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코스(제주올레여행자센터→서귀포 버스터미널, 12.9 Km) 4
STORY 우체통이었다. 오선지의 음표처럼 여러 우체통이 높이를 달리하며 걸려 있다. 빨간 우체통은 사연의 종류에 따라 음을 달리하며 1년 후에 보내질 멜로디를 그렸다. 끝에 있는, 반음 같은 초록 우체통은 보내지 못한 사연을 지금이라도 보내라고 한다. 궁금했다. 이런 우체통을 이용하는 사연은 얼마나 될까? 내심 많았으면 했다. 그래서 계속 남았으면 했다. 빨강 우체통은 디지털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아날로그의 쓸모 같기 때문이었다.
짧은 구름다리였다. 속골을 설명한 작은 간세가 난간에 서서 가야 할 길의 방향을, 고개를 들어 가리키고 있었다. 다리 중간에 멈춰 물 흘러내리는 곳을 봤다. 설명대로 물이 철철 흘렀다. 다시 한번 물을 담아내는 서귀포의 지질적 특성을 확인했다. 구름다리를 지나자 길이 시작하는 모퉁이에 작은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평평하지 않은 바위에 돌 하나하나가 한층 한층 수직으로 쌓여 올라갔다. 그렇게 세울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간혹 아주 작은 돌이 받침이 되어 탑이 쓰러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 위태로움이 간절함으로 느껴졌다. 외돌개에 스며있던 할망의 간절한 기도가 저 탑에서 서려 있다고 느꼈다.
사유지라는 푯말이 서 있고, 길 양편으로 코끼리 다리 같은 굵기와 질감의 야자수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서 있었다. 안쪽으로 넓게 들어간 공간이 나왔다. ‘수레를 끄는 언덕(모루)’이라는 의미의 ‘수모루 공원’이었다. 큰 돌탑 옆에 수모루 공원 석판이 수풀과 나무에 둘러싸인 바위에 새겨져 있다. 거대한 야자수 나무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들을 올려다보니 거인국의 난쟁이가 된 것 같은 왜소한 느낌을 받았다. 거인국의 공원을 지나 계속 걸었다. 해안 길이었고 비스듬한 언덕을 수놓은 고만고만한 나무와 풀들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바다는 두꺼운 빙하에 눌려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갑갑했다.
길을 구분 짓는 듯한 작은 내를 건너니 ‘수봉로’를 알리는 간세가 있었다.
올레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연생태길. 세 번째 올레 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길을 찾아 헤매던 올레지기 ‘김수봉’님이 염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삽과 곡괭이만으로 만들었다.
흙길이었고, 오솔길이었다. 거칠었다. 길이 끊어진 곳이나 걷기 험난한 곳은 나무판자로 작은 길을 만들어 이었다. 불평보단 길 아닌 곳을 이렇게 걸을 수 있게 만드신 ‘김수봉’님의 수고가 절로 느껴졌다. 오솔길은 해안가의 몽돌 길로 변신했다. 올레지기들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올레 순례자들이 하나하나 놓으면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작은 몽돌들이 줄지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돌이 있는 곳이면 항상 보게 되는 작은 돌탑이 여전히 세워져 있었다. 몽돌 해안을 벗어나 언덕에서 보니 외국인 커플이 내가 지나온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은 콘크리트 길과 단단한 흙길이었고 법환포구까지 이어졌다. 주택이 아닌, 관리되지 않아 빛바랜 건물을 지나니 수풀 사이로 안내판 하나가 보였다. ‘일냉이’였다. 해돋이가 멋있어 법환 일출봉이라고 불리는 일냉이는 ‘일냉이당’이 있어서 ‘일냉이’이라 부른다. 그리고 ‘일냉이당’은 이렛날(일곱째 날)마다 다니던 당이라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크게 자라 우거진 수풀로 인해 일출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뒤를 따라왔던 외국인 커플은 안내판을 보고 있던 내 행동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내 곁에 왔다가 수풀에 가려진 안내판 외는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가던 길을 바로 갔다. 이렇게 또 나를 앞질러 갔다.
법환포구의 방파제 전에 있던, 바다에서 솟은 작은 바위에 새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마치 그곳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내려앉을 수 있는 곳처럼. 천둥과 벼락이 치면 비로소 물이 솟는다는, 그래서 물이 나오는 것이 하늘에 좌우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공물(깍)’-깍은 마지막 부분이라는 제주어이고 공물처럼 나는 물을 구멍이라고도 부른다- 과 여기 동산에서 달을 보는 정취가 일품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망다리’ 안내판을 지나니 법환포구에 닿았다.
법환포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 최영 장군을 만나게 된다. 이곳, 법환은 1374년 몽골인 목호들이 명나라의 말 2천 필 요구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역사에는 이를 ‘목호의 난’이라 부르고, 이를 평정한 장군이 최영이었다. 원나라 때 제주도는 그들의 말을 기르던 곳이었다. 당시 말을 기르던 몽골인을 제주도 사람들은 ‘마소를 기르는 오랑캐’라는 의미의‘목호’라 불렀다. 반원 정책을 폈던 공민왕 때 끝까지 저항이 이들이 목호였고, 최영 장군이 정예군을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와 범섬까지 밀린 이들을 섬멸하여 100년 동안의 원나라 지배를 끝냈다.
법환의 여러 지명이 이런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 외돌개의 최영 장군 이야기는 유명하고, 달구경이 일품이라는 ‘망다리’ 또한 목호 세력이 해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망대를 세웠다고 이름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법환포구 앞에는 ‘막숙’이라는 안내석이 있는데, 이는 최영 장군의 군사들이 머물렀던 막사가 있던 자리여서 이런 지명 생겼다고 한다. 또한 엉(언덕의 제주어)에 나오는 물인 남성전용 엉물 또는 엉덕물에는 ‘사장앞물(소장앞물)’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이는 최영 장군 부하들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곳에 있는 물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아이들이 사각형으로 잘 만들어진 용천수에서 물놀이 중이었다. 5월인데 춥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그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재밌게 놀고 있었다. ‘막숙’ 안내판 옆에 '동가름물/서가름물' 안내판이 있는데, '가름'은 마을을 뜻하는 제주어로 '동가름물'은 동쪽 동네에서 나는 물, '서가름물'은 동쪽 동네로 이어진 길가에서 솟아나는 물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진만으로는 동가름물과 서가름물을 알 수 없었다. 여러 조각상이 있는 공원과 공연장을 지났다. 공연장에는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섬들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었는데 가장 가까운, 역사적 현장인 범섬은 안개로 보이지 않았다. 작은 배 한 척만 지나갈 뿐이었다.
길은 도로를 벗어나 물속 풍경과 그 속에서 물질하는 해녀의 그림이 바닥에 그려진 해안가로 들어섰다. 목호의 난을 진압한 최영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승전비를 지났고, 바닥에 그려진 잠녀 숨비소리(잠수하던 해녀가 바다 위로 떠올라 참던 숨을 휘파람같이 내쉬는 소리) 화살표가 길을 가리켰다. 검은 현무암 해안가에 원 모양의 수영장 같은 곳이 보였는데 이곳이 해녀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지나온 건물에 법환 해녀학교라는 글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맞은편, 하얀 건물은 ‘제주 아모제’라는 펜션이었다. 아모제? 외래어 같았지만, 알고 보니 ‘아무 때’라는 제주어이었다. ‘아모’는 ‘아무’, ‘제’가 ‘때’로 아무 때와도 된다는 의미?라는 말인 듯해서, 펜션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후 잘 닦인 길은 이탈리아어로 ‘자연이 준 선물’이라는 의미의 ‘라이슬라(laisla)’라는 호텔에서 다시 해안으로 내려갔다. 길은 검은 아스팔트라서 해안의 검은 현무암과 이어지며 검은 공간을 걷은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도 목호의 난과 관련된 지명이 있었다. ‘배연줄이’와 ‘오다리’였다. ‘배연줄이’는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부터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다는 것에서, ‘오다리’는 이곳에서 군사 훈련과 말 조련을 시킨 오달 장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안내판을 읽다 바다를 보았는데 수평선 근처에 다른 곳과 달리 얼룩 같은 검은 부분이 보였다. 잠시 생각해 보니 저곳이 범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곳은 가까우니 안개가 완전히 지우지 못한 섬이 흐릿하게 검은 형체로 보이는 것 같았다.
새들이 똥을 싸서 하얗게 된 바위인 ‘흰돌밑(환해장성터)’을 지나 중간스탬프가 있는 두머니물 공원에 도착했다. 스탬프를 찍고 물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처음엔 두머니물을 두물머리로 읽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두머니물이었다. 두머니물을 한자로 쓰면 두면이(頭面怡)물이라고 한다. 두머니물은 강정마을과 법환마을 경계에 있는데, 두 마을은 생업에서 이해관계가 놓여 있어 두 마을의 책임자들이 머리(頭)와 얼굴(面)을 맞대고 만나 화합(怡)을 했다고 한 한자어 ‘두면이물’이 ‘두머니물’로 변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유채꽃이 유명한 두머니물은 작은 공원이었고, 지금은 철이 지나 초록 수풀만 우거져있다. 두머니물에서 나왔을 때 올레 화살표는 내륙 쪽을 가리켰다. 카카오맵과 가지고 있는 지도는 가정마을 해안 길로 인도했다. 고민하다 화살표를 따르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법환 이후의 7코스는 2025년 4월 4일부터 강정에서 월평까지 해안도로를 건설로 인해 폐쇄된 것이었다. 공사 기간은 2년으로, 그 기간 이 구간을 걸을 수 없다고 한다. 아쉬웠다. 2년 후에는 그 코스만 따로 가고 싶었다.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가니 귤색의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보드게임과 책을 파는 ‘책 익는 농원 독립서점’이었다. 상호자체가 독립서점. 영업이 끝났는지 아니며 오늘이 쉬는 날인지 잠겨있었다. 여기도 아쉬웠다.
7코스 종점이 어딘지도 모른 채 화살표만 보고 걸었다. 확실한 건 내륙 쪽 주거 단지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파트같이 높은 건물은 없었다. 현무암의 돌담으로 된 집들과 일반 가정집들이었다. 담장에는 빨간 장미가 피어 걷는 날 반겨주기도 했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이었다. 골목골목을 이으며 길은 나아갔다. 끝인지 어느 순간 거대한 담장이 길을 가로막았다. 제주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이었다. 경기장을 천천히 둘러봤다. 제주 대표색인 귤색이 스탠드에 물들어있어 초록의 잔디와 부드럽게 잘 어울렸다.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광장에는 얼굴 모양을 달리 한 거대한 돌하르방들이 양옆으로 서 있었다. 광장을 지나면, 마을의 액운을 막고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방사탑이 있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가면 서귀포 고속버스 터미널이었다. 여기가 7코스 종점이었다. 그리고 내일 걸어야 할 7-1코스 시작점이기도 했다. 스탬프를 두 곳에 다 찍었다. 17시였다.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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