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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댕기자 Feb 12. 2024

미국에서, 팔자에 없던 도시락 싸기

'나는 나쁜 엄마인가'에 대한 고찰

새벽부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는 오늘도 아이는 6시 39분에 스쿨버스를 탔다.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있는 시간은 약 20분 정도.

학교에 가면 아침식사를 주고, 수업은 7시 40분에 시작한다.

수업 종료는 2시 35분이고, 스쿨버스가 집 앞에 오는 건 약 2시 49분이다.


초등학교가 왜 이리 일찍 시작하는 걸까.

일단 맞벌이 부모들의 출근시간을 배려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학교 등교 순서는 지역마다 다르다. 

스쿨버스가 중학생부터 태우는 지역도 있다.


예전 오클라호마에 있을 때 등교시간이 조정되는 걸 본 적이 있다.

원래 가장 먼저 학교를 가던 고등학생 등교시간이 맨 마지막으로 바뀌고 초등/중등 등교가 앞당겨졌다.

고등학생들 아침잠을 1시간 더 재우면 학업능률이 얼마나 높아지네, 하는 연구결과가 거론됐던 것 같다.

초등학생 관련 연구결과가 왜 없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학교까지 차로 4~5분 거리인데, 스쿨버스 시간은 꽤 이르다. 

덕분에 차로 아이를 데려다주는 집도 많다. 

제는 내가 웬만해선 운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버스 놓친 아이를 태우고 스탑사인을 지나쳐 사고가 날 뻔한 다음부터 새벽 운전을 더 꺼리게 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특히 스쿨버스에 태우려 애를 쓴다.

내 운전을 못 믿기에, 안전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아이는 일찍 일어나니 당연히 피곤해 한다.

자기도 남들처럼 엄마차로 학교 가면 안 되냐고 묻곤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도시락 싸도 되면 데려다줄게."


아이의 선택은... 

스쿨버스와 도시락이었다.


김밥과 떡, 블랙베리. 


이 학교는 전교생에 무료로 아침과 점심을 제공한다.

하나 우리집 어린이의 입맛은 전형적인 한국식이다.

치즈 들어간 음식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이 없다.


식단 중에 아시안 메뉴가 나오는 날은 먹을 수 있지 않겠냐 물으면

"미국 급식은 수준이 다르다"고 말한다.

"친구들이 더럽게 먹어서 못 먹겠다"는 말도 한다.


덕분에 나는 5시대에 일어나 아이 점심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 점심 같은 걸로 먹이면 참 편할 텐데 "나 연속 같은 안 먹잖아"란다.

그리 키우진 않았는데, 그렇게 자랐다고 주장한다.


무료급식이 있는데도 도시락을 싸야하는 팔자. '사서 고생'이 이런 데 쓰는 말일까.

내가 쌀 수 있는 도시락 메뉴는 너무나 뻔하고,

아침에 2가지를 새로 하기엔 시간이 모자란다.


케찹볶음밥과 카스테라, 체리. 한국에서 사온 2단 도시락이 망가져서 아마존에서 2단 도시락을 주문했는데, 3단이 왔다. 졸지에 3가지를 싸야하는 사태에 직면.


도시락엔 주로 이런 걸 싼다.

김가루 주먹밥, 삼각김밥, 꼬마김밥, 그냥 김밥 등 김+밥류 

밥+치킨너겟, 밥+불고기, 밥+카레 등 덮밥류

치킨볶음밥, 새우볶음밥, 계란볶음밥 등 볶음밥류...


아침 메뉴는 더 단촐해진다. 

밥에 계란말이, 계란스크램블, 삶은 계란 등을 곁들이거나

불고기, 카레, 미역국 미리 해둔 음식을 재활용하거나

아니면 식빵에 딸기잼만 발라서 내놓는다.


냉동잡채라도 사서 설날 기분을 억지로라도 내보려고 노력했던 흔적.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아이 등교시간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가 너무 피곤하겠다고 안타까워한다.

도시락도 싸주고 엄마가 데려다주기까지 하면 아이도 너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두 가지는 못 하겠다.


대신 아이가 원하는 날을 골라 일주일에 두 번쯤 학교까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스쿨버스 시간보다는 20분 정도 늦게 집을 나서고,

편도 35분 정도를 걸어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다. 


학교에서 하는 '안전한 등교길' 캠페인에 참여해보더니 매일 걸어서 등교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엄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좋다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대신 비가 오는 날도 있으니 매일 걷지는 말고, 주 2회만 걷자고 했다.


평소 하루 7000~8000보 수준이던 걸음수가 미국 온 다음 2000보로 줄었었는데

학교에 걸어서 다녀온 날은 1만보도 찍는다.

딸래미 덕분에 엄마도 운동을 하게 됐다.

딸래미가 상장을 만들어줬다. 맞춤법은 틀렸지만, 기분 좋게 받았다.




아참, 정착에 관해 덧붙이자면...


약 한 달을 기점으로 정착에 필요한 모든 절차는 마무리됐다.

SSN, 현지 면허증, 차량 등록 타이틀까지 차근차근 다 왔다.

학교측이 제시한 순서를 잘 따른 덕분이다. 

입국 2달이 되도록 SSN이 안 나온 사람들도 널렸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모든 신청을 완료한 3주차에는 이유없이 며칠 잠만 잘 정도로 아프기도 했다. 

다 긴장이 풀려서라고 했다. 

운전만 적응되면 좋을 텐데... 

여전히 운전은 긴장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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