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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돌탑

5코스(남원→쇠소깍) 2

by 커피소년

돌로 반듯이 닦인, 악어가죽 무늬 같은 길은 흐려진 공간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악어가죽을 천변에 남기고 벌거숭이 시멘트의 투박한 길로 바다로 향해 내려갔다. 암석투성이 해변에서 멈춘 그 길 끝에서 뒤돌아봤다. 건천이었고 계곡 같았다. 물 한 방울 없었지만 왠지 급격한 물살이 내려오는 듯했다. 비 오는 날엔 이 길은 폐쇄되어 우회해서 걸어야 할 것이다. 바다를 보니 멀리 섬 두 개가 보였다. 남원 포구를 벗어날 때 보았던 섬들일까? 섬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층진 바위에 작은 돌들이 탑으로 쌓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염원이 스민 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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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돌탑 / 우 : 건너편 숲길>
네이버지도.jpg <건천 : 네이버 지도 참조>

건너편 초록 터널의 숲길로 올랐다. 여러 나무가 하늘을 가린 길은 청량한 대나무숲으로 바뀌고 안개라도 끼면 신비로울 것 같은 돌담과 구부러진 가지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숲을 뒤로 남기고 바다와 조우했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그래서 울퉁불퉁하고 거친 돌들과 암석들이 파도가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길을 만들었다. 짧은 숲 터널을 지났고 다시 돌과 암석의 길이 이어졌다. 바닷길에도 공간이 있으면 작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의 탑들은 돌멩이 하나가 하나의 층이어서 전체적으로 홀쭉하게 하늘을 향했다. 그래서 위태로워 보였다. 강풍이라도 불면, 파도라도 깊이 들어오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무너짐은 생각지 않고 불멸만 믿는 누군가는 돌탑 위에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돌멩이 하나를 또 올려놓는다. 탑을 구성하는 돌멩이 하나하나에는 어떤 신성함이 있는 것 같다. 발에 차이는 돌일 때는 일개의 자연물일 뿐이지만 한 인간의 소망과 염원이 투영되는 순간 돌은 영험한 것이 된다. 추상적인 소망은 돌로 구체화 되고, 돌은 돌이 아닌 소망 자체가 되어 추상화된다. 그러므로 저 돌들은 돌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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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에 나무들은 뭍으로 몸을 구부렸다. 다시 숲으로 들어간 길은 포구로 나왔다. 태웃개였다. 제주 전통 나룻배인 태우(떼배라고도 하는데 대부분은 테우로 표기한다)를 매어두던 포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용천수가 나와 여름엔 천연 수영장으로 변한다고 한다. 스노쿨링, 써핑 등을 즐기는 곳으로 여름에 빛나는 포구였다. 또한 ‘단물이 나와 싱겁다는 뜻’의 신그물이라는 곳이 있는데 옛날에는 물이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말랐다고 한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 남성 세 명이 여름이었으면 천연 수영장이었을 곳에서 놀고 있다. 반바지를 입은 한 명은 물속으로 들어가고 긴바지의 두 명은 돌담에 올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이 신그물인 듯했다. 담의 높이를 보니 상당했다. 좀 전 포구에 세워져 있던 추락 주의와 다이빙 금지를 알리는 푯말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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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태웃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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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웃개를 떠났다. 하얀 토끼풀이 점점이 찍힌 곳에서 두 명의 올레 순례자와 지나쳤다. 16시 10분이었다. 이 시간에 올레를 걷는 이를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한 코스만 돌고 다들 쉬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지나쳤지만 왠지 반가웠다. 외로워서 그런지 모른다.

20250519_161128.jpg <지나친 올레순례자들>

길은 시멘트의 좁은 포장도로였고 바다에 가까이 붙어 갔다. 바닷가의 암석들은 바닷물에 잠기자 작은 섬들이 되었다. 여자 한 분이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올레를 걷고 있나? 챙이 있는 검은 모자를 쓰고는 있지만 차림은 가벼웠다. 혹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면 내가 앞질러 걸어야겠지? 이런 생각을 한 사이는 그녀는 양식장 담의 모퉁이를 돌아 위쪽으로 사라졌다. 길은 계속을 해안을 따라고 그녀가 사라진 곳부터 흙길이었다 다시 시멘트의 길이 바닷길을 이끌었다. 아열대 수산 연수원 미래양식센터에서부터 길은 내륙으로 쑥 들어가 밭길이 되었다. 가끔 병풍처럼 야자수 나무가 서 있었고 어쩌다 보이는 집들도 예쁘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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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 고양이가 경사지붕 위를 걷고 있다. 지붕 첨단 너머에 있는‘와랑와랑’이라는 글자에 조심스레 다가가고 있었다. ‘와랑와랑’ 의태어인가? 제주에서‘와랑와랑’은 세 가지 뜻이 있는 것 같다. ‘불기운이 세차게 일어나는 모양’의 뜻을 가진‘우럭우럭’의 제주말이고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과 ‘어떤 사물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거나 모여있는 것’도 의미한다. 이곳은 카페였다. 시멘트로 정갈하게 바른 벽과 짙은 갈색으로 창과 문을 낸 카페는 무척 단정해 보였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서 좋았다. 또한 카페의 색에서 갈색의 에스프레소가 담긴 은색의 모카포트가 생각났다. 모카포트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때가 생각나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갔다. 속을 보지는 못했지만 카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랑와랑’의 의미는 ‘어떤 사물이 풍성하게 매달려 있거나 모여있는 것’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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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었다. 높은 가로수가 끊겨다 이어진 틈의 공간에 낮은 돌담 너머로 오와 열을 맞춘 잘 다듬어진 나무들이 보였다. 처음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중간스탬프를 찍는 곳에서 알게 되었다. ‘위미 동백나무 군락’


위미 동백나무 군락은 우리나라 고유의 동백나무가 떼 지은 곳이다. 사철 푸른 동백과 많은 새가 찾아들어 남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현맹춘(1858~1933) 씨 한 사람이 맨손으로 일구어냈다.

현맹춘 씨는 17살이 되던 해 혼인하여 남편이 있던 이 마을로 왔다. 해초를 캐고 품팔이를 하며 평생 돈을 모아 어렵게 황무지를 샀고, 이곳의 모진 바람을 막고자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가 이곳에 뿌렸다. 그의 집념과 정성은 황무지를 울창한 숲으로 만들었다. 다른 농장에서는 외국에서 온 원예종 애기동백나무를 키우므로 이곳과는 다르다. 현맹춘 씨가 가꾼 동백나무 숲은 한라산에서 유래한 우리나라 고유의 것이며 현맹춘 씨의 얼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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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의 한강 작가는 2019년 9월 스웨덴 최대 국제도서전인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세계에 알리고 싶은 역사적인 여성으로 제주의 현맹춘 씨를 꼽았다고 한다. 한강 작가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서지만 결국 자연을 변화시킨 그녀의 집념과 끈기 그리고 정성일까? 토종동백은 한겨울인 1월 중순쯤에 꽃망울을 터뜨려 3월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제주에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또한 동백은 4·3 희생자들의 영혼을 상징한다. 꽃송이 채로 뚝뚝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이 군경의 총에 피 흘리며 쓰러진 제주민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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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왼쪽 끝에 세천포구가 보인다 / 우 : 지옥도 느낌의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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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스탬프를 찍고 바로 걸었다. 길은 잠시 횡으로 가다 건천을 따라 바다로 쭉 내려갔다. 내려가면 세천 포구에 닿는다. 세천 포구는 ‘곤냇골개’라는 옛 이름도 가지고 있는데 ‘곤내’는 가는 내를, ‘골’은 마을을, ‘개’는 포구를 의미한다. 아마 ‘가는 천을 품고 있는 마을의 포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따라 내려온 건천이 ‘곤내’일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올레길은 세천 포구까지 가지 않고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해안 길을 따랐다. 해변은 용암이 바다에서 식어버린 그대로의 모습으로 펼쳐졌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암석의 모습은 인간의 다양한 몸부림 같았고 그래서 해변은 전체적으로 지옥도처럼 보였다. 야자수 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는 ‘위미애 머물다’라는 나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위미?’제주말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위미’는 지명이었다. ‘위미리’는 마치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고 마을이 소의 꼬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우미’였다가 ‘우미’가 ‘위미’로 변형되어 불렸다고 한다. 길의 가드레일 페인트는 낡아갔다. 가드레일이 필요 없어진 해안 길은 내륙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올레길은 내륙으로 들어가길 거부하고 바다에 붙어, 없는 길을 내어 나아갔다. 바다와 닿는 길이었고, 나무가 앞을 가린 길이었고, 마을에 근접했다는 것을 알리는 시멘트가 닦인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끝에 위미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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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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