가 웃으며 나왔다. 수학시간에 덧셈 하고, 친구들이 계속 말을 걸었다며 업돼서 춤추고 방방뛰다 갑자기 소파에서 잠들었다. 고된 어제 하루를 보낸 이 어린이는 오늘 아침 6시 40분 스쿨버스를 타고 손을 흔들며 갔다.


오전에는 소셜시큐리티넘버(SSN) 신청을 하러 SSA에 다녀왔다. 제대로 된 거면 2주 안에 카드가 온다고 한다. 학교 프로그램 온라인 체크인이 제대로 되고 며칠이 지나야 SEVIS 정보가 조회된다는데, 적당한 시점에 신청한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프로그램 온라인 체크인 자체도 완료됐다고 메일이 왔다가, 며칠 뒤에는 퀴즈를 풀어야 한다고 다시 연락도 왔다. 또 며칠 뒤엔 결제한 수수료가 취소됐다며 재결제 요청 연락도 왔다(한 번에 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학교 측이 처음엔 SSN을 학교 프로그램 체크인 10일 후에 신청하라고 했다가, 48시간 후에 신청하라는 식으로 안내를 바꿨는데 주변 증언에 따르면 2달도 걸린다고 한다. 


파네라에 가서 다른 연수자를 만나 브런치도 했다. 파네라 옛날 아이디를 살리고, Sip club 멤버십도 가입했다. 2달간 음료를 무료로 준다 했다. 고속도로를 타야 해서 언제 다시 갈지는 모르겠고, 2달 끝나기 전에 멤버십은 해지해야 한다. 




그 사이 나는 BofA 은행계좌와 신용카드를 만들었고, 우체국에 가서 영사관에 면허증 공증레터 요청메일을 보냈고,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고, 차량 타이어를 교체했다. 틈틈이 크로거, 아씨플라자, 푹스푸드, 월마트, 트레이더조스 장을 봤다. 아참, 피클볼 모임에도 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집 인터넷과 은행 카드들이다. 같은날 신청했는데 신용카드는 왔고, 데빗카드(직불카드)는 오고 있다더니 갑자기 새 번호로 재발급된 채 아직 소식이 없다. 이후 신용카드도 온라인 결제가 갑자기 안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서 30분 대기해도 연결이 안 됐다. 에잇!


인터넷은 관리사무소에 지난주 다시 연락했더니, 아무 말 없어서 되는 줄 알았다는 망발을... 그 이후로도 끝없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휴대폰 핫스팟으로 이 글을 쓰느라 속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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