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 느끼는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
나는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나의 업무에 관한 칭찬을 하는 타이밍에 종종 '쪽팔리기 싫어서 열심히 합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이 말이 나를 꽤 멋지게 포장한다고 생각했고, 경쟁에서 동료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과의 대결을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기 때문에 꽤 정답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말을 잘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일에 대한 칭찬을 들을 일도, 술자리에서 선배들과 어울리는 자리도 거의 없긴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표현이 더 이상 나의 솔직한 마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는 왜 잘하고 싶은가'에 관한 고민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대충 하지 않는다.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결과물의 질을 끌어올리려고 한다. 엊그제 밤에 내가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 몇 가지가 내 머릿속을 차고 들어왔다. '자기만족', '앞서가고 싶은 욕심',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나약함', 이 셋 모두가 그 이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나의 소결론이다.
나는 내 스스로가 납득이 될 때까지 일을 하는 타입이다. 물론 그 기준이 세상과 단절된 순수한 나의 고립된 기준에 부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의 성격과 중요도 등을 고려할 때 일정 수준까지는 해야한다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이를 때까지 성과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를 '오직 자기만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 중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평가되어 생계유지수단을 박탈당하는 극단적인 위기에 처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동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가고 싶은 욕심'은 조직생활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을 단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 하루의 거의 절반을 보내는 곳에서 '승진'의 욕심을 갖지 않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다. 나 또한 입사 이후 지금까지 늘 '승진은 적당히'라고 생각했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그 생각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나약함'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나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는 일터에서 타인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내가 늘 해오던 표현인 '쪽팔리기 싫어서 열심히 합니다'는 오히려 꽤 솔직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한 영역의 상호평가에서 완전히 초연한 존재가 되거나 아예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앞서 가지 못하거나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의 쪽팔림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쪽팔림이 스스로에 대한 실망의 의미라면 '자기만족' 역시 잘하려고 하는 동기로 해석될 수 있다.
나는 아마 내일도 일터에 나가 잘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왜 그리 열심히 하느냐 물어보면 '쪽팔리기 싫어서요'라고 대답하겠지.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는 각자의 우주를 꾸려나가는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일이다. 따라서 정답은 없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다른 것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스스로 만족한 시간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닐까. 그렇다면, 쪽팔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사는 내 삶이 나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