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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하논분화구

7-1코스(서귀포 버스터미널←제주올레여행자센터, 15.7 km) 1

by 커피소년

서귀포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올레여행자센터를 지나는 버스를 기다릴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 코스 변경을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카카오맵으로 확인해 보니 코스가 변경되면서 거리가 상당히 줄었다. 줄어든 거리가 거의 5km였다. 한 시간 삼십 분 정도를 번 셈이었다. 원래대로 월평까지 걸었다면 지금쯤 비를 맞고 있었을 것이다. 비를 피할 수 있으니 좋은 것일까? 삶은 때론 좋은 것이 나쁜 것을 이끌기도 하고 나쁜 것이 좋을 것을 이끌기도 한다. 조용히 받아들일 뿐이다.


버스가 왔다. 다행히 앉을 자리가 있었다. 유리창은 뿌옇다. 지나가는 풍경들이 유리창의 김 서린 물기에 번져 형태를 조금씩 잃어갔다. 그래도 풍경을 보고 싶어 창문을 살짝 열었다. 서귀포 여고를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금세였나? 여고를 지나 속골과 수봉길, 법화포구와 두머니물을 거쳐 서귀포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두 시간이 넘는 길이 단 몇 분도 안 돼 지나쳤다. 조금은 허무했다. 올레여행자센터로 가는 길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되감기는 거의 15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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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밖 풍경>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저녁을 먹으러 바로 올레여행자센터로 갔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었다. 돼지고기를 삶아서 생긴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몸국(몸은 모자반의 제주어다)으로 저녁을 먹고, 근처에 있는 HARU라는 호텔로 갔다. 짐 정리와 샤워를 하고 나니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핑계였지만) 꼭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7시인데도 문 닫은 카페가 많았다. 간신히 찾은 카페, 가정집을 개조한‘제주. 길’도 주인은 8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30분만 마시고 가겠다고 했다. ‘길’, 커피 마시면서도 길 위에 있었다. 6, 7코스는 좋았다. 지루하지 않았다. 길이 종류를 달리하며 이어졌고 걷기도 편했다. 맑은 날이었으면 코스가 보여주는 풍경은 반짝반짝 빛났을 것이다. 온종일 자욱했던 안개로 바다는 흰색 셔터가 내려진 풍경이었다. 가시거리도 짧아 시선은 멀리 보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지명이나 카페 상호와 같은 단어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안개는 질문이었고,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응답했다. 하루를 정리하고 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20250520_175506.jpg <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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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길>

어김없이 6시에 일어났다. 노란 알약 하나를 먹고 멍하니 침대 앉았다. 피로는 풀리지 않았다. 피로는 나를 침대에 다시 눕게 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40분이 훌쩍 지났다. 샤워 후에 창을 열고 밖을 봤다. 안개는 여전했고 밤새 비가 내렸는지 아스팔트는 젖어있었다. 어제저녁 때 예약해 둔 아침을 먹으러 올레여행자센터(전날, 아침을 예약한 사람만 준다)로 갔다. 죽과 삶은 달걀 그리고 감귤주스였다. 어제 점심부터 오늘 아침까지 세끼를 여기서 다했다. 올레길을 걸으며 삼시세끼를 제대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커피마저 마시고 배낭을 챙겨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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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여전했고 밤새 비가 내렸는지 도로는 젖어있었다/ 간단한 아침/ 묵었던 하루 호텔>


7-1코스는 역방향이다. 조금 큰 골목 같은 이면 도로를 따랐다. 길 주변은 주택과 상가와 호텔이 뒤섞였다. 어제저녁, 커피를 마셨던 제주.길은 아직 자고 있었다. 절의 일주문 같은 곳을 지나니 길은 법정사라는 작은 절을 끼고 왼쪽으로 꺾였다. 벽에 벽화와 사진들이 있는 좁은 골목이었다. 사실 출발할 때부터 사부작사부작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쓰기도 뭐해서 쓰지 않았다. 둥근 챙이 있는 모자와 방수가 되는 바람막이 재킷으로 약한 비를 견뎌보기로 했다. 배낭은 방수포를 씌웠다. 고근산까지 비는 살짝 왔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이 정도만 왔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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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다 내려오니 갈매생태공원이었다. 작은 구름다리 밑을 지나는 물은 천지연 폭포로 흘렀다. 공원은 예전엔 비닐하우스로 농사를 짓던 곳이었다고 한다. 공원은 잘 다듬어져 있었고, 비 오는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고적했다. 빗물로 인해 공원이 살짝 빛나기도 했다. 공원을 벗어나 일주동로와 만난 길은 횡단보도를 건너 하논분화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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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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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논분화구로 가는길>

일주동로에서 샛길로 빠진 길은 걸을수록 점점 집들이 사라지고 초록의 풀과 나무, 감귤밭이 이어지다 도로로 인해 잠시 끊겼다. 도로를 건넌 길은 하천을 따라 이어졌다. 하천 입구에 하논마르분화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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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논분화구 가는길>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 제주도 일대의 지각변동 과정에서 강력한 수성화산의 폭발로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경관의 마르(Maar)형 화구호수가 만들어졌다. 빙하기를 거치며 그 호수 바닥에는 지구생태계의 변천과정에 관한 귀중한 정보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마르 퇴적층이 매년 한 층씩 1천 년에 30~40cm가 쌓여왔고, 수만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상태가 상하지 않는 생태계 타임캡술이 만들어져 보관되어왔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변동에 의해 기후는 현재보다 더 온난하고 습윤한 상태가 되면서 쇄설성 입자, 유기적 퇴적물 등이 호수 바닥에 쌓이며 수심이 얕은 지역은 습지를 이루었다.


마르(maar)형 분화구는 분화구의 둘레가 둥근 형태의 작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화산을 말한다. 하천과 집, 여러 시설물 들 사이를 지난 길은 두 갈래 길림 길에서 하천을 따라 아주 좁은 길을 쫓았다. 이후는 초록의 오솔길이었다. 좁은 길이어서 올레길이 맞는지 자문하며 걸었다. 그리고 공간이 열렸다. 하얀 백로(백로인지 자신할 수 없다)가 놀고 있었다. 밭인가 했다. 밭에 있는 밭담이 없었다. 논이었다. 논두렁이 논을 구분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논’이었나 보다. 제주도는 전체가 현무암 지반이라 논농사를 지을 수 없다. 현무암 지반은 물이 잘 빠지는 구조라 비가 내리면 물을 가둘 수가 없다. 대부분은 지하수가 되어 바다로 흐르다 해안가에서 용천수로 솟는다. 그래서 하천 대부분은 건천이고, 이런 이유로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논농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곳은 논농사를 짓고 있다. 서귀포는 제주도에서 흔치 않은, 물이 지하로 잘 빠지지 않는 지질구조(그래서 서귀포에는 폭포가 많다)라서 그런가 보다. 또 분화구 어디에서 물이 쉬지 않고 나와 논농사의 가능성을 더 높였을 것이다. 하논분화구까지 오면서 같이했던 하천의 물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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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논분화구와 논>


분화구라고 해서 산으로 생각했다. 분화구는 대부분 산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은 평야였고 논을 둘러싼 언덕 같은 지형이 분화구였다. 하천 입구에 있던 안내판을 읽지 않았다면 분화구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육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농촌 풍경이었고 초록 물감으로 외곽선을 그은 풍경화 같았다. 내린 비에 길은 진흙탕이었다. 그나마 괜찮은 곳을 밟으며 걸었다. 작은 간세가 보였다. 하논분화구에 대한 글이 있었다. 하논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 용천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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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길>

동양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 수만 년 동안의 생물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살아있는 생태 박물관’이다. 분화구에서 용천수가 솟아 제주에서는 드물게 논농사를 짓는다. 하논은 큰 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살표는 왼쪽을 가리켰다. 콘크리트 길에 나무들과 풀들이 초록 털처럼 자란 길이었다. 삼거리에서 화살표는 오른쪽 오르막길을 향했다. 외쪽은 성당터라는 작은 안내판이 있었다. 왠지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경로를 벗어나 가봤다. 하논성당터였다. 1900년 6월 12일에 설립된 산남지역 최초의 성당이었다고 한다. 2년 후에 서홍동 홍로 본당으로, 1937년 8월 15일 현재 서귀포성당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고요함에 성스러움이 스며있었으나, 다 떠나고 터만 남은 곳은 기념석들로 역사를 기려도 공간에 묻어있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본래의 길로 들어서 걸었다. 오르막 중간에 하논봉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4·3 사건 때 법난을 당한 곳이었다. 종교도 피해가질 못했다. 절은 대부분 산중에 있으니 토벌대의 표적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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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논성당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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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논봉림사>

오르막길이었다. 절을 지나니 숲길이 쭉 이어졌다. 분화구의 테두리를 오르는 중이었다. 천년마다 30~40cm씩, 한층 한층 쌓인 이곳을 몇 분 만에 걸어 그 긴 시간을 지나왔다. 숲길을 거의 벗어날 때 ‘동언새미’라는 용천수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다. 이곳이 하논분화구에 물을 대주는 용천수일까? 계속 올랐다. 일주동로와 만났다. 분화구라 올라오면 내리막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평지였다. 하논분화구는 평지에서 움푹 들어간 분화구였다. 멀리 잠시 후 오를 고근산이 보였다.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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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를 오르고 있었다 /용천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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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되돌아본 하논분화구/ 멀리 고근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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