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 무렵, 육아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유와 아이가 조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리 세 식구는 짐을 바리바리 챙겨 부모님 댁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약 3개월 간의 동거를 했고 이제 약 1주일 정도 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복직이 다음 주 월요일이라 한 주 미리 내려가야 하고, 오늘이 내 육아휴직의 마지막 평일, 육아휴직 기간 중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마지막 하루이다. 항상 마지막은 아쉬운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행복한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내 생에 남은 날 중 이런 시간이 다시 올까'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다. 특히 아이는 금방 크니까,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나의 부모와 나의 아이가 지금처럼 자주 볼 수는 없을 테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의 아이는 또 무럭무럭 자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 시작이 있으면 항상 끝이 있는 법이다. 아니, 끝이 있는 경우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시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마음 한편이 아쉽고 코 끝이 시큰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이는 곧 할머니, 할아버지와 떨어져야 하는 걸 아는지 종일 두 분을 쫓아다닌다. 낮잠을 자려다가도 '할머니', '할아버지' 단어만 언급하면, 혹은 문 밖에서 두 분이 생활하는 낌새를 느끼면 여지없이 방문 쪽으로 기어 나가고 싶다고 떼를 쓴다. '그래, 할머니, 할아버지 체온과 사랑 듬뿍 느끼고, 가능한 많은 시간 함께 보내자.'
흘러가는 시간의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중 내가 체득한 것은 '매 순간을 소중하고 진실되게 대하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슬프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이고, 나의 육체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필연적 슬픔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은 흘러가고 있는 이 지금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손가락에, 문 밖에 들리는 가족들의 목소리에 나의 오감을 집중시키는 것, 그리고 주어진 것들에 감사함을 느낄 때 그 필연적 슬픔이 다소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의 태도는 훗날 이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아쉬움과 후회를 덜 느끼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쉽다고 느낄 때 그 아쉬운 순간을 더 뜨겁게, 가까이 마주하자. 그리고 그 소중함에 감사하리라.
부모가 되니, 부모가 그립다. 함께 있는 이 시간에도 그립다. 나의 어린 시절 젊었던 부모님의 모습이 그립고, 어제의 부모님도 그립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 동안에도 함께하는 부모님과의 시간이 그립다. 가능한 오래도록 건강하게 나의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참 나약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강해질 필요가 있을 때 또 강해져 버리면 되지. 나는 늘 부모님 곁에 머무르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가끔은 투정 부리고 싶은 철부지 어린아이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