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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조배머들코지

5코스(남원→쇠소깍) 3

by 커피소년

멀리 위미항의 등대가 보였다. 16시 56분이었다. 조급했다. 큰엉을 통과한 후부터 하늘은 흐려 어두웠다. 어둠은 해가 빨리 질지 모른다는 위협으로 다가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 조급함은 걸음을 빠르게 했고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 하게 했다. 여기에 ‘조배머들코지’가 있었다. 항구 측면에 있던 연못이었다. 위미항에 도착했을 때 길이 연못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 도로와 만났을 때 속으로 욕했다. 길을 너무 돌게 만든 건 아닐까? 위미항에 도착해서 조금만 위로 올라오면 바로 여기인데. 그러나 길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올레길은 ‘조배머들코지’를 둘러보길 권했다.


<위미항의 등대와 위미웨이>

‘조배머들코지’에서 ‘조배’는 ‘조배낭’으로 구실잣밤나무 또는 조팝나무를 말하는 제주말의 약자다. ‘머들’은 ‘돌 동산’, ‘코지’는 해안가나 갯바위를 향해 돌출되어 있는 지형을 말한다. 코지란 단어가 붙은 걸 보면 지금은 연못에 갇힌 신세지만 예전에 이곳은 바다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떤 이유로 코지는 연못이 되어 실체는 없어지고 ‘코지’라는 이름만 남게 된 것이다. 올레는 왜 이곳을 지나가게 했을까? 답은 이곳의 설화에 있었다.

<조배머들코지 / 네이버지도 참조>

예전 이곳에는 높이가 70척이 넘는 거대한 암석들이 용이 비상하는 형상이나 붓처럼 뾰족한 형상을 이루고 있어 마을의 번성과 인재의 출현을 기원하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적 장소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풍수학자가 이 거석을 보고 한라산 정기가 모여진 기암으로 위미리에 위대한 인물이 나올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당시 위미 1리의 유력한 집안의 김 씨를 찾아가 저 기암 거석은 이 집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있는 형세로 집안의 기세를 누르고 있으니 기운을 떨치고 집안의 안녕을 도모하려면 조배머들코지의 거석을 파괴해버려야 한다고 꼬드겼다. 일본인 풍수의 말에 속은 김 씨는 석공을 동원해 기암 거석을 없애버렸는데 당시 거석 밑에는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하려던 늙은 이무기가 피를 뿜으며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 일이 화근이 되었는지 그 뒤로 위미리에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 나왔다가도 좌절하거나 단명하였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1997년 남제주군의 지원을 받아 부근에 산재해 있던 바위 조각들을 정성스레 추슬러 지난날의 조배머들코지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완전한 복원인지는 모르겠다.

<왼쪽 잘린 부분에 조배머들코지가 있다>

예전의 ‘조배머들코지’는 위미리의 정신적 장소여서 중요했던 곳이다. 그리고 이곳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역사적 교훈도 주고 있다. 설화를 통해 보면 일제는 영악하게도 자신들의 손이 아닌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우리 동족의 손으로 반감없이 자신들의 의도를 실행했다. 지역의 정신적 장소와 역사적 교육을 느낄 수 있게 올레는 돌아가더라도 이곳을 지나게 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곳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그냥 연못과 바위가 있는 공원쯤으로 생각했다. 사진도 멀리 위미항을 가로지르는 위미웨이를 찍다 ‘조배머들코지’의 바위가 우연히 반쯤 찍힌 것이다. 핑계지만 눈에 잘 보이는 안내판이 없어 지나쳤다.

<위미 1리 풍경>

조급함으로 인한 빨리 걷기는 무릎의 통증도 유발했다. 오늘 쉬지 않고 걸었던 피로가 누적된 결과지만 하필 빨리 걷고 있을 때 통증이 왔다. 다행히 마을에 약국이 있어 진통제와 파스를 샀다. 이 둘은 올레 내내 함께했다. 사실 위미항은 무척 컸다. 길이 항구 둘레를 돌아서 빠져나는데 다른 곳에 비해 시간이 더 걸렸다. 항구가 큰 만큼 마을도 커서 병원과 약국이 있을 수 있었다. 조급함과 통증 때문인지 경로를 벗어났다. 약국을 지나 다시 위미항으로 내려가 건천을 건너 작은 포구 같은 곳으로 가야 했는데 나는 그냥 도로를 따라가다 위미항이 보이는 곳에서 내려가 포구에 닿았다. 포구에서 조금 더 걸으면 수령이 350년 된 지정 보호수인 해송이 있고 그 맞은편에 마을을 지켜주고 어업을 관장하는 풍농신과 해신을 모시는 위미1리의 본향당이 있다. 본향당의 나무들과 해송이 어우러져 하늘을 가렸다.

<작은 포구>
<위미1리 본향당>

마을의 외곽을 지난 길은 바다에 닿아서 해안도로를 따랐다. 작은 현무암으로 쌓은 가드레일이 쭉 이어졌다. 가드레일에는 짧은 글귀가 쓰여 있는 서른 두 개의 작은 철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있다. 대부분은 사랑에 대한 글이었다. ‘어디레 감시나? 나 마심더레 왐시냐?’로 시작하여 ‘웃당보민 행복헤진데 햄쪄로’로 끝났다. ‘진중진담 나중진땀’에서는 큭큭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위미항에는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다. 이곳은 사랑에 대한 글귀로 가득하다. 왜였을까? 이곳에 ‘건축학 개론’의 여주인공인 서연의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지나쳤지만 기억은 났다. 그곳의 고급스러운 집중 하나였고, 집의 입구에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입구에 X가 표시된 표지가 있어 다른 차들은 주차 금지인가?라고 생각했던 집이었다. 현재까지 ‘카페 서연의 집’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해안 길을 ‘서연의 사랑 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현무암 가드레일이 끝난 곳에서 길은 밭과 집들이 섞인 마을로 길게 돌아 ‘넙빌레’에서 바다와 다시 만났다. ‘넙빌레’는 ‘넓은 바위’를 뜻하고 이곳에는 차가운 용천수가 솟아 나오는데 지역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여자는 동쪽, 남자는 서쪽에서 노천욕을 즐긴다. 또한 이곳의 물은 수질이 좋아서 일제강점기에는 소주의 원수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앞바다는 수심이 얕아 현무암 돌들로 바다를 막아 밀물에 들어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잡는, 제주 원시 가두리 어업인 원담도 있다고 한다. 제주의 남쪽 해안을 걸으면서 원담은 처음 들어본 것 같았다. 북쪽은 자주 들었고 보기도 했다. 남쪽 해안이 북쪽보다 깊고 절벽도 많다는 증거는 아닐지.

<넙빌레>

바다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도 있었다. 포토존의 플레임 안에 바다 위에 떠 있는 직사각형의 평평한 섬이 보였다. 지귀도(地歸島)였다. ‘땅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태’라는 의미이고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낮은 땅이라고 한다. 이곳에 제주 신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의 흔적이 있다.

설문대할망은 덩치가 매우 커서 백록담에 엉덩이를 걸치고 두 다리를 뻗으면 한쪽 다리는 제주시의 관탈섬에, 다른 다리는 지귀도에 닿았다고 한다.

<지귀도>

이어진 길은 시멘트 길이었고 공천 포구까지 이어졌다. 공천 포구의 해변은 검었다. 그리고 이곳에 사시사철 솟는 용천수가 있었고, 영등할망이 이곳에 들어왔다 나온다는 전설 때문에 이 용천수를 ‘영등물’이라고 불렀다. 또한 공천포는 공미세라고도하는데 과거 현청이나 관청에 제사 및 식용수로 맛 좋은 샘물을 바쳤던 데서 유래했다.

<영등물과 공천포구>

길은 공천 포구 곶에서 건천인 신례천을 따라 내륙으로 올라갔다. 올레 5코스 특별 프로그램인 ‘바람섬 갤러리’가 있었다. 갤러리는 노출 콘크리트와 엷은 하얀색을 입힌 시멘트의 단정한 건물이었다. 오후 6시여서 문은 닫혀 있었다. 바람처럼 지나갔다. 신례천을 건너면 바로 바닷가로 다시 내려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대로 마을 속을 지났다. 2차선의 번듯한 도로에서 바닷가로 내려가 망장포와 만났다.

<바람섬 갤러리>


<신례천과 마을길>

도중에 회색 벽돌로 지은, 고급스럽지만 미니멀한 호텔창고펜션의 빌라 정원에 떨어진 하귤을 봤을 때 맹렬한 허기가 몰려왔다. 낮은 집담에 올려진 하귤을 보고 몰래 집어서 먹을까?라고 생각도 했다. 그러나 하귤은 손으로 까서 먹기가 무척 힘든 과일이다. 하귤은 겉껍질이 단단하고 두툼해 칼집을 내서 벗긴 다음, 씁쓸한 맛이 나는 속껍질도 제거하고, 과육 알갱이를 싸고 있는 껍질을 벗겨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탱글탱글한 식감과 상큼하게 퍼지는 과즙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감귤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가 제철인데 하귤은 봄부터 여물어 5월부터 여름까지 제철이라 저렇게 눈에 보인 것이다. 제주에서는 하귤나무를 조경수로도 심었다고 한다. 여름내내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린 싱그러운 모습 때문일 것이다. 칼도 없고 손도 지저분해서 참고 지나쳤다.


<하귤>

카카오맵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빨리 걸으라고. 도로 길도 있지만 숲길도 있으니 어둠 속에 갇히지 말라고. 바닷가 절벽 가장자리로 난 길이 모퉁이를 도니 나무가 우거진 터널이 나왔다. 터널이 끊어졌다 이어진 사이에 바다를 봤다. 지귀도가 보였다. 숲 터널을 통과하니 간세가 지형이 마치 여우와 닮았다고 해서 호촌봉수라고도 불린, 지금은 감귤원으로 조성되어서 사라진 봉수인 예망촌을 가리켰다. 이어진 길은 주변에 밭인 아주 한적한 도로였다. 감귤밭의 하얀 창고에서 길은 도로를 벗어나 감귤밭 사이의 샛길로 빠졌다. 샛길은 다시 도로와 만났고 양쪽으로 감귤밭이 펼쳐진 도로가 쇠소깍다리를 지나자 종점 간세가 보였다. 5코스가 끝났다. 18시 40분이었다.

<망장포 / 원 안의 포구는 예전 포구로 예상됨>
<쇠소깍으로 가는 길>
<5코스 종점 간세>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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